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금융그룹이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소각 의무화 국면에서 기보유 자기주식 전량 소각을 택했다. 법 시행 전 취득한 자사주는 유예기간을 활용할 수 있지만 KB금융은 이를 기다리지 않고 발행주식총수의 3.8%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없애기로 했다. 일부 상장사가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보유·처분 예외를 열어두는 가운데 KB금융은 기존 보유분을 모두 소각하는 방식으로 밸류업 정공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예기간 안 쓴 KB…기보유 자사주 3.8% 소각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기보유 자기주식 1426만2733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발행주식총수의 약 3.8%에 해당하는 규모다. 기보유 자기주식의 장부가는 약 1조4000억원이며 최근 주가 기준 시가로는 약 2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2~4월 매입한 6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까지 5월15일 함께 소각하면 시가 기준 총 소각 규모는 약 2조9000억원이다.
이번 결정은 신규 자사주 매입·소각과 별개로 기존에 보유하던 자기주식을 정리하는 조치다. KB금융은 1분기 주당 1143원의 분기배당을 결정하고 6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도 함께 내놨다. 기존 보유분과 2~4월 매입분이 모두 소각되면 2025년 말 대비 주식 수는 약 7%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소각의 의미는 규모보다 속도에서 더 뚜렷하다. 3월 시행된 개정 상법은 자기주식을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법 시행 전 직접 취득한 기존 자기주식은 경과조치에 따라 최대 2027년 9월까지 소각할 수 있다. KB금융은 이 유예기간을 활용하지 않고 5월 중 기존 보유분을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했다.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정책의 평가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사들이느냐에서 기존 보유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자사주가 장기간 보유될 경우 향후 시장에 다시 나올 수 있는 물량 부담이 생기고, 경영권 방어나 우호 지분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져 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이런 논란을 줄이고 주당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장치로 도입됐다.
제도상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출연, 법령상 의무 이행, 균등 처분,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자사주 보유·처분이 가능하다. 다만 경영상 목적은 정관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매년 보유·처분 계획을 작성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예외 조항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일부 상장사는 정관 개정을 통해 경영상 목적의 자사주 보유·처분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투자나 전략적 제휴를 위한 선택지를 확보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자사주가 소각되지 않고 처분 가능 상태로 남을 경우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본여력 갖춘 소각…비은행 이익도 뒷받침
금융지주 가운데 KB금융의 선택이 부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지주는 자본비율과 주주환원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KB금융은 1분기 말 보통주자본(CET1) 비율 13.63%를 기록해 대규모 소각 이후에도 자본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다. 1분기 순이익도 1조89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5% 늘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냈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번 기보유 자기주식 전량 소각은 단기적인 주가 대응 차원이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와 자본 효율화를 일관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라며 "견조한 이익 체력과 안정적인 자본비율을 바탕으로 시장과 약속한 주주환원 정책을 이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KB금융의 비은행 부문의 이익 기여도도 자사주 소각 여력을 뒷받침했다. 1분기 비은행 이익비중은 43% 수준으로 올라섰다. 특히 KB증권 순이익은 34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3% 증가했다. 은행 중심의 이익 구조를 넘어 증권·카드·보험 등 계열사 실적이 받쳐주면서 자본 효율화와 주주환원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커진 셈이다.
KB금융의 전량 소각 이후 금융지주 주주환원 경쟁은 신규 매입 규모뿐 아니라 기존 보유분 처리 방식까지 함께 비교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금융은 1분기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과 주당 1145원의 분기배당을 결의했고, 2분기 기업가치제고계획 개편을 예고했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도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와 자본비율 관리 계획을 앞세우며 주주환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상법 개정 이후 자사주 정책의 핵심은 신규 매입 규모보다 기존 보유분을 얼마나 투명하고 빠르게 정리하느냐로 바뀌고 있다"며 "KB금융의 전량 소각은 금융지주 밸류업 경쟁에서 하나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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