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전설의 타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와 요즘 투수를 상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대를 호령했던 투수가 예전 그 모습 그대로 요즘 타자를 만나면 어떤 승부가 펼쳐질까?
선수들도 가끔 상상하는 장면이기는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야구도, 선수도 발전했기 때문에 ‘요즘 선수’가 더 유리할 것은 같다.
특히 타자들은 예전보다 체격도 커졌고, 강속구 투수를 상대로 경쟁력이 생겼고, 장비도 더 좋아졌다.
또 하나 144경기를 소화하느라 더 강해진 체력도 ‘요즘 타자’의 강점일 것이다.
야구는 멘털 스포츠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옛날 선수’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배고픈 시절을 보내면서 죽기 살기로, 정신력으로 싸웠던 이들이다.
관중도 이겨야 했다.
선수들을 놀리는 구호가 응원가처럼 울려 퍼지던 시절이다.
패배에 분노해 그물망을 타고 오르던 팬들이 있던, 야생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강해야 했다.
부질없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덕아웃에서 ‘만약에?’라고 물었다.
그 대상은 ‘리그 MVP’에 빛나는 윤석민과 김도영이었다.
윤석민 하면 KIA 하면 우선 떠오르는 투수다. 강속구와 정교함 그리고 강심장까지 겸비한 2011시즌 마운드를 호령한 투수 4관왕이자 MVP.
김도영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2024시즌 MVP다.
야구 선수로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해설 위원과 슈퍼 스타가 덕아웃에서 만났다.
어색한 대화 주제는 일단 나이. 17살 차이를 확인한 윤석민은 미국 진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야구가 잘 안돼서 생각이 많다”는 의기소침해진 김도영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이 두 선수가 최고의 모습으로 투수와 타자로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윤석민 위원은 “내가 던진 슬라이더가 저기 멀리 담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라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부드러운 폼으로 150㎞의 강속구를 뿌리던 윤석민의 특급 무기는 고속 슬라이더였다.
공이 느린 선수의 직구 스피드 보다 빠른 슬라이더로 상대를 요리했다.
WBC 베네수엘라전에서 던진 마법 같은 써클 체인지업도 윤석민 하면 떠오른다.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서 타자를 당황하게 한 팜볼도 있었다.
다양한 종목에서 정말 많은 선수를 만나고 있지만 윤석민은 손에 꼽는 영리한 선수였다.
야구도 잘 알고 그만큼 상대와 싸움에서도 한발 앞서 있었다. 인터뷰가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기도 했다.
윤석민과 인터뷰를 하고 나면 뭔가 공부를 하는 느낌이기도 했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긴장되기도 했다. 뻔한, 허술한 질문을 하면 바로 역공을 당하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보기와 달리 무척 예민한 선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장은 강했다.
홈런을 맞은 선수에게 다음 타석에서 똑같은 공을 던지던 선수다. 결국 야구는 기싸움이니까.
윤석민의 등판날에는 기대감을 가지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승부를 할까? 오늘은 노히트노런에 성공할까?

딱 하루, 딱 한 명 타임머신을 태워 데려올 수 있다면 전성기 윤석민을 소환하고 싶다.
그때는 몰랐던 마운드 위의 편안함. 그의 공 하나 하나를 감상하고 싶은 바람이다.
윤석민은 그때의 그 공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윤석민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 공은 존에서 1~2개 빠지는 것들이었다”리면서 윤석민은 요즘 시대 요즘 야구를 하면 결과가 좋지 못할 것이라면서 웃었다.
그렇다.
ABS라는 변수가 있었다.
그 변수에도 정교했던 윤석민은 잘 이겨냈을 것 같기는 하다.
과거를 돌아보다 보니 아쉬웠다.
두 선수가 동료로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게 아쉬웠다.
세상이 변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시간이 길어졌다.
예전보다 구단은 더 과학적으로 야구에 접근하고, 선수들을 귀한 자산으로 관리한다.
한 시즌에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야 했던 윤석민이 요즘 선수였다면 얼마나 더 많은 기록을 만들었을까? 일찍 미국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정작 본인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면서 쿨하지만, 야구는 결국 기록이라 100승도 100세이브도 하지 못한 선수라는 게 가끔은 안타깝다.
구단의 대우와 관리도 달라졌지만 일단, FA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기 때문에 요즘 선수들은 자기 관리를 잘한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던 술냄새 나는 투수와 타자의 맞대결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숨 막히던 위계질서도 사라졌다.
8살 차이의 호칭은 ‘선배님’이었다.
17살 차이가 나는 박재현이 나성범 앞에서 따발총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선배들에게 말 거는 것도 힘들던 때.
그런 시절을 살았던 선배들은 스스럼없는 후배들이 부럽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신 있게 풀어내는 모습이 부럽다.
요즘 선수들은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고 있지만 옛날을 생각하면 힘든 것도 많다.
프로야구 선수라는 타이틀이 너무 커서 ‘20대 청년’, ‘30·40대 가장’이라는 평범한 것들이 지켜지지 못하기도 한다.
경기장에서 모든 장면이 기록으로 남고, 일상의 모습도 과도하게 노출된다.
144경기를 치르면서 매일, 타석마다 선수들은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기도 한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그게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쉽게 말을 뱉고 잊는다.
선수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생채기가 남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걸 프로야구 선수의 숙명이라고 잔인하게 말하기도 한다.

옛날 야구, 요즘 야구. 나름의 낭만과 장점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 야구도 옛날 야구가 될 것이다.
그때 나는 김도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전설이 된 김도영은 또 어떤 신성을 조우하게 될까?
나중에 덜 그립게, 한 타석 한 타석 열심히 김도영의 모습을 지켜봐야겠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