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쓰고 잘 살기] 빈티지 성지에서 보물찾기 | 전원생활

김민선 기자 2026. 2.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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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고태용과 알뜰한 동묘 쇼핑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2월호 기사입니다.

고물가 시대, 단돈 만 원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곳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만족도 높은 아이템과 세월의 결이 남아 있는 빈티지 상품이 가득하다. 알뜰하게, 하지만 가치 있는 물건을 발견하기 위해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과 함께 동묘로 향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묘시장.
동묘 벼룩시장(이하 동묘)은 1980년대부터 상인들이 하나둘 모이며 상권이 형성됐다. 당시에는 노년층이 주로 찾아 ‘노인들의 홍대’라 불렸다. 이후 몇몇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동묘의 쇼핑 풍경이 소개되며 분위기가 점차 달라졌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행인들의 개성 있는 차림은 화제를 모았고, 어느새 패션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불가리아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스포티함과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매치 정신”이라며 극찬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 결과, 독특하고 빈티지한 감성에 끌린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졌고, 지금의 동묘는 10대부터 80대까지 여러 세대가 어우러진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동묘에는 의류와 신발은 물론 전자제품·골동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건 ‘의류’다. 새 옷을 판매하는 가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중고 상품이 주를 이룬다. 운이 좋으면 단종된 제품도 발견할 수 있다. 가격은 대체로 낮은 편이다. 이는 상인들의 유통 방식과 연관된다. 일부 상인은 재활용품 수거함 등에서 모은 옷을 1㎏당 몇백 원에 매입한다. 이 옷들을 저렴하게 시장에 내놓는 덕분에, 소비자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물건을 집어 드는 선택이 성공적인 쇼핑이라고 보긴 어렵다. 상태는 괜찮은지, 나에게 필요한지 등을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패 확률을 낮추고, 알뜰하게 좋은 물건을 잘 고르는 것’. 이 기준을 수많은 옷을 다뤄온 전문가에게 들어보기로 했다. 18년 차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비욘드클로젯’의 대표 고태용 씨(45)와 함께 동묘를 찾았다.

18년 차 패션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비욘드클로젯’의 대표 고태용 씨. 동묘 벼룩시장에서 쇼핑 노하우를 설명해주고 있다.

보통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 쇼핑을 시작한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 길이 복잡하다. 주말은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옷 한 벌당 5000원!”을 외치는 상인들 사이로, 원하는 물건을 찾기 위해 옷 더미를 뒤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가판대에 놓인 상품은 품목 구분 없이 서로 뒤섞여 있거나 가격표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격을 물으면 상인이 금액을 부른다. 고 디자이너는 “흥정은 동묘 쇼핑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물건을 보는 안목만큼, 합리적인 가격으로 조율하는 태도도 중요하단다.

숨은 가치를 발견하는 재미
골목을 따라 거닐다가 고 디자이너가 예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무엇을 살지에 따라 다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동묘에 방문한다면 식비를 포함해 예산을 최대 10만 원 정도로 잡으라”고 조언한다. 동묘에는 저렴한 물건만 있는 건 아니다. 몇천 원대부터 수십만 원대까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고, 일부 상품은 그보다 더 가격이 높다. 

그러나 동묘 쇼핑의 매력은 비싼 제품을 사는 데 있지 않다. 가격 대비 가치가 뛰어난 아이템을 발견하는 데 있다. 보물찾기하듯 둘러보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 고른 저렴한 아이템이 쇼핑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고 디자이너는 아이템별로 코트 10만 원 미만, 니트 1만 5000~2만 원, 티셔츠와 모자는 각각 1만 원대가 적당하다고 제시했다.

바닥에 깔린 천 위에 옷이 수북이 쌓여 있고, 사람들은 몸을 낮춘 채 저마다의 보물을 찾아 손을 움직인다.
똑똑하게 따져 완성하는 쇼핑
옷이 여러 벌 빼곡히 걸린 가게 안으로 고 디자이너와 함께 들어선다. 그는 전문가다운 눈으로 옷을 훑어보며 옷걸이를 하나씩 넘긴다. 옷을 볼 때 눈에 띄는 오염은 없는지, 소매 길이는 입기에 적절한지 등을 살펴야 한다. 중고 거래 특성상 고가 브랜드 상품의 경우 가품(짝퉁) 여부를 확인하는 일도 필요하다. 구매를 결심한 제품이 있다면 브랜드 매장에서 실제로 판매된 적이 있는지 알아보면 도움이 된다. 기본 라벨과 세탁 라벨, 단추 같은 부자재가 기존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눈여겨본다. 다만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아서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은 중저가 브랜드 제품을 고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저렴하면서도 특별한 제품을 찾고 싶다면 유니클로·자라 같은 SPA 브랜드와 타사 브랜드가 컬래버(협업)한 제품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유명 디자이너나 하이엔드 브랜드, 캐릭터와 컬래버해 출시한 제품들은 감각적이면서 차별화된 스타일을 갖춘 데다 소위 ‘한정판’이어서 인기가 많다. 동묘에서는 이런 특별한 제품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만약 옷장 속 기존 아이템과 조합이 걱정된다면 베이직한 스타일을 선택해야 활용도가 높다.

가게마다 물건을 진열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신발 판매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동묘는 신발과 모자 같은 패션 잡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바닥에 물건을 늘어놓은 노점부터 내부에 깔끔하게 진열한 가게까지, 놓여 있는 방식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패션 잡화는 옷과 마찬가지로 가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가격은 가게와 상품에 따라 다르다. 저렴한 곳에서는 신발이나 모자를 5000원에, 선글라스는 1000원에도 살 수 있다. 시계는 보통 1만 원대부터 시작된다. 다만 가격에 끌려 구매하기보다는 상태·크기·착용감 등을 점검해야 한다.

동묘에서 만나는 다양한 즐거움
골동품 구경은 동묘 쇼핑의 또 다른 묘미다. 이곳에는 고서, 장식용 오브제 등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이 가득하다. 여러 골동품점 중 ‘하랑 갤러리’는 특히 볼거리가 풍부하다. 1만 원대 장식품, 10만 원대 동서양 골동품 등, 취급하는 품목도 가격대도 폭넓다. 잘 살펴보면 적은 돈으로도 희귀한 물건을 건질 수 있다. 절판본·희귀본 등을 파는 헌책방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엘피(LP)를 파는 레코드 숍도 가볼 만하다. 1960~1990년대 엘피가 주를 이룬다. 장르는 가요·팝·클래식 등 다양하다. 가격대는 몇천 원대부터 수백만 원대까지 형성돼 있다. 운이 좋으면 원하는 상품을 5000원에 구할 수도 있다고. 카메라는 노점에서 많이 판매된다. 필름 카메라, 초기 디지털카메라 등 1970~2000년대 제품이 대부분이다. 가격대는 보통 3만 원대부터 50만 원 이상까지로, 제품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밖에도 라디오·식품·악기 등 수많은 물건을 동묘에서 만날 수 있다. 

동묘 쇼핑 팁
동묘에 갈 때는 교통이 혼잡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구석구석 구경하려면 넉넉히 2시간은 잡는 게 좋다. 귀한 물건을 만나는 날은 복불복이니, 큰 기대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자. 노점과 가게는 일반적으로 평일에는 오후부터, 주말에는 오전부터 문을 연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하나둘씩 영업을 마친다.

김민선 기자 사진 고승범(사진가), 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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