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 대규모 해군력 강화에 나섰습니다.
총 5척의 신형 호위함을 약 3조 원의 비용으로 도입하는 사업인데, 이 사업에서 한국의 HD현대가 유력한 수주 후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배를 파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우디가 이 호위함들에게 반드시 요구하는 핵심 능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를 두고 지금 국내 방산업계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육군의 지대공 미사일 천궁2를 함선에 탑재하자는 것이죠.
어쩌다 육군의 미사일이 해군 함정에 올라타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을까요? 그 배경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3조 원짜리 호위함 사업, 핵심은 '탄도미사일 요격'
사우디아라비아가 신형 호위함 5척을 약 3조 원에 도입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 중이고, 이 사업에 HD현대가 유력한 후보로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가 제안한 모델은 HDF-6000으로, 우리 해군의 차세대 구축함 KDDX를 축소·설계한 함선입니다.
만재 배수량 6,500톤에 전장 150m, 최대 속도 29노트, 최대 작전 기간 45일의 준수한 제원을 갖추고 있고, 다기능 레이더와 KVLS 48셀을 핵심 무장으로 탑재하는 구성입니다.

문제는 사우디가 이 함선에 반드시 요구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입니다.
중동의 하늘에서 불과 몇 주 만에 실전으로 증명된 이 능력의 중요성을, 사우디는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이번 사업의 승패는 배 자체의 성능만이 아니라, 탄도미사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요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함대공 유도탄-Ⅱ의 치명적인 빈틈
우리 해군이 개발 중인 함대공 유도탄-Ⅱ는 공군의 L-SAM 항공기 요격 미사일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LIG넥스원이 사업자로 선정되어 2023년부터 2036년까지 총 6,900억 원을 들여 개발과 1차 양산을 동시에 마친다는 계획이죠.
이 사업비 안에 양산분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개발에만 쓸 수 있는 순수 예산은 5천억 원이 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은 예산으로 개발이 가능한 이유는 처음부터 설계를 단순화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해군이 요구하는 함대공 유도탄-Ⅱ의 방어 대상은 마하 이하급 초음속 대함미사일까지로 한정돼 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물론,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 능력은 애초에 목표에 없는 것이죠.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 하나만 추가해도 개발비가 두 배 이상 뛰고 개발 기간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 안에서 내린 현실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함대공 유도탄-Ⅱ는 미국의 SM-2에 해당하는 수준의 미사일이라고 보면 됩니다.
훌륭한 함대공 미사일이지만, 사우디가 원하는 탄도미사일 요격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L-SAM 2 해상형은 왜 대안이 될 수 없나
그렇다면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 개발 중인 L-SAM 2를 함선에 탑재하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L-SAM 2의 개발 완료 시점은 2035년이고, 완료 이후에도 해상 탑재를 위한 별도 시험에 최소 3년 이상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사실상 2040년경에나 실전 배치가 가능한 것이죠.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L-SAM 2는 미국의 사드(THAAD)와 유사한 고도인 75~150km 사이에서 요격하는 고고도 미사일입니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우리 해군의 주력 수직발사관인 KVLS-1에는 탑재 자체가 불가능하고, 더 큰 KVLS-2에만 탑재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에 제안 중인 HDF-6000에는 KVLS-2가 탑재되지 않습니다.
현대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KVLS-2를 탑재할 수 있는 9,000톤급 HDF-9000도 별도로 제안하고 있지만, 3조 원으로 5척을 도입해야 하는 사우디의 예산으로는 척당 건조비가 1조 5천억을 넘을 이 대형 구축함을 선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결국 지금 당장 KVLS-1에 탑재 가능하면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궁2, 의외로 유력한 해법
결국 남은 선택지가 바로 천궁2입니다.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안인 것입니다.
우선 천궁2의 크기는 400kg대로 KVLS-1에 탑재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함선에서 탄도미사일만을 요격하는 목적이라면 함대공 미사일 개발의 가장 큰 난제인 해수면 난반사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대함미사일을 요격하려면 미사일이 해수면 가까이 하강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난반사 문제가 생기지만, 탄도미사일 요격은 위로만 날아가면 되기 때문에 이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죠.
그만큼 개발 기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우디가 이미 천궁2를 대량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한 나라라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군수지원과 부품 공급망이 이미 갖춰진 미사일을 함선에도 탑재한다는 것은 운용 측면에서 매우 유리한 조건이죠.
경쟁자인 독일의 MEKO A200이 아스터-30을 탑재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구현하려는 방향과 비교해도, 한국의 천궁2 함재화 방안은 비용과 군수지원 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다고 보입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있습니다.
천궁2의 발사 방식은 가스 압력으로 미사일을 밀어올리는 콜드런치 방식인데, KVLS에는 이 가스 발생 장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천궁2 하단에 소형 부스터를 달아 핫런치 방식으로 쏘아올리는 형태로 개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도전은 아니지만, 추가 개발 기간과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KDDX에도 천궁2가 필요한 이유
이번 논의가 단순히 사우디 수출용 함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리 KDDX에도 천궁2를 탑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KDDX의 대공 방어 구조를 보면 상당한 공백이 존재합니다.
함대공 유도탄-Ⅱ는 최대 요격 고도 약 20km까지 커버하지만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이 없고, L-SAM 2 해상형은 75~150km 고도에서 요격하지만 그 아래 고도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는 손을 쓸 수 없습니다.
북한이 저고도로 단거리 대함탄도미사일을 발사해 KDDX를 공격한다면 현재 구조로는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는 것이죠.
바로 이 20km 이하 고도의 공백을 천궁2가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함대공 유도탄-Ⅱ와 L-SAM 2 해상형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중간 층 방어 수단으로서 천궁2, 또는 향후의 천궁3가 KDDX에도 탑재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중동의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전은, 다층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의 중요성을 세상에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호위함 수주라는 눈앞의 과제와, 우리 해군의 방어 공백을 메우는 중장기 목표가 천궁2의 함재화라는 하나의 해법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입니다.
육지를 지키던 천궁2가 바다 위에서도 그 이름을 떨칠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