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예로 질질 끌려가던 고려인’ 직접 구한 공직자를 보라
사재 털어 고려인 구하고 왕조 개혁안 제시
공직자여, 정몽주의 책임감 보고 배우시라
14세기 말 여말선초(麗末鮮初)를 다루는 사극이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정몽주는 ‘충’(忠)의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로 시작되는 시조 ‘단심가’를 지은 이. 망해가는 고려를 지키려 이성계·정도전과 대립하다 이방원의 칼날에 죽어간 고려의 마지막 충신. 이성계는 그를 죽인 이방원에게 “사약을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크게 화냈다. 이성계는 이후 이방원을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정몽주의 인생을 단순히 ‘충’의 잣대로만 평가하기는 아깝다. 지방 향리 가문 출신인 그는 홍건적의 난으로 어지러웠던 1360년 연줄 없이 과거에 합격했다. 그는 능력만으로 승진했다. 놀라운 행정처리와 빠른 습득, 높은 학문 이해도뿐 아니라 전시행정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성계가 전국적 명성을 얻은 1380년 황산대첩에서도 군사행정 관리로 복무했다. 풍부한 경험으로 국가의 문제점과 이를 개혁하려는 조치를 시도했다.
바다에서 표류…13일간 말안장 씹어 먹으며 버텨
이 모든 행동에는 난세의 어지러움을 떠맡으려는 공직자로서의 책임감이 있었다. 1372년 명나라에 파견된 정몽주는 중간에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13일간 표류한다. 그는 말안장을 씹어 먹으며 버텼다. 명나라 홍무제(주원장)가 소식을 듣고 구출하라고 지시해, 정몽주는 가까스로 고국에 돌아갔다. 보통 이렇게 바다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 바다 근처로도 가지 않는다.
정몽주는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1377년 정몽주에게 원한을 품은 높은 관리가 무리한 조건을 성사시키라며 정몽주를 일본으로 보냈다. 죽으라고 보낸 길이었는데 정몽주는 일본인들을 설득해 일시적이나마 협상을 성사시켰다. 이때 정몽주는 노예로 끌려가던 고려 사람들을 발견하고 자기 재산을 털어 이들을 구해냈다. 또 다른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그리고 1384년 정몽주는 누구도 가지 않으려 뇌물을 쓰고, 아프다며 빠지려 하는 명나라 남경(현재 난징)행 사신에 다시 뽑힌다. 원나라가 만주에 버티고 있어 명나라로 가려면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가야 했고, 날짜는 평소 일정 90일보다 한 달 가까이 모자란 60일가량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 했다.
정몽주는 차마 가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왕 앞에서 가겠다고 한 뒤 평균 일정을 한 달가량 앞당겨 50일 만에 남경에 도착했다. 바다를 건너는 중 뭔가 위험한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13일 동안 바다에서 버티며 말안장을 뜯어먹은 사람이다.
홍무제는 외교문서에 적힌 작성일자를 보고 이를 눈치챘다. 홍무제는 “분명 아무도 오지 않으려다 날이 임박하자 자네를 보낸 것이로군. 자네는 12년 전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기록에는 ‘정몽주가 그렇다고 답하자 주원장이 특별히 위로했으며 고려 측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돼 있다.
이 문장 속에는 한 인간이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난세를 책임감 있게 떠안는 모습과 이에 대한 황제의 존경이 담겨 있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건지 ‘어떤’ 책임을 질 건지
정몽주가 보여준 ‘공직자’의 책임감은 2022년 11월의 지금에도 유효하다. 서울 이태원에서 150명 넘는 사람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뒤에는 더더욱 그렇다. 재앙과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 단독 보도에 목마른 언론, 그리고 무엇보다 공허한 ‘나의 책임’을 외치는 공직자를 보면 ‘책임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며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였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건 직후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경찰국은 치안과 무관한 조직이라고도 했다. 법을 개정할 때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행사 전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 열리는 핼러윈 행사에 많은 사람이 오리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는 사건 직전 우려 섞인 심정을 단체대화방에만 남겼다. 사건 뒤엔 “이건(핼러윈)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건 엿새 만에 공식적으로 사과한 윤석열 대통령은 11월7일 경찰을 향해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고 질타했다. 정권의 칼날이 ‘무책임한’ 경찰을 향하게 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 정부의 공직자들은 사건 뒤부터 미안함과 죄송함을 말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미안하고 죄송한지 흐릿하다. ‘어떤’ 책임을 질지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주어진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공허한 다짐뿐이다. 여야는 정쟁하지 않겠다면서 ‘진영논리’를 끼얹고 있다. ‘참사의 정치화’의 재연이다.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개혁도
누구는 책임을 묻는 행위가 오히려 무책임하다고도 한다. 구조적 문제를 찾아 개선해야지, 무작정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는 행위는 그저 ‘이놈, 네 죄를 알렷다’라는 ‘원님 재판’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구조의 개선을 왜 ‘나중에 책임지겠다’는 공직자에게, 여야 정치인에게 맡겨야 하나. 8년 전 그렇게 해서 찾은 ‘구조의 개선’은 해양경찰청 해체였다.
자기 책임이 아닌데도 사재를 털어 고려인들을 구출한 정몽주는 이후 구체적인 개혁안을 구상했다. 그는 이 법안에서 관리 선발, 교육, 복지, 운송 등 당대 고려왕조의 병폐를 구조적으로 개혁할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이 법안을 관철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결국 이 법안의 다수 내용이 조선왕조에서 받아들여졌다. 진정으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개혁과 개선책을 만들 수 있다.
길게는 성수대교부터 짧게는 세월호까지 역사는 계속 우리에게 “정몽주의 반의반만이라도 닮아라”라고 말하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그래서 다시 정몽주를 지금의 공직자에게 제시한다.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가져달라고.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
*역사와 정치 평행이론: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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