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들인 ‘왕사남’…1000만 일군 5가지 키워드

안진용 기자 2026. 3. 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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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사는 남자’ 흥행 키워드 5
△ 단종
짧은 서사에 상상력 더해… 아이돌 출신 박지훈 열연
△ 유해진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 초반 코믹 후반엔 감동
△ 감동
“100명중 97명이 만족”… 진한 감동·몰입감 힐링
△ 장항준
‘김은희 남편’ 수식 떼고… 홍보 지휘한 ‘천만 감독’
△ 40대女
자녀 손 잡고 극장으로… 3·1절 연휴에만 220만
배우 박지훈은 폐위된 후 유배온 단종 이홍위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15㎏을 감량했다.
유배지 촌장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은 “마치 조선시대에 사는 사람을 데리고 온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가 ‘1000만 영화’의 명맥을 다시 잇는다. 3일까지 94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이르면 오는 7일 1000만 고지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도시4’(2024) 이후 약 2년 만이다. 제작비 105억 원(손익분기점 260만 명)이 투입돼 비교적 ‘작은 영화’로 분류됐던 이 영화의 흥행 키워드 5가지를 꼽아봤다.

◇단종 = ‘왕과 사는 남자’는 계유정난으로 폐위한 단종의 유배지의 삶과 최후를 그린 작품이다. 재위기간(1452∼1455)이 짧아 사료가 부족한 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사례가 적었다.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명령 속에서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실존 인물 엄흥도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대 117분을 채웠다. 단종 역을 맡은 아이돌 출신 배우 박지훈의 빼어난 연기력도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를 견인했다. 관람객들은 지도 앱의 리뷰 기능을 이용해 단종의 묘인 ‘장릉’에 추모글을 올리는 반면, 단종을 유배 보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묘인 ‘광릉’에 비판 댓글을 남기며 ‘과몰입’하고 있다.

◇유해진 =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그는 특유의 코믹 연기로 이 영화의 전반부를 채운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옥고를 치르는 아들, 최후를 준비하는 단종과의 사연으로 관객들의 눈물깨나 쏟게 만든다. 유해진은 유독 사극이나 시대극과 인연이 깊다.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대 육갑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에도 ‘택시운전사’ ‘1987’ ‘올빼미’ 등에 출연해 사극 불패 신화를 잇고 있다. 그는 개봉 직전 문화일보와 만나 “이상하게도 사극에 출연하면 흥행이 더 잘되는 편”이라며 “역사 속 이야기가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된 큰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선시대에 서는 백성을 데려와 연기를 시킨 것 같다’는 반응에 그는 “왕이나 양반보다는 민초가 제게 더 맞는 옷이다. 돌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 등 옷차림이 주는 심리적 자유로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감동 = ‘왕과 사는 남자’는 멀티플렉스 CGV가 실관람객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에그지수’에서 무려 97%를 기록했다. 100명 중 97명이 만족했다는 의미다. 세부 조사에서는 ‘감동’(38점)과 ‘몰입감’(40점) 항목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공감’(16점), ‘즐거움’(12점), ‘스트레스 해소’(6점) 순이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 정보 코너에서도 “홍위(단종)도 울고, 흥도도 울고, 나도 울었다”(char****), “오랜만에 볼만한 영화다. 눈물 콧물 다 흘림, 진짜로”(c0c0****) 등의 관람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간적인 정이 메마른 각박한 시대, 울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작품인 셈이다.

◇장항준 = 연출자인 장항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감독 출신 방송인’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1000만 감독’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표를 달게 됐다. 작품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 CGV 분석에서도 ‘배우연기’(40점)가 흥행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 반면 ‘감독연출’(16점)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특히 호랑이 컴퓨터그래픽(CG)이 허술하다는 지적에 장 감독은 “물리적으로 수정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CG 이야기만 나오는 게 다행이다. 연기, 시나리오, 역사 왜곡 논란보다 낫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장 감독은 ‘왕과 사는 남자’의 홍보를 진두지휘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바이럴 마케팅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그는 앞서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해 “1000만이 될 리도 없는데 만약에라도 되면 전화번호 바꾸고 개명하고 성형할 것”이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4일 ‘배성재의 텐’에 다시 출연해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한 속내를 밝힌다.

◇40대女 =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는 40대 여성 관객이 주도했다. 성별 예매 분포(CGV 기준)를 보면 여성이 59%, 남성이 41%다. 연령별로는 40대 관객 비중이 28%로 가장 높았다. 30대(24%), 20대(21%), 50대(18%)가 그 뒤를 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가족 단위 관객이 많이 찾았다. 닷새간의 설 연휴 기간에는 267만 명, 사흘간의 3·1절 연휴 기간에는 220만 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특히 겨울방학을 이용해 40대 부모들이 10대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는 빈도가 잦았다. 이제 부모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방문하기 위해 영월로 향하고 있다. 배를 타기 위한 대기 시간만 2시간이다.

■ ‘왕사남 제작’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

“여린 단종 보며… 관객들도 ‘지못미’ 연민 느낀다네요”

“대중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이 영화를 통해 느끼는 것 같습니다.”

1000만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제작한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을 이같이 짚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임 대표가 지난 2019년 첫 삽을 뜬 작품이다. ‘단종이 이 마을에 유배 온 후 물난리가 났다’는 한 줄의 기록에서 출발했다. 이후 ‘박열’ ‘리틀 포레스트’ 등을 쓴 황성구 작가가 합류해 2020년 초고를 만들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제작이 지연됐다.

임 대표는 3일 문화일보와 나눈 전화통화에서 “팬데믹 기간 제작이 중단됐지만 2023년 말 장항준 감독님과 만난 후 2024년부터 시나리오 수정에 돌입했다”면서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 이홍위와 엄흥도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극 연출 경험은 없었지만 그동안 장 감독이 영화 ‘리바운드’를 비롯해 여러 방송에서 보여준 인물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태도에 감탄해 이 영화를 부탁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박지훈에게 단종 역을 맡긴 ‘신의 한 수’는 임 대표가 뒀다. 그의 대표작인 ‘약한 영웅’을 본 후 임 대표가 장 감독에게 추천했다. 임 대표는 “단종 역으로 티켓파워가 강한 안전한 배우들이 거론됐는데 대부분 나이가 너무 많았다”면서 “어리고 신선한 배우를 찾았다. ‘약한 영웅’ 속 박지훈을 보고 단종의 이미지가 잘 맞는다고 생각해 추천했다”고 전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본 후 단종의 묘인 장릉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정통성을 가진 어린 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손들의 사과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태원·세월호·항공기 참사를 보면서, 일개 시민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감정이 들었다”고 운을 뗀 임 대표는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그런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면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엄흥도의 모습을 통해 다음 세대를 보호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마음이 연결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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