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조선 1척, 호르무즈 통과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였던 한국 선박 1척이 이란 측과 협의하에 해협을 빠져나왔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벗어난 첫 한국 선박이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남은 25척의 한국 선박이 해협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란과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20일 오후 7시23분쯤 “한국 유조선 1척이 이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항행을 지속하고 있다”며 “해당 선박에는 우리 선원 약 10명이 승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어제(19일)부터 항해를 시작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지금 (이동 중)”이라고 했다. 조 장관은 이 유조선에 적재된 원유가 “200만배럴”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측이 지난 18일 오후 한국 선박 1척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가능하다고 주이란 한국대사관을 통해 알려왔다”고 밝혔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다 빠져나오게 된 첫 한국 선박은 HMM이 운용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인 유니버설 위너호다. 유니버설 위너호는 지난 19일 오전 카타르 인근 해역에서 운항을 개시했다. 전쟁 발발 후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온 다른 나라 선박과 같은 경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버설 위너호는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된 나무호와 같은 소속이다. 유니버설 위너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을 개시한 지난 2월28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페르시아만으로 진입했고, 3월4일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 원유를 선적했다.
“이란에 통항료 안 내 남은 25척 협의 지속”
내달 10일 울산항 입항 예정
기존 일정대로라면 지난 3월 말~4월 초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인근에 정박해 있었다. 이 배에 탑승한 선원은 한국인 9명, 외국인 12명이다. 유니버설 위너호는 다음달 10일 전후로 울산항에 입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 82일째인 이날 한국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오게 된 데에는 이란과 한국 정부 사이에 이어져온 협의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협상 결과인지 묻는 질의에 “결과적으로 잘되면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란 측이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통항료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란 항구 근처에서 머무르며 작업한 선박이 아니고, 정부 간 교섭의 결과로 통항하는 것이라서 미국의 제재 가능성도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이란에 통항료를 지급하는 선사·선박을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내 정박 중인 선박을 운용하는 일부 한국 선사는 안전 문제와 더불어 미국의 제재를 우려해 섣불리 이동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요 사안은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공격당한 한국 선박 나무호 사건과 유니버설 위너호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는 무관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나무호 피격 사건을 지렛대 삼아 이란 측과 협상을 한 뒤 한국 선박을 호르무즈 해협에서 빼낸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설명이다.
나무호는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날까지 호르무즈 해협에서 공격받은 전 세계 선박 39척 중 하나다. 나무호는 지난 4일 비행체에 두 차례 공격받았고 선원 1명이 다쳤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남은 25척의 한국 선박이 자유로운 통항을 할 수 있도록 이란과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외교부는 한국인 선원 수, 한국에 필요한 화물 선적 등을 고려해 향후 빠져나올 선박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 추가 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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