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비의 모든 것은 류지현 전 감독과 함께 만들었다. - 오지환 인터뷰 ①

조회수 2023. 1.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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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 1학년부터 주전으로 뛴 만능 선수, 고교 지도자 곽연수 감독의 확신

- 트윈스 '10년 유격수 키우기' 주인공으로 낙점 후 이어진 슬럼프

- 2013년 수비 코치로 보직한 류지현 전 감독과의 만남 이후 각성, 매년 이뤄진 발전의 기억들


2010년의 어느 날, MBC스포츠+ 해설위원 김성한 전 감독과의 인연으로 곽연수 전 경기고등학교 감독(현 신흥고 감독)과 식사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 당시 곽 감독은 자신이 지도한 한 선수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았다.

"저는 지환이한테 야구를 가르친 적이 없어요. 그 친구 야구는 무조건 잘하게 되어있어요. 가만히 둬도 야구는 자동으로 잘 할 거예요. 제가 신신당부를 한 것은 '무조건 인사 잘해라.',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춰라.' 이 두가지를 강조했어요. 이제 보세요. 지환이가 어떤 선수가 되는지요."

2006낸 봉황대기 경기고와 부산공고의 경기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1학년 오지환(우)과 곽연수 전 경기고 감독. 이 경기에서 오지환은 상대 에이스 윤지웅에게 홈런을 치고, 9회 제구 난조에 빠진 김강률을 구원해 세이브를 기록했다. (사진 KBS 중계화면 캡쳐)

13년이 지난 지금, 곽연수 감독의 선수보는 눈은 정확했다. 지난 1월 19일, LG트윈스가 오지환에게 6년 124억(보장 100억, 옵션 24억)의 대형계약을 안겨준 것이다.  그 대형 다년계약의 당일 오후 두시, 오지환 선수를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오지환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바로 그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오늘 인터뷰를 위해서 특별히 오지환 선수가 정장을 입고 왔습니다."

홍보팀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고, 오지환 선수도 웃었다. 인터뷰를 위해서 자리에 앉았을 때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구단 간의 경계없이 돈독하기로 소문난 '90s'들의 축하 연락이 계속 쏟아졌다.

"이 전화 한 통만 받겠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NC 박건우 선수였다. 테이블건너 앉아있는 나에게까지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박건우 선수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고마워. 건우야. 정말 고마워."

아마 끊기 전까지 내내 웃는 얼굴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스무 번은 족히 했던 것 같다. 서로서로 축하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했다. 다년 계약 기사가 나간 후 축하 연락이 몇통이나 왔는가를 물었다.

"톡은 백통 조금 넘게 왔어요. 답은 나중에 몰아서 하려고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 오전, 6년 장기계약에 성공한 오지환 (사진제공 LG 트윈스)

인터뷰 마치고 톡에 하나하나 웃는 얼굴로 답을 할 오지환 선수의 모습을 잠깐 떠올렸다. 얼마나 좋을까?

"사실 저는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성공이나 큰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을 하지 앉았어요. 아니, 마음속에서 성공은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경기 고등학교) 위치 아시잖아요? 서울 강남 영동대로 한복판에 있죠. 야구장에서도 고개만 돌리면 대형 고층 아파트(아이파크 삼성)가 눈에 들어와요. 저는 군산에서 올라와서 혼자 살고 있는데, 제 학교 친구들은 다들 무슨 의사 아들, 법관 아들, 누구누구 아들, 다 이랬던 거죠. 제 스스로에게 일부러 동기부여를 하지 않아도 나도 언젠가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 것이라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그 고층 아파트 집값도 알아본 적이 있어요. 심지어 그 고층 아파트에 유명 연예인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연습경기하면서도 '내가 지금 잘하면 그 연예인이 볼까?'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이를 악물기도 했어요. 하하. 어렸죠. 이 정도면 자연스러운 동기부여 아닐까요?"

고교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교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13년 전, 곽연수 감독의 그 이야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지난 시즌 막판에도 오지환 선수에게 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

"제가 지난 시즌 막판에 캐스터님과 대화를 할 때, 이 이야기를 하셔서 저도 이후에 좀 생각을 해봤어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는데 곽 감독님은 정말로 저에게 야구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던 적이 없더라고요. 그걸 저도 캐스터님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던 거죠. 야구 기술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신 적이 없고, 플레이가 잘 안됐을 때도 질책을 하신 적도 없어요. 언제나 제게는 '무조건 사람들 마주치면 네가 먼저 인사해. 목소리 크게 안녕하십니까! 알지?' 이런 식이셨어요."

필자가 오지환 선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도 항상 서글서글하게 웃으면서 '안녕하십니까!'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은 2009년 프로 입단 이후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바뀐 적이 없다. 심지어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 눈을 보면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이 모습은 15년 전 고교 지도자 덕분에 이미 완성이 되어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무조건', '자동으로' 야구를 잘하게 될 것이라는 곽연수 감독의 판단에 대해서 오지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것도 제가 말씀을 듣고부터 쭉 생각을 했어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야구에 임하는 제 태도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군산에서 올라와서 혼자 살고 있었어요. 학교 숙소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고, 감독님께서 제공해 주신 숙소를 쓰기도 했죠. 고교 시절의 저는 개인 시간에 계속 훈련을 했어요. 그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고요. 또 학교 바로 앞 나무에 타이어를 고정시킨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배트로 타이어를 치는 훈련을 빠짐없이 했어요. 특히 배팅 개인 훈련을 하고 있을 때, 몇차례 감독님과 마주쳤어요, '얘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아도 훈련을 알아서 하는구나.' 제 생각에는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저런 식으로 생각을 하신 게 아닐까 짐작을 합니다."

고교시절 거르지 않고 실시했던 독한 개인훈련은 경기고등학교의 팀 전통과 더불어 지금의 '몸'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동현, 오승환, 황재균, 김강률, 최원제(2학년에 장충고 전학), 고종욱 같은 경기 고등학교 선배들 이름 들으면 생각나는 것 없으세요? 맞아요. 몸이죠. 고등학교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어마어마하게 했어요. 이건 학교 전통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정말 선후배끼리도 조금이라도 더 무겁게, 많은 세트를 하려고 경쟁이 엄청났어요. 제가 프로 초창기에 몸 때문에 '툴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알아요. 하지만 그건 저 뿐만 아니라 제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특히 종욱이형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근육이 정말 말 근육 같거든요. 저도 중학교 때부터 웨이트를 했는데, 경기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더더욱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렸고, 지금까지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곽연수 감독이 이야기한 '저절로', '자동으로', '무조건' 야구를 잘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정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순탄치 않았던 야구 인생에 대해서는 비단 LG 트윈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프로 입단을 했는데 제가 최고인 줄 알았죠. 최고가 될 거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 입단을 하고 보니 권용관 선배가 유격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선배님이 수비 정말 잘하셨어요. 저는 첫해에 주로 퓨쳐스에 있었고, 타율 0.312, 홈런 12개, 60타점을 쳤어요. 루키치고는 잘했죠. 그런데 9월 넘어서 엔트리 확장되고 올라와보니까 1군 선배들이랑 차이가 너무 큰 거예요. 권용관 선배님이랑 수비력 차이는 더 컸고요. 그때 정말 슬펐던 건 저도 제가 못하는 걸 아는데 스태프 누구도 절 인정해주지 않았던 거였어요."

2010년, 2년차를 맞이하는 오지환에게 구단은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박종훈 감독의 부임 이후 '향후 10년 유격수 키우기'의 주인공으로 그를 낙점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던 것처럼 너무 힘든 길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제가 2년 차 때 갑자기 주전이 되기는 했는데, 그때는 사실 실력이 모자라기도 했고, 그나마 있는 실력도 그라운드 안에서 제대로 안 나오고, 눈치도 엄청나게 보면서 야구를 했어요. 마음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담력이 약했나? 수비를 나가면 손을 덜덜덜 떠는 거예요. 심장도 터질 것 같았고요. 마음이 이런데 실책을 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떠는데. 제 그때 기록을 보세요. 내야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라는 유격수가 한 시즌에 실책을 스물일곱 개를 하고 있는데 팀 성적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27개의 실책은 오지환이 2년차 때 기록한 실책의 갯수다. 오지환은 프로 초창기 공격과 수비의 모든 기록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한 수치에 대한 언급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장기계약의 당일 오후, 사인을 했던 그 복장 그대로 잠실야구장 원정 감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지환
"스물다섯 개(2012년), 스무 개(2013,14년) 계속 그렇게 실책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자존감도 떨어졌어요. 시즌 마치고 군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런데 팀 성적이 안 좋으니 거의 2년에 한 번 씩 감독이 바뀌는 거예요. 바뀐 감독님들은 모두 '오지환은 내가 주전으로 키우겠다'라고 선언을 하시고요. 그럼 또 뛰고, 또 실책하고 이게 반복됐죠."

그래도 그렇게 여러 감독들이 그를 주전 유격수로 찍었다는 것은 고교 시절의 곽연수 감독처럼 성장 가능성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서 오지환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감독분들이 '쟤는 살짝만 만지면(고치면)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셨던 것 아닐까요? 또 제가 1차 지명 선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 마음은 그 시기에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류지현 전 감독님을 수비코치로 만나게 된 거죠."

중계진 감탄 자아낸 오지환 "40년 프로야구 유격수 계보 잇는 선수"

중계방송을 하면서 수비만 놓고 보면 김재박 - 류중일 - 이종범 - 박진만으로 이어지는 KBO 유격수 계보에 오지환의 이름을 올려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종열 위원과 나눴는데, 위 기사는 그 중계방송 이후, 필자와 이종열 캐스터의 대화를 바탕으로 한 기자가 수비기록을 근거로 추가해 작성했다. 2020년대 들어와서 오지환의 유격수 수비는 항상 리그 정상급이었다. 특히 김하성이 떠난 올 시즌은 단독 질주나 마찬가지였다.

한 시즌 기본 스무 개의 실책을 하던 유격수가 수비로만 놓고 보면 KBO 유격수 계보에 이름을 수비력을 갖춘 선수로 변모했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13시즌으로 기억하는데 류지현 당시 코치님과 새롭게 시작하면서 다 내려놨어요. 모든 걸 인정하자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는 지금 바닥이야.', '나는 선수도 아닌 학생이야.' 실책 20개를 넘게 하는 선수는 바닥이잖아요. '무조건 니가 바닥이라는 걸 인정해.'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류 감독님도 플레이 하나하나에 조언을 해주셨어요. 실책을 하고 들어오면 '천천히 해.', '고개 (돌리는 거) 빨라.', '평상시에 플레이하는 것처럼 다리 들고 다녀.(제스쳐로 봤을 때 뒷꿈치를 들고 다니라는 것 같았다)', 거의 개인코치처럼 제 곁에서 조언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인정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어느 순간에는 류 감독님 말씀이 종교지도자 말씀처럼 들리는 거예요. '맞아. 나는 급하고 빨라.', '고개? 맞아. 왜 고개를 그렇게 빨리 돌려.' 이렇게 저는 감독님이 말하는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류지현 코치를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치님한테 펑고를 1000개 씩 받았어요. 웨이트 꾸준히 한 것 때문에 기본체력이 원래 좋았는데, 여기에 기술체력, 저는 기술체력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술체력이 붙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매해 새로운 기술들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오지환은 이때부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직접 동작을 취하면서 본인에게 생긴 변화를 시연과 함께 설명했다.

정장 차림으로 본인의 수비 발전 과정을 열정적으로 시연하고 있는 오지환
"제가 처음에 수비를 할 때, 다리가 잘 떨어지지 않았어요. 류 감독님이 코치를 맡았던 첫 시즌에 체중 이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슬라이드 스텝과 중심이동을 배우면서 다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죠. 2년 째에는 범위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타구들을 최대한 정면으로 이동해서 처리하려고 노력을 했죠. 그러다 보니까 멀리 오는 공에 대한 대비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한 거죠. 범위가 넓어지니까 송구를 할 때 자연스럽게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동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땅에 붙어있던 발이 체중 이동을 통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타구의 방향에서도 힘을 받아서 송구로 연결을 해나갈 수 있도록 발전을 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의 영웅 탄생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 기이한 인연(류지현 감독)을 통해서 절세 고수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라면 맞을까?

"이 시점까지의 저는 무조건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었습니다. 타구는 오는 대로 잡아서 정확한 송구 동작으로 정확한 밸런스를 갖춰서 던지는 거요.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펑고를 많이 받으면서 앞서 이야기했던 기술들이 붙다 보니까 몸의 반응에 따라서 플레이가 되더라고요. 류 코치님과 함께 했던 4년 차 때부터는 런닝스로를 하더라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펑고로 익힌 기술들이 몸에 기억이 된 거죠. 5년 차 때부터는 바운드를 제가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설령 불규칙 바운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바운드가 오더라도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타구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고 있다 보니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렇게 류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제 자신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그는 이제서야 진정한 야구선수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불규칙 바운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주전이 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불규칙 바운드도 대비를 하면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둑은 둘 줄 몰라요. 그런데 그런 말은 압니다. '프로 기사는 몇 수 앞을 내다본다.' 저도 프로 유격수로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수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격수로서 몇 수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결국 타격의 순간 이 타구가 어떻게 올까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과정일 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이 있습니다. 류지현 코치님과 함께 훈련하면서 저는 고급 수비 기술을 배웠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야구선수가 된 것 같고, 그래서 주변에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 야구는 지금부터라고요. 늦게 알아서 야구가 더 재미있습니다."

2편에서 계속.

글 - SBS sports 정우영 캐스터

오지환 인터뷰 2편에서는 아래 내용을 담습니다.

- 오지환 시그니처, '벤트 레그 슬라이딩 백핸드 캐치'를 말한다.

- 이제 '나의 것'을 정립하고 싶은 타격 이론에 대해

- 김하성, 에드먼이 합류한 2023 WBC 대표팀에서 자신의 역할

- 다년 계약과 새롭게 수립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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