서울에서 한 시간, 평화와 풍요를 찾다 [힐링로드 인천 교동도 강화나들길 9코스]

신준범 2024. 10. 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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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9코스 하이라이트 남부 해안선~대룡시장 6km

교동도를 걸으면 잊고 있었던 가을이 와락 안겨온다. 다을새길 남쪽 해안선 구간이 끝나면 황금빛 들녘으로 이어진다. 약속이나 한 듯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넓은 들판이 금빛으로 일렁인다. 황금빛 벼이삭 사이를 걷노라면 허겁지겁 살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기도 한다. 느리게 말을 걸어오는 풍경이 있음을 깨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여유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음을, 며칠 지나고서야 알게 된다.

교동대교와 월선포, 세월의 간극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뱃길 관문이던 월선포. 북적이던 그 옛날 인파 없이 정적만 감돈다. '선착장 대합실' 간판이 남아 있는 건물은 부동산 사무소가 되었고, 차박 온 노부부가 세월 뒤에 돌아앉은 포구의 고요를 교향곡마냥 음미하고 있었다. 멀리 교동대교가 거대한 조각품처럼 뻗어, 육지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섬 남쪽엔 파도치지 않는 바다가 있다

수평선까지 걷고 싶은 날, 교동도에 가야 한다. 한없이 막막한 남쪽 해변에 서면, 파도치지 않는 바다가 슬그머니 등을 쓰다듬는다. 침묵하는 바다가 있다는 걸, 교동도에 와서야 알았다. 말수 없는 속 깊은 여인처럼, 해변 가득 들어찼다가 슬그머니 떠나는 바다. 생색 내지 않는 거대한 흐름에 맞춰 걷노라면, 여물지 못한 마음이 단단해질 것만 같다.

제비가 떠나는 가을이면 더 깊어지는 풍경

제비를 따라 걸으면 수평선 끝으로 갈 수 있는 은밀한 제방길이 나온다. 교동도의 옛 이름인 '달을신達乙新'에서 유래한 강화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 제비가 떠나는 가을이면, 월선포 앞바다는 더 깊어진다. 배를 만들던 마을에 둥근 달이 뜨면 바닷물 속에도 달이 있어, 달의 신선이 내려앉을 풍경이라 하여 이름이 유래하는 월선포月仙浦. 그 귀퉁이에 제비가 앉았다.

교동도는 평화와 풍요가 특산품

벼가 무르익고, 해안선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면 '평화와 풍요의 섬'이라는 교동도의 슬로건이 참말임을 알게 된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깃든 평화와 풍요. 누군가 이 섬의 특산품이 뭐냐고 물으면, 새우젓과 쌀이 아닌 '평화와 풍요'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을새길을 걸으면.

단순명료한 외길로의 망명

걷고 있으나 멈춰 있는 줄 알았다. 한참을 걸어도 바뀌지 않는 경치. 느긋하게 물들어가는 칠면초길은 쉴 새 없이 달려온 도시인을 딱 멈춰 세우는, 어떤 안도감이 있다. 단순명료한 외길로의 망명. 복잡했던 감정의 덩어리들이 속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흩어지는, 자연의 느긋한 경지에 슬쩍 숟가락 얹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남쪽 해안선

저수지와 바다 사이로 난 제방길. 짧은 바다 너머로 석모도 상주산이 굴곡진 선을 풀어내며 흘러간다. 저수지와 바다 사이, 고요한 두 개의 수면 사이로 난 나들길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어, 걸을수록 평화가 깃든다. 1km를 걸어도 변하지 않는 두 개의 수면을 따라 걸으면,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날카로워진 신경이 둥글게 누그러지기도 한다. 간혹 사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길이 있다.

세월을 초월한 단단함, 교동읍성

1629년에 지은 조선시대의 흔적인 교동읍성. 이제는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남은, 세월을 초월한 성문 앞에 서면, 고려 희종과 조선 연산군의 유언이 바람에 실려 올 것만 같다. 두 왕은 교동도에 귀양 온 후 숨을 거뒀다. 고려와 조선의 왕이 귀천한 희귀한 섬인 것.

나들이 나온 말뚝망둥어와 참게

교동도 갯벌은 생명의 보고다. 멈춘 화면 같지만 갯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아 있다. 재미있는 생김새로 기어가는 말뚝망둥어, 단단한 갑옷을 입은 참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바다 생물의 바쁜 일상이 갯벌에 스며들어 있다. "혹시 너희 둘 커플이니?"

오동나무 우뚝한 섬, 교동도

삼국시대부터 '오동나무가 우뚝한 섬'이라 하여 교동도喬桐島라 불렸다. 교동도란 이름으로만 1,000년가량 불린 뿌리 깊은 섬이다. 지금도 키 큰 나무들만 보면 '오동나무인가?'하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잔잔한 재미가 있다.

교동도의 종로, 대룡시장

대룡시장은 교동도의 종로다. 서울 중심가 먹자골목처럼 먹거리와 볼거리로 가득하다. 시골 특유의 시장 분위기와 젊은 상인들의 활력까지 더해져 2024년과 1960년대가 뒤섞인 기묘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타임머신 타고 온 듯한 교동도 인기 명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대룡시장의 교동이발관. 실향민 출신의 이발사는 세월의 뒤로 물러나고, 술빵집이 되었다. 대룡시장은 6·25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주민들이 모여서 만든 시장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연백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골목시장이며, 60여 년 동안 교동도의 중심가로 자리 잡아 왔다. 교동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교동도 강화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 정보

교동도는 걷기, 자전거 타기, 드라이브 코스로 매력 있다. 걷기길은 강화나들길 9코스와 10코스가 있다. 원점회귀 가능한 코스이며 16km와 17km로 6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당일 풀코스다. 하이라이트 코스로 9코스의 월선포에서 대룡시장을 잇는 6km가 있다.

경치가 빼어난 남부 해안선 구간과 작은 평야이자 곡창지대를 관통해 대룡시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걷기를 시작해 정오쯤 대룡시장에서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남부 해안선은 외길에 가까운 길이고, 갈림길에는 걷기길 표식이 있어 길찾기는 쉽다. 네이버지도 앱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만 검색해 따라가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월선포에는 무료주차장이 있으며 화장실과 편의점이 있다. 대룡시장에는 대형 무료주차장이 있다. 교동도는 화개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라 자전거를 타고 즐기기에도 좋다.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교동제비집(032-934-1000)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2~3시간에 1만 원 정도.

거리

: 6km

난이도

: ★★☆☆☆

소요 시간

: 2시간

교통 월선포는 강화읍내 강화터미널에서 18번 버스(06:10~20:30)를 타면 닿는다. 70분에서 10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하루 11회 운행한다. 섬 내 대중교통이 불편하므로 대룡시장 무료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워두고 자전거를 대여해서 섬을 둘러보는 것도 합리적인 방법이다.

먹거리 대룡시장 맛집 투어가 빠지면 교동도 여행을 다녀왔다 말하기 어렵다. 복고풍 먹거리와 황해도 음식, 서해안 특유의 해산물 등이 주를 이룬다. 간식거리로 교동 핫도그, 호떡, 팥죽, 식혜, 빵류, 과자류, 떡을 비롯해 한 끼 식사로 좋은 황해도식 냉면, 국밥,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춘 젓국갈비, 이북식 만두전골, 밴댕이무침, 밴댕이회가 주요 메뉴이다. 복고풍 다방의 쌍화차도 유명하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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