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그릇 지키기 또 성공했네…로톡 대신 변협 손 들어준 법원

박민기 기자(mkp@mk.co.kr), 강민우 기자(binu@mk.co.kr), 곽은산 기자(kwak.eunsan@mk.co.kr) 2024. 10. 2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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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톡분쟁서 변협 승소…위기의 리걸테크
서울 서초구 교대역에 걸린 로톡 광고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매경DB>
‘리걸테크(법률·기술 결합 서비스) 혁신’을 둘러싼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 변호사 단체와 로톡 간 다툼에서 법원이 변협 측 손을 들어줬다. 변협 등이 법률 서비스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이들 단체에 부과한 과징금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변호사 단체들이 로톡 등 법률 플랫폼에 대한 강경 대응과 규제를 예고하면서 앞으로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판사 정준영)는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에서 24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가 변협 등에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등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재판부는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있는 변호사 직무는 리걸테크 등 변화에 탄력적이고 유연한 규제가 요구되는 만큼 변호사 광고 범위를 정할 때는 변협에 상당한 재량이 부여돼 있다”며 “변협 등의 광고 규정 개정과 변호사에 대한 감독 및 징계에 절차적 하자가 없고 공정거래법 위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기존 법 체계와 리걸테크의 충돌 문제 예방을 위해 변호사들이 리걸테크를 이용하는 경우 사업 내용이나 활동에 대한 변협 등의 적정한 검토·심사 등 검증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변협은 로톡과 같은 법률 플랫폼이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변호사 알선’ 등에 해당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변협은 2021년 5~6월 법률 플랫폼 서비스 이용 규제 목적으로 변호사 업무 광고 규정과 변호사 윤리장전을 개정하는 등 로톡 가입 변호사를 징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로톡처럼 소비자로부터 비용을 받고 변호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서비스에 변호사가 참여하거나 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변협과 서울변회는 로톡 가입 변호사들에게 서비스를 탈퇴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고, 이에 응하지 않은 변호사들에게 견책과 과태료 부과 등 징계를 내렸다. 해당 변호사들이 징계에 불복하자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로톡 가입 변호사 123명에 대한 변협의 징계 결정을 취소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대한변협과 서울변회의 변호사 로톡 탈퇴 요구 및 징계는 잘못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각 10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치 이후 로톡 등 법률 플랫폼 서비스가 다시 운영을 시작하고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양측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지만, 이날 법원이 변협과 서울변회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리걸테크를 둘러싼 갈등에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변협과 서울변회는 즉각 ‘법원 판결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리걸테크에 대한 엄중 대응과 고강도 규제 등을 예고했다.

변협 측은 “법원의 공정위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판결을 환영하고, 변협의 징계 조치가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공정위가 무분별하게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며 “이는 법률 플랫폼에 대한 변협의 징계 행위가 합리적으로 근거 있는 행위임이 확인된 것으로 사필귀정(결국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르게 돌아간다)”이라고 밝혔다.

서울변회 측은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 그동안 변호사 광고 규정을 명확히 위반하고 있던 법률 플랫폼에 대해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해왔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엄중하게 대응하면서 규제에 나설 예정으로, 장기적으로는 법무부와 변호사 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고 합리적으로 리걸테크 업체들을 통제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변협이 다시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법무부가 이미 지난해 변협 차원의 징계 조치를 모두 취소한 이력이 있는 만큼 실제 징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변협 등이 리걸테크 기업의 돈줄을 조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변헙은 올해 상반기 벤처캐피털(VC)을 상대로 ‘리걸테크 스타트업 투자 시 변호사법 위반 주의 설명회’를 계획했었다. 리걸테크 투자시 수반되는 리스크를 설명하려는 자리였다. 하지만 벤처캐피털 등의 반발을 의식해 개최 직전에 행사를 취소했었다. 변협이 다시 비슷한 행사를 개최해 대외적으로 리걸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하는 여건 조성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게 리걸테크 업계의 관측이다.

로톡 측은 이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공정위는 판결 이유 등을 분석한 후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해 상고할 계획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리걸테크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커져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런 기류에 역행하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리걸테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한국의 리걸테크 산업 경쟁력이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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