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릭터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상품 마케팅이 유통가를 휩쓸고 있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심리적 피로도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향수를 일으키거나 정서적 안정감을 더하는 IP 콘텐츠에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이른바 ‘감정 기반 소비’다. 기업들은 외부 협업 또는 독자 캐릭터 구축 등 전방위적 시도를 하고 있으나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하는 유통업계에서 지속성을 보장하기 힘들고, 자칫 기업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12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2024 캐릭터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0~69세 소비자(캐릭터 콘텐츠 이용자 3500명) 중 68.7%가 평소 상품 구매 결정 시 캐릭터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 65.2%보다 3.5%p 늘어난 수치로, 2021년 이후 지속 증가세다. 캐릭터 이용을 위한 1회당 지출 가능 금액 역시 6만6169원(연령대별 평균), 연간 소비 의향 횟수의 경우 6.5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뉴노멀로 자리 잡은 IP
기업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적극 발맞추고 있다. 식음료, 패션, 완구 등 분야와 채널을 가리지 않고 콘텐츠 연계가 활발한 탓에 IP 연동 상품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롯데 밸리곰은 자체 캐릭터 개발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22년 이후 대형 전시와 굿즈 출시 등 오프라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현재 누적 매출만 200억원을 넘겼다. 특히 5060에 머물던 롯데홈쇼핑의 고객 연령층을 대폭 확대한 계기가 됐다는 점이 큰 수확이다. CJ제일제당은 올해 2월 ‘만식짱’이라는 캐릭터를 출범했다. 귀여운 외모와 유머를 결합해 SNS상에서 비비고만두, CJ실비김치 등 자사 상품을 홍보하고 있다.

접근성과 유연함으로 무장한 편의점은 외부 협업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GS25가 넥슨 모바일게임 블루아카이브와 손잡고 지난달 29일 출시한 ‘블루아카이브 특제라멘’은 출시 열흘 만에 누적 판매량 13만개를 돌파하며 불닭볶음면의 아성을 넘볼 정도의 성과를 냈다. CU 역시 2월 내놓은 ‘캐치! 티니핑 라면’이 출시 후 25만여개가 팔려나가는 등 성공을 거두자, 지난달 21종의 컬래버 신상품을 추가 론칭하기도 했다. 팝업스토어도 분주하다. 신세계백화점은 4월 강남점을 시작으로 이달 전국 주요 점포에서 스누피 75주년 기념 팝업을 통해 단독 굿즈를 선보인다.
유통가, 왜 IP 마케팅에 빠졌나

IP의 귀여운 외모와 친근한 이미지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더욱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10대를 주축으로 한 잘파세대에서 뚜렷한 가챠(랜덤뽑기)만 봐도 캐릭터를 스티커나 액세서리 형태로 소장하는 문화가 정착해 있으며, ‘키덜트(어른이)’의 경우 경기 침체의 장기화 국면에서도 IP에 기반한 감정 소비에서만큼은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많은 신제품보단 IP의 인지도에 기대 '인식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캐릭터는 인종·문화에 국한되지 않아 이질감을 덜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상품 품질에 의존해 구매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기본 기능은 물론, 의미 부여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방식의 상품 구매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새로움과 편안한 감정을 동시에 제공하는 감정 기반 소비가 유행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IP 마케팅, 성공 보장은 아냐
그렇다고 IP 마케팅이 승승장구하는 것만도 아니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게 관건인 유통업계에서 지속성과 신선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혀 세계관을 설계해도, 대중이 깊이 공감하지 못하면 좌초되기 일쑤다. 이는 주로 안정적인 팬덤을 보유한 기성 IP보다는 기업 고유의 IP 구축 과정에서 돋보인다.

신세계그룹의 제이릴라가 유사한 케이스다. 정용진 회장 ‘부캐’라는 연계 마케팅으로 공개 초반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실질적인 사업 전환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제이릴라가 화성에서 즐기던 빵을 지구에 선보인다는 스토리와 함께 2021년 신세계푸드가 내놓은 베이커리 브랜드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는 론칭 3년 만인 지난해 11월 운영을 종료했다. SNS(인스타그램) 공식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은 2024년 2월이 마지막이다.
IP 협업 마케팅은 로열티 등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과 외부 의존도가 심화할 경우 정체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앞으로는 이를 포용하되, 마케팅 주기를 더욱 단축하는 뱡향으로 민첩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캐릭터가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씌워 차별화를 꾀할 수 있지만, IP에만 기댈 때 브랜드 정체성 구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문유선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코리아 한국 리서치 총괄은 “캐릭터 협업은 매출 예측의 어려움과 로열티 등으로 인한 가격 인상 등 부정적인 요인이 여전하다”면서도 “최근의 차이점은 SNS를 통한 바이럴 영향력이 극대화되었고, 주 소비층의 기호가 훨씬 더 빠른 주기로 바뀐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분기별, 더 짧게는 주 단위로 계획함에 따라 IP 협업의 부작용을 안고가는 것이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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