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인천] 자동차 사업 부흥 이끈 ‘한국지엠 부평2공장’ 보존되어야
로얄살롱, 에스페로, 프린스....
1980~90년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인기를 누렸던 대우자동차의 주력 모델들입니다. 모두 한국지엠 인천 부평2공장에서 생산된 차종들이죠. 1962년 국내 최초의 현대식 완성차 생산 공장으로 들어선 부평2공장에서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수많은 자동차가 생산돼 국내와 해외 곳곳으로 판매됐습니다.
부평2공장은 지난 2022년 11월 가동을 멈췄습니다. 대우차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 이곳에서는 동시에 4개 차종이 시간당 30대씩 생산됐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죠. 그러나 제너럴모터스(GM) 인수 이후 생산되는 물량이 점차 줄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수소차 등 이른바 ‘미래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캐즘(혁신기술이나 첨단제품의 판매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으로 전기차 수요가 위축됐지만, 탈탄소와 친환경이라는 추세에 발맞춰 내연기관차는 서서히 줄어들 전망입니다.
자동차 시장의 대전환기 속에서 국내 최초로 내연기관차를 대량 생산한 부평2공장의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부평2공장의 역사는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출발점이자 산업화 시기 자동차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한 인천과 부평의 희로애락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부평2공장 역사…1962년 국내 최초 현대식 자동차 공장 완공
부평2공장의 역사는 1937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일제는 지금의 부평2공장 부지를 사들여 군용차 생산공장 건립 계획을 세웠는데요. 1939년 자동차 부품 공장이 먼저 들어선 뒤 완성차 공장 건설도 시작됐지만,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완공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거쳐 10년 넘게 방치돼 있던 부평2공장 부지는 1962년 ‘새나라자동차’를 새 주인으로 맞습니다. 재일교포 박노정이 부지를 사들여 일본 닛산자동차에서 수입한 자동차 부품을 완성차로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죠. 그러나 새나라자동차는 재정난 등을 이유로 오래가지 못했고, 신진자동차가 공장을 인수한 뒤 1972년 GM과 합작해 지엠코리아를 설립했습니다. GM과 부평2공장의 관계는 이때 처음 시작됐습니다.
■‘영광과 추락’ 대우차 시절…GM 인수 이후 생산 감소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웠던 탓일까요. 기대보다 낮은 실적과 석유 파동 탓에 GM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부평과의 인연을 4년 만에 정리했습니다. GM은 지엠코리아 지분을 산업은행에 넘겼고, 회사명은 새한자동차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대우그룹이 1983년 새한자동차를 인수하면서 대우자동차로 사명이 또다시 바뀝니다.
대우자동차 시절은 부평2공장뿐 아니라 부평지역 일대에 호황을 불러왔습니다. 소형 세단 르망부터 고급세단 로얄시리즈까지 전 차종을 생산하면서 종합 완성차업체의 위상을 갖게 되죠. 대우자동차의 월급날이면 부평공장이 있는 지금의 부평구청역부터 부평역까지 온 거리가 노동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합니다. 동료들끼리 회식을 나오거나,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기 위해 상점을 둘러보는 가장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부평2공장의 기구한 운명은 이번에도 반복됐습니다. 1999년 대우자동차의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부도로 인해 부평2공장은 3년 동안 주인 없이 혼란을 거듭했습니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하고 ‘한국지엠’으로 간판을 바꾼 이후 부평2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해가 갈수록 줄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 위기를 맞은 GM이 전 세계에 위치한 자사 공장의 구조조정에 나섰고, 한국지엠 역시 그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죠. 2022년에는 마지막까지 생산되던 2개 차종마저 단종되면서 부평2공장은 문을 닫게 됐습니다.
■‘부평2공장 역사 보존’ 움직임 시작…흩어진 자료와 지자체 예산 확보가 과제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부평2공장에는 정적만이 남았습니다. 로얄시리즈부터 트랙스까지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에 탑재됐던 엔진들은 어두운 공장 한구석에 우두커니 놓여 있고, 생산 설비들도 기약 없이 방치돼 있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한국지엠 노조)는 언제 다시 가동될지 알 수 없는 부평2공장의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최근 아카이브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추후 부평2공장에서 다시 자동차가 생산되더라도 지금의 설비와 엔진을 따로 보존할 장소를 찾지 못하면 철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죠. 한국지엠 노조 관계자는 “부평2공장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오래전 생산된 자동차를 비롯해 관련 기록물의 보존이 미흡한 상황”이라며 “부평2공장에 남아 있는 설비와 엔진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소실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노조를 중심으로 부평2공장 보존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자체도 지원 방안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부평2공장의 관할 지자체인 부평구와 부평문화재단 등이 최근 공장 현장을 찾았고, 인천시도 관련 부서에서 아카이브 사업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죠. 대우차를 비롯해 전신 기업들의 기록 보존에 소홀했던 한국지엠 사측도 부평2공장 아카이브와 관련해 노조와 협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부평2공장의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록과 자료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 이를 확보하기 위한 과정이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지자체와 노사 모두 의지가 있지만,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죠.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문화재단 등 지역 문화사업을 운영하는 시 산하 기관에서 사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현재 책정된 연간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별도의 사업 예산을 편성해서 장기 계획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한국지엠 노사와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BMW나 벤츠, 일본의 닛산자동차 등은 기존의 공장 일부 공간을 리모델링해 과거부터 생산해온 자동차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변에는 식당가와 쇼핑몰, 공연장 등 주민과 관광객의 여가를 위한 시설까지 운영하고 있죠. 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자동차를 생산해온 부평2공장 역시 자동차 역사와 인천의 산업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자격이 충분합니다. 부평에서 시기별로 생산된 자동차를 비롯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기록물들로 채워진 부평2공장의 역사를 마주할 날이 다가오길 기대해봅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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