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본더 공급망 다변화 불가피"…한미반도체와도 관계 회복 모색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능력 확대에 나선 SK하이닉스가 필수 제조 장비인 'TC 본더'(열압착장비) 공급망 다각화에 나섰다.
시장의 주류이자 기존 주력 장비 공급사인 한미반도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규 공급사인 한화세미텍을 통한 공급망을 다변화해 급증하는 HBM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한화세미텍과 10대(420억원 규모) 안팎의 HBM용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TC본더는 인공지능(AI) 반도체용 HBM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다. HBM은 D램을 여러 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D램에 열과 압력을 가해 고정하는 공정에 TC본더가 쓰인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HBM 5세대인 'HBM3E 12단' 제조 공정에 한미반도체의 TC본더를 사용했다. 하지만 한화세미텍을 신규 협력사로 공급망 다변화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물론이고, 반도체 업계는 전 세계 HBM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HBM 수요에 제 때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장비 공급사의 이원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 인상과 공급 지연 등 각종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비단 반도체 업계 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서 일반화된 공식"이라며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으로부터 HBM을 받으려는 것도 같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미반도체는 2015년부터 TC 본더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SK하이닉스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미반도체도 SK하이닉스의 벤더(공급업체) 이원화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갑작스러운 공급 계약 공시 등 이원화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한미반도체는 8년간 동결해 온 기존 장비 가격를 약 25% 인상하고, 그간 무료로 유지보수를 해 오던 고객서비스(CS)의 유료화 등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지난해 말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제기한 TC본더 특허권 침해 소송 등 두 회사 간 갈등 상황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양사 관계회복을 위해 최근 인천에 위치한 한미반도체 본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 뿐만 아니라 한미반도체 역시 고객사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한미반도체가 마냥 SK하이닉스에 서운해 할 일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달 31일 1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올해 1분기 매출 중 해외 고객사 비중이 90%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반도체의 핵심 고객사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미국 마이크론이다.
앞서 마이크론은 2017년 한미반도체를 찾아 TC본더 장비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의 협력 관계를 고려해 한 차례 이를 거절, 지난해 4월 HBM3E 8단용 TC본더를 마이크론에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HBM3E 12단 TC본더를 마이크론에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