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5일 오후 4시, 영국 팝 밴드 왬Wham!의 앤드류 리즐리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왬!의 동료 조지 마이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조지는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앤드류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도착한 선물에 고맙다는 인사 메시지를 남겨 두었던 것이다. 팝 음악에서 어느덧 빙 크로스비와 같은 플레이 리스트에 엮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되어 버린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의 원작자답게 조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사랑했다. 50대 중반이 되어 예전처럼 술에 취해 흥청망청 거리를 쏘다니지는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 만찬을 함께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5분 정도 지났을까, 조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지가 아닌 조지 여동생의 목소리, 조지가 죽었어. 2016년 크리스마스는 조지 마이클 생애 마지막 날이었고, 앤드류는 영영 크리스마스를 잃었다. ‘조지 마이클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단 글들이 인터넷 신문, 게시판에 두서없이 복제되었다. 한물간 팝스타,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원작자 조지 마이클이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아침 홀로 쓸쓸히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 슬픈 이야기는 완성도 있는 크리스마스 환상, 크리스마스 애상에 걸맞은 낭만적인 새드 엔딩으로 하루 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크리스마스에 품었던 온화한 설렘이 사라진 지 한참은 된 것 같다. 나의 12월 종교는 오로지 로맨스였으니 조급한 손길로 구원자를 애원하다, 1월 1일 종소리가 울리면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11개월 동안 줄곧 폭격과 테러로 성서의 정통성을 심도 있게 토론하는 두 종교의 지긋지긋한 대립을 모른 척 피해 다녔다. 당사자 없는 생일을 위해 당사자 아닌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 일도 할 만큼 했다. 판에 박힌 빨간색, 녹색, 황금색이 뒤섞인 마케팅 이미지가 나와 관계 맺은 온라인을 뒤덮는 일에도 정말 아연실색. 결산과 정산의 압박, 보은을 위한 친목과 사교. 마음이 상기되지 않는, 설렘 없는 12월. 그래도 12월. 캐럴은 들어야 했다.
GRP 재즈 레이블의 크리스마스 컬렉션, 《A Very Special Christmas》 콘서트 실황 앨범, 해 놓은 일 하나 없이, 속절없이 또 나이가 드는구나 싶을 때면 괜스레 들뜬 분위기에 기대고 싶어졌다. 12월에 듣는 캐럴은 헛헛해진 가슴에 잘 달궈진 핫팩 하나를 붙여 주었다. 캐럴이 머무는 대기에서는 쌀쌀맞은 기온을 살갑게 데워주는 인류애가 촛불처럼 애처롭게 타올랐다. 아기 예수, 코카콜라의 북극곰, 시아Sia의 〈Snowman〉, 지구상에 남겨진 감정이란 오로지 낭만밖에 없는 듯 나를 둘러싼 사방에 그린스크린을 걸어두고 세상 온갖 로맨스를 투사하면 나는 의연하고 너그럽게 새해를 맞이하는 어른을 연기할 수 있었다.
2016년 12월 25일 밤, 거리에서 스무 번은 넘게 들었을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마음 지그시 가다듬고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기에 적당한 때, 어쩌면 유일한 때였다. 수십 번 조지 마이클의 노래를 스쳐 지나면서도 그가 죽고 나서야 그를 떠올렸다. 각성은 왜 번번이 뒤늦고 마는가. 재킷 없는 싱글 레코드를 중고 레코드점에서 3,000원에 샀던 것도 20년 가까이 되는 듯했다. 20년이라, 그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음반을 찾아 툭, 레코드 바늘을 올리고, 지지직 옅은 소음이 주는 긴장감, 전자 기타 소리, 속삭이듯 메리 크리스마스, 건반, 종소리, 방울 소리. 이윽고, 조지 마이클의 허밍. 이렇게 느린 노래였나? 아, 싱글 음반의 회전수 45rpm. 제 속도를 찾은 조지 마이클의 보드라운 목소리가 슬로프 위의 능숙한 카빙스키처럼 널찍한 호를 그리며 방안을 휘감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고, 바로 다음 날 당신은 그 마음을 갖다 버렸지.”- 〈라스트 크리스마스〉 중에서
〈라스트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
이토록 잔인한 크리스마스 음악을 들으며, 아 겨울이구나, 크리스마스이브구나 해 왔다니. 비영어권 국가민의 삶이란, 크리스마스를 40번 넘게 겪어 본 사람의 현실이란 이토록 객관적이고, 희극적인 것이다. 이 맹숭맹숭한 세상을 어떻게 포장할까, 어떤 옷을 입어야, 어떤 집에 살아야 삶이 그윽해 보일까? 겉보기 등급이야 어찌 됐든 방 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캐럴을 듣는 순간은 연약하고 섬세한 소년 예오르기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가 세계적인 팝 스타 조지 마이클로 성장했듯, 나 또한 올 한 해 잘 해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뜬구름 같은 이 겨울 낭만을 잘도 즐기고 나면 또 한 해 살아갈 힘이 비축될지도 몰라. 노르웨이든 핀란드든 눈이 풍성하게 쌓인 겨울 마을에 가고 싶었다. 1년 내내 크리스마스인 곳, 로맨스, 낭만, 사랑, 어딜 가나 캐럴이 흐르는,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겨울뿐인 겨울 나라.
키프로스 출신 아버지가 혈통을 그대로 드러낸 이름을 지어 준 덕분에 예오르기오스 키리아코스 파나요투라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던 조지가 매끈한 영국 이름의 앤드류 리즐리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들은 비틀스, 퀸, 엘튼 존의 음악을 들었고, 이야기했고,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게 노래가 쌓이며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나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란 반드시 음악이어야 한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작곡을 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 밴드를 하자. 예오르기오스라는 어려운 발음 대신 영국식으로 조지라 부르기로 했다. 마이클은 그리스 친구 이름에서 가져왔다. 조지 마이클, 뭔가 할리우드 스타 같지 않아? “왬! 뱀! 아이 엠 더 맨!” 앤드류가 춤을 추며 호기롭게 외친 말이 조지의 마음을 관통했다. 그래, 우리 밴드 이름은 왬!이야.
“직업이 있든 없든 내가 남자가 아니라고 말 못 할 걸? 일하고 싶어? 아니! 즐기고 싶어? 그래!”
- 〈왬! 뱀! 아이 엠 더 맨!〉 중에서
스무 살의 조지 마이클, 그보다 생일이 6개월 빠른 스물한 살의 앤드류 리즐리는 1984년 5월 2집 앨범 《Make it big》의 첫 싱글 〈Wake me up, before you go-go〉로 영국과 미국 차트 1위에 오른다. 〈Careless whisper〉, 〈Freedom〉, 1984년 한 해에만 세 곡이 영국 넘버1을 기록하고, 다음 해에는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조지는 네 번째 영국차트 1위 곡이 되었어야 할 크리스마스 음악을 12월 13일 발매하기로 한다. 아직 《Make it big》 앨범 녹음이 들어가기 전 어느 날, 축구 중계를 보다 크리스마스 음악을 떠올렸다. 재빨리 건반으로 곡의 얼개를 만들었고, 앨범 녹음이 끝나자마자 곡을 완성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싱글이 발매되기 한 달 전, 왬!은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스위스로 떠났다. 영상 제작자들은 11월에 눈 내린 크리스마스를 연출할 수 있는 장소를 재빨리 찾아내야 했고, 스위스 베른주 크슈타트GStaad의 한 리조트가 낙점되었다. 그러나 해발 1,050m의 크슈타트에는 아직 기대만큼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마침 촬영팀에 1년 전 빌 머레이와 스위스 산지에서 영화 〈면도칼의 모서리〉 작업을 함께했던 스태프가 있었고, 그가 스위스 사스페의 한 호텔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안타마트텐이라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안타마트텐은 자신의 호텔이 있는 사스페야말로 11월에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소라고 설득했다. 4,000m 봉우리 13개가 해발 1,800m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보다 완벽하고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이 또 있겠는가?
이 통화는 40년 뒤인 2024년 10월, 내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찾아 사스페로 가게 되는 실마리가 된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를 사스페에서 찍었다고? 그럼 한 번 다녀와야지. 그런 사고 회로를 가질 만큼 풍족한 한국인은 내 주변에 없었다. 내 주변에 없으니 유독 나만 그런 사람일 확률은 아주 낮았다. 낮은 확률을 꾸역꾸역 높여가는 데 8년이 걸렸다. 2024년 10월 20일 스위스 항공을 타고 14시간 비행 끝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스위스는 나의 여행 리스트에 없던 나라였다. 스물넷, 배낭을 메고 2등석 유레일패스로 밤잠을 대체하던 시절, 루체른에 내려 하루의 반절을 보낸 적이 있다. 밥값이 비싸 마트에서 산 맨 빵에 물만 마셨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리기 산에 올랐다 내려와 이후 밤 11시 열차 시간이 될 때까지 아무 데도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맸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알프스 빙하 특급을 타고 스위스 발레주 알프스에 도착했다. 브리그 시내에서 첫날을 보내고 나서도 알프스를 마냥 걸어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조지 마이클과 사스페, 브리그의 지구 박물관과 알레치 아레나 빙하, 마티니의 와인, 체르마트와 마터호른. 이 정도의 계획만으로도 여행 이후 나의 삶이 한동안 아주 무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삶의 분명한 대책을 미루고 미루며 살아오지 않았다면 스위스에 다시 오는 계획도 마냥 미루어졌을 거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스페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 산악 열차를 타고 비와 안개구름에 완전히 동화되어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를 왕복한 뒤 고산병 증세를 안고 체르마트역으로 돌아와 다시 기차를 타고 스탈덴 사스Stalden-Sass역. 15분을 기다려 산을 휘감는 버스를 타고 30분간 쉼 없이 고도를 높인 뒤에야 사스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스 종점이라 정류장을 지나칠까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침침하고 적막한 버스 정류장을 나와 어둡고 적막한 상점가를 지나 호텔 크리스티나의 묵직한 나무문을 열었다. 불 켜진 간판을 지나칠 때마다 허기가 발동했지만, 일단 가방 무게와 축축한 밤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체크인을 하고, 내일 아침 케이블카를 무료로 탈 수 있는 사스탈 카드를 신청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먹을 수 있는 건 수돗물뿐이었다. 스위스에는 생수 대신 수돗물을 받아 마실 물병을 비치해 두는 호텔이 많다. 알프스 빙하에서 흘러온 수돗물로 샤워를 하고 삼키기도 하며 몸을 데우고 나서 내일 아침 조식을 기약하자, 라디에이터에 바짝 붙어 누웠다.
사스페에 도착한 〈라스트 크리스마스〉 뮤직비디오 제작진은 차가 다닐 수 없는 이 눈 덮인 마을에서 주민들 도움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걸 재빨리 알아챘다. 첫 촬영지였던 샬레에 난방이 되지 않아 재빨리 장소를 옮겨야 했고, 수소문 끝에 내부에 벽난로가 있는 샬레 티타를 찾아냈다. 그곳에서 왬!의 맴버들과 그들의 실제 친구들이 크리스마스 만찬 장면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샬레 티타의 외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긴밀한 주민 협조로 외부는 샬레 슐리히테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뮤직비디오의 첫 번째 장면, 케이블카를 타고 스키장으로 가는 친구들. 사스페 끄트머리에 있는 펠스킨 반Felskinn Bahn에서 케이블카에 탄 이들은 3,000m 고지 펠스킨에 내린다. 케이블카 문이 열리고, 가죽점퍼를 입은 운전기사가 표정 없이 케이블카 문을 연다. 찰리 슈미트라는 이 기사는 당시 왬!이 누군지 몰랐다고 한다.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았다는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 방송을 보는 게 흔한 시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 노래는 우리 마을의 노래예요.”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왬!의 실제 친구들은 촬영보다 공짜 스위스 여행에 비중을 두고 있었고, 왬! 멤버들이 그들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을 때 이미 알몸으로 눈밭을 뛰어다닐 만큼 취해 있었다. 다음 날 저녁 크리스마스 만찬 식탁이 차려지고, 촛불과 조명이 밝혀지고, 카메라가 돌자 출연자들은 카메라는 안중에도 없이, 안주 없이, 스위스 와인을 빠르게 마셔댔다. 촬영 이미지 때문에 음식에는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울었고, 비틀거렸고, 앤드류는 쓰러져서 화면 밖으로 퇴장당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술이 전혀 깨지 않은 상태로 엉성하게 샬레 울타리를 뛰어넘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사스페 관광 안내소에 들러 지역 안내 브로슈어를 가방에 쓸어 담다, 10월의 사스페에서는 랭플루Langfluh의 빙하를 보고 내려오다 스필보덴Spielboden에서 내려 마멋에게 먹이를 주는 걸 추천하며, 지금 출발하면 15분 뒤 정류장에 도착하고 13분 뒤 케이블카가 출발한다는 스위스 시계식 안내를 받았다. 마멋이 어떤 동물인가 찾아보니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설치류인데, 괴상한 울음소리를 합성한 영상들이 유행이었다. 재밌기는 해서 기다리는 13분 내내 비슷한 영상에 자동으로 노출되고 말았다. 중국과 몽골에서 마멋을 잡아먹은 사람들이 흑사병에 걸렸다는 뉴스도 있었다. 통통한 뱃살에 동그란 눈, 앙증맞은 두 손으로 땅콩을 까먹는 마멋이 깨물어주고 싶게 귀엽기는 한데, 깨물어 먹고 싶다는 과도한 판단까지 번지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허기 때문이었을까.
펠스킨 케이블카는 여전히 빨간색이었지만, 뮤직비디오보다 더 크고 각지고 날렵해졌다. 정류장에서 나와 조지 마이클이라도 된 듯 한 바퀴 둘러보면 제설기가 눈앞까지 인공 눈을 뿌려대고 있고, 그 위를 설상차가 다지고 고르며 저 멀리까지 스키 코스를 잇고 있었다. 펠스킨도 해발 3,000m 지역이라 살짝 휘청이는 두통이 느껴졌다. 커피가 필요했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오늘 뭔가 하나는 했다는 보람이 느껴져 조지 마이클에게 경의를 표한 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자, 쉴 틈이 없다. 관광 안내소에서 알려준 대로 랭플루행 케이블카를 타고 빙하가 있는 랭플루 정류장으로 올라왔다. 해발 2,870m, 거뜬하다. 머리 위, 발아래, 스위스 빙하가 눈의 여왕의 날카로운 손가락처럼 굳어 있었고, 거칠게 거뭇거뭇 갈라진 손가락 틈을 바라보자 두려움도 약간 일었다. 내 삶에 비하면 태초나 다름없을 빙하 쪽으로 하찮은 입김을 몇 번 불어넣고, 설상차가 지나는 소음을 등지고 정류장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셨다. 본 조비, 구구 달스, 스매싱 펌킨스, 줄지어 나오는 90년대 록 음악을 다 알고 있다니, 어지간히도 살았다.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이 주는 인간적 위로와 오래된 취향이 주는 수줍은 위안에 대해 생각한 뒤, 어쨌건 커피보다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어른의 생각에 휩싸여 하행 케이블카에 올랐다.
스필보덴Spielboden 정류소 밖으로 나와 사스페의 모든 스키 코스가 궁극에 모이는 장소라는 운동장 위치를 확인한 뒤 그곳을 종착점 삼아 지그재그로 길게 그어진 인간의 흔적을 따라 마멋을 찾아 나섰다. 작은 토굴 앞에 서서 마멋에게 땅콩을 주는 사람들을 엿보며, 모든 구멍에 마멋이 있는 건 아닐 텐데, 유행하는 영상 속 마멋처럼 서럽게 울분을 토하며 존재감을 드러내 주지도 않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헛걸음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딛고 서기 좋은 바위 위에 서서 가만 아래를 둘러보니, 쫑긋 머리를 내미는 마멋들이 보이고, 이쯤 아닌가 싶은 토굴 앞에 서서 땅콩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딸각딸각 흔들고 있으니 한 아이, 두 아이, 스윽 머리를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앙증맞은 두 손을 내밀어 땅콩을 받아 깨무는 뚱한 얼굴이 역시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웠다. 대여섯 마멋 친구들에게 겨울잠에 필요한 지방을 주입해 주고서 빈 땅콩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머니에 넣은 다음, 훌훌 걸어 점심을 먹을 레스토랑이 있는 해닉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향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조지는 작년 여자 친구였던, 올해는 앤드류의 여자 친구가 되어 있는 여자 주인공과 애정이 앙금처럼 남은 눈빛을 남몰래 주고받는다. 그리고 장면은 외부, 샬레 슐리히테 앞으로 바뀐다. 전날 와인에 취해 맨몸으로 수영장과 눈밭을 뛰어다니던 친구들이 눈 쌓인 평원을 뒹군다. 그 아래 땅속에 내 친구 마멋의 조상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해닉Hannig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려 같은 건물로 이어져 있는 베르그레스토랑에서 뢰스티를 시켰다. 맥주 한 잔과 스위스 청량음료 리벨라도 하나. 이곳에 올라오는 이유는 요즘 한창 사진 명소로 유명한 알프스 그네를 타기 위해서다. 그네를 타고 알프스로 발돋움하는 춘향, 아니 하이디, 둘 다 너무 오랜 조상들이군, 누구를 앉히면 참신한 상상이 될까. 접시에 남은 치즈와 감자를 싹싹 긁어 입안에 털어 넣은 뒤, 사스페 그네에 앉아 두어 번 반동을 주고, 거의 제자리에서 그네에서 내려 소똥 많은 산길을 살얼음 딛듯, 조심조심 걸어 내려왔다.
왬!과 친구들, 제작진의 숙소는 그들을 사스페로 불러들인 안타마트텐이 일하는 발리저호프였다.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이 호텔의 지금 이름은 발리저호프 그랜드 호텔 & 스파이다. 조지 마이클이 머물렀던 스위트룸은 조지 마이클 스위트룸이라 불린다. 이 방 숙박객에게는 기념품을 준다고 하는데, 대체 무얼까?
스위스 알프스 지역 여행에 꼭 알아 두어야 할 정보 첫 번째가 차가 다닐 수 없는 지역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스페와 체르마트. 하지만 유용성을 향한 인간의 탐구는 끝이 없어 농기계에서 건설장비까지 모든 운송 수단이 전기차로 대체되어 있었다. 각가지 용도와 모양의 전기차를 피해 호텔로 돌아가 음용 수돗물로 몸을 덥히고 오후 6시. 신선한 스위스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마시고 싶어 식료품점 쿱으로 갔다. 기나긴 알프스의 밤을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려면 맥주 몇 캔도 필요했다. 관광지이지만 6시만 넘으면 문 연 곳이 드물었다. 드문 틈새로 맥주를 마실 레스토랑을 찾아내기 전에 빌리저호프 호텔 앞으로 조지 마이클에게 경의를 표하러 갔다. 호텔 문 앞에 서서 조지 마이클 스위트가 어디쯤일까, 짐작 같지도 않은 짐작을 하는 척하다, 차마 호텔 로비에 들어설 용기는 없고, 이대로 돌아서기에도 차마 아쉬워, 브로치는 어디쯤 떨어져 있었을까, 더 머물러야 할 이유를 쥐어짜 냈다.
그러니까 그 브로치. 영상에서 조지는 애틋한 눈빛과 어색한 표정을 교환하고 있던 전 여자 친구에게 지난해 브로치를 선물했다. 여자는 지금도 그 브로치를 달고 있다. 둘 사이 남은 감정이 크리스마스 조명 아래 희미하게 반짝이고, 새초롬한 사랑의 흔적으로 쓴웃음만 짓다 휴가는 끝이 나버린다. 그런데 이 브로치가 없어졌던 것이다. 혼비백산한 제작진과 호텔 직원들이 호텔 모든 침대를 뒤집고 베갯잇까지 탈탈 털어 보았지만 누구 하나 기대하던 환호를 들려주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일행 앞에 문득 현관문이 열리고 눈을 털며 들어오는 직원 하나, 그가 내미는 영롱한 브로치, 오! 희미한 옛사랑의 흔적, 다시 찾은 크리스마스. 호텔 앞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워 왔다는 무심한 말로써 이 혼비백산 보물찾기가 끝을 맺는다.
조지 마이클이 죽자 사스페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는 나무를 심었다. 그 위치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무작정 나무 하나를 찾아 나서기에는 나무가 너무 많은, 1,800m 알프스 산중이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서 외관을 찍었던 샬레 슐리히테의 위치를 알아냈으나 사유지라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왬아메리카! 전미 투어가 반환점을 돌 때쯤 앤드류와 조지는 이제 긴 동행이 마지막 때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왬!은 정점에 있었고, 더 이상 발랄한 청춘, 삐딱하고 사회의식 가득한 스무 살 청년의 음악을 연장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둘 다 언젠가 이런 때가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어른이 된 자신을 맞이하고 받아들일 순간이 왔다. 조지는 솔로 음악가로서, 아이돌 스타가 아닌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지금껏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잃고 사회와 단절될까 두려워 매력적인 남성 조지 마이클을 연기해야 했던 파타요투는 왬!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꿈을 이뤄줄 사람을 만났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누구든 끝까지, 기꺼이 사랑해 줄 사람, 조지 마이클. 그는 조지 마이클을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자신의 불안한 처지, 불안정한 마음을 극복하고자 했다. 자신의 자아를 확고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검은 가죽 재킷, 까슬해 보이는 수염이 자연스럽게 구레나룻과 연결되고, 그 끝에 걸려 있는 금빛 십자가 귀걸이. 왬!의 히트곡 〈Freedom〉의 후렴을 장엄한 성가로 연주하며 왬!과의 연속성을 이야기한 뒤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솔로 가수의 시작을 알리는 〈Faith〉. 이어지는 〈One more try〉. 어른이 되기 전 크라운 맥주 광고 배경음악으로 나와 내가 살아갈 어른의 세계를 희망과 동경으로 그려 보게 했던 〈Kissing a fool〉. 매일매일은 동경을 현실 모양으로 깎아가는 과정이었지만, 사스페 어둑한 저녁 거리를 걷는 것으로써 나는 내가 그 동경의 세계에 어느 만큼 발 딛고 살아왔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맥주 세 캔과 탄산수 한 통이 든 비닐봉지가 사각거리는 소리 말고는 거리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 켜진 곳이 몇 군데 없었다. 호텔과 가장 가까운 비외 샬레The Vieux Chale라는 레스토랑으로 마음을 정하고 창 안을 슬며시 바라보자 오늘 아침 옆자리에서 조식을 먹던 남자들 셋이 보이고, 여자 점원 한 분이 인적 드문 길, 더 가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미소로 눈빛을 보내왔다. 다른 점원 한 분이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라 손짓했다. 가짜 장작불 근처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아 드니, 이것 참 곤란한데, 퐁뒤 전문점이었다. 에라, 일단은 발레주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세 가지 맛 수제 치즈퐁뒤와 발레주 화이트 화인을 추가로 주문했다. 끓고 있는 퐁뒤만 먹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느끼했겠지만, 당근이 많이 들어간 샐러드와 와인이 힘을 북돋아 주어 식빵의 3분의 1을 치즈에 흠뻑 적실 수 있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틀어주지도, 신청하지도 않았지만, 상상할 수 있었고, 미간으로 흥얼거릴 수도 있었다. 파나요투와 조지 마이클, 어린 시절 떠올렸던 어른의 삶과 어른이 된 나의 삶.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거나 확고해지려 했을까. 어른스럽게 와인 잔을 채우고, 식빵 한 조각을 끓는 치즈에 담갔다. 나에게 자아란 게 있다면 냄비 속 흐물거리는 치즈와 닮았을 것이다. 사스페의 밤이 깊어져 가고, 내일 김미페스를 걸어 로이커바드 온천에 도착하면 나의 자아는 더욱 습하고 말랑해지겠지. 그거야말로 어른의 삶 아닌가, 물렁한 자아로 어지간한 도전과 곤경을 되받지 않고 피해 가는 삶. 와인을 다 비우도록 기다리던 음악은 흐르지 않았지만 호텔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고 라디에이터 가까이 앉아 맥주 캔을 들고서, 휴대폰으로 〈Kissing a fool〉,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들었다. 지금껏 그랬듯 분명치 않은 내일이 흐물흐물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작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난 크리스마스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었고, 바로 다음 날 당신은 그 마음을 갖다 버렸지.”
지독하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글·사진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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