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청년에게 '푸른 고래'가 될 수 있다면

나수진 2026. 5. 1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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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엔 쉽니다]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사회적 고립 청년 머무는 서울 보문동 아지트 
"길 잃은 청년들, 회복은 함께 있는 것"
주일엔 쉽니다 - 편집자 주

'진격의교인'이 '주일엔 쉽니다'란 이름으로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왜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를 고민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살펴봅니다. 쏟아지는 사건 사고와 각종 뉴스 속에서 '안식일' 하루만큼은 순수함과 본질을 기억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만들어 봅니다. 편집국 기자들이 매주 1~3주 일요일에 연재합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청년 시절, 마음에 빛이 들지 않는 시절을 겪었다. 한 칸 남짓한 원룸 방에는 어느 면에도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친구도 없는 낯선 지역이었다. 의지할 이 하나 없어 학교와 집만 오갔다. 방에서 고독사한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그때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위층 언니 한 명이 유일한 출구였다. 종종 같이 밥을 먹고, 고양이를 돌보며 나는 조금씩 밖으로 나왔다. 

이런 고립의 시간을 겪는 청년이 많다. 통계청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은둔·고립 청년'은 50만 명이다. 청년 당사자들이 조사에 닿지 않거나,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은둔 고립 청년, 쉬었음 청년, 자립 준비 청년 등 제도권이 청년들에게 붙이는 이름은 많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궤도와 극심한 경쟁 속에서 비껴난 이들에게 고립은 공통으로 경험하는 감각에 가깝다. 

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건 햇볕과 관계다. 움츠린 몸에 구석구석 닿는 햇볕, 어두운 마음에 빛을 가져다주는 관계. 혼자서는 어렵다. 함께 모여서, 같이 해야 한다. 포유류인 고래들은 아픈 고래가 있으면 옆에서 몸을 툭툭 쳐 숨 쉴 수 있도록 물 밖으로 올려 준다. 익사할 위기에 처했던 고래는 동료들의 힘으로 떠올라 호흡한다. 

김옥란 센터장은 2019년 사단법인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를 열었다. 사회적 고립과 은둔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다시 사람과 일상을 만나러 오는 곳이다. 남편 김현일 대표와 함께 노숙자·빈민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바하밥집', 청년들의 그룹홈인 '바나바하우스'에 운영해 온 그의 세 번째 공동체 실험이다. 센터 이름에는 푸른 고래들처럼 서로의 호흡을 돕자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센터에는 간판이 없다. 청년들의 '아지트'이기 때문이다. 대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전한 공간과 밥 냄새,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센터를 거쳐 간 이들은 수백 명, 지난해부터 꾸준히 이용하는 청년은 70여 명이다. 이들은 매일 점심이면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운동·문화·여가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동료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 5월 8일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에서 김옥란 센터장을 만났다. 
김옥란 센터장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과 공동 주거하며 함께 살아왔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은둔·고립 청년들을 돕기 위해 센터를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고립을 통해 이해한 것들

김 센터장에게도 고립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홀로 딸 둘을 키웠다. 중학교 1학년 때 새아버지가 들어왔지만 알코올중독과 폭력이 있었다. 20살이 되자마자 어머니와 동생을 구출해 내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 마음이 무색하게 새아버지는 식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결혼은 오랫동안 남아 있던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다행히 좋은 배우자였다. 외로운 그와 '사람들에게 밥 먹이기 좋아하는' 남편이 만나 부부는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노숙인들의 밥집 쉼터, '바하밥집'이 그렇게 생겼다. 

그러다 한 청소년을 만났다. 부모는 있었지만 기능하지 못하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였다. 그 모습에 자신이 비쳐 보여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 주고 집으로 들여와 같이 살았다. 신앙을 갖게 되고 서울로 이사 올 때는 나들목교회네트워크의 지원으로 2000년 그룹홈 '바나바하우스'를 만들었다. 김 센터장 부부와 두 딸, 그리고 청년 여러 명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청년들과 함께 살다 보니 본격적으로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어렸을 때 고난의 시간이 있었지만 자기를 지켜 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그것이 하나님이었다고 해석하게 됐다. 자신도 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고 싶었다. 청년들이 겪는 고립감의 모양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고난받은 만큼 회복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청년들을 돕는 기관을 세우고 싶었다. 2017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미국에 있는 청년 회복 센터를 둘러본 뒤, 이듬해 센터를 만들었다. 직원 한 명과 김 센터장, 두 명이 점심을 만들어 청년들과 함께 먹고 야구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청년들 

한국 사회는 최근에서야 은둔·고립 청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2022년 국무조정실·통계청 조사에서 24만 4000명이었던 은둔 고립 청년은 2024년 53만 8000명으로 늘었다. 2년 새 두 배가 된 셈이다. 과거에는 가정의 결핍, 학업 스트레스, 중·고등 시절 학교 폭력 경험 등으로 은둔·고립하는 청년이 많았다면, 지금은 정서적 문제를 호소하는 청년들이 더 많다. 극심한 경쟁과 학업-취업-결혼 등의 정해진 삶의 궤도에서 비껴 나는 이들이 만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둔과 고립을 한 사람의 무기력이나 실패로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알고 보니 은둔형 외톨이였다는 식으로 쉽게 연관 짓기도 한다. 그래서 김 센터장도 이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은둔·고립 청년이라는 말 대신 '사회적 고립 청년'이라는 말을 쓴다. 자기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도록 하는 사회의 압력과 기준 탓에 청년들이 고립됐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센터를 이용하는 이들도 수혜자나 이용자가 아닌 '크루'라고 부른다. 

"저는 지금의 청년들이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10대까지는 학교라는 시스템과 짜인 루틴 안에서 자라잖아요. 그런데 스무 살이 되면 갑자기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해요. 자기뿐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도 봐야 하는데 그동안 훈련된 것들도 제한적이죠. 대학에 갔는데 부모님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때문에 선택했기 때문에 공부도 흥미롭지 않고, 어떻게든 졸업하거나 자퇴해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을 해 보지만 관계에 지치고 방향을 잃어요. 실패감과 상실감이 쌓이면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게 돼요. 

일례로 게임 중독 때문에 은둔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자신이 숨 쉬기 위해 게임하는 거죠. 센터에 가장 많이 오는 나이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청년들이에요.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서 청년들을 바라봐야 하는데 어른들은 '요새 청년들은 왜 이래'라고만 하죠." 

센터가 봉사자들을 위해 만든 매뉴얼. 센터를 이용하다 지금은 직원이 된 한 청년이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고립을 경험하는 청년들의 스펙트럼은 너무나도 넓다. 가족 돌봄 청년, 자립 준비 청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뒤 재취업이 안 된 사람, 학교 폭력 피해자, 우울·공황·조울 같은 정신질환자, 보이스 피싱 같은 범죄에 노출된 사람 등. 19세부터 39세 사이 다양한 배경과 상황의 청년들이 모여 있다. 

은둔의 유형이 하나인 것도 아니다. 활동형 은둔이나 간헐적 은둔도 있다. 이들도 헬스장에 다니거나 친구를 만난다. 다만 사람을 대할 상황이 낮은 쿠팡이나 편의점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아르바이트한다. 그러다 지치면 집 안으로 들어가 벌어 놓은 수입이 소진될 때까지 지내는 게 반복된다.  

김 센터장도 청년들이 센터 문을 두드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탈고립이 어려운 이유는 도움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실태 조사에서도, '고립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른다가' 가장 많은 응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오고 싶어 한다. 센터를 운영해 가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다.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센터까지 나오는 줄 알기 때문에, 김 센터장에게는 첫 상담이 가장 긴장되고 중요한 시간이다. 

"한번은 상담하면서 어떻게 센터를 알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물어봤어요. 하도 집에만 있어서 정말 나가고 싶었는데, 공황이 있어서 또 막상 용기가 안 났대요. 그런데 더 있으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오려고 방문 손잡이를 딱 만졌는데, 공황이 온 거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한동안 허무하게 며칠을 보냈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과로 뛰어간 거예요. 약을 처방받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센터를 이용하는 청년들이 지난해 스스로 만든 '우리들의 약속'. 뉴스앤조이 나수진

취업 대신, 함께 살 수 있는 에너지 

김 센터장이 생각하는 회복은 단지 이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고, 취업시키는 게 아니다. 함께 살 수 있는 에너지와 방법을 익히는 데 있다. 그가 반복해 강조한 말도 '고립에서 자립, 자립에서 공생'이었다. 함께 있을 때 갈등이 일어나고, 조율해야 하고, 협동해야 하니까. 그래서 센터의 목표도 단순히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크루'를 만나는 것이다. 회복의 끝은 선택이다.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안전함·소속감을 누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 이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알아 가기. 실제 청년들이 바라는 것도 당장의 취업이 아니다. 

"저도 청년들에게 어떻게 회복하고 싶은지, 1년 후 어떤 모습으로 바뀌고 싶은지 묻곤 해요. 그럼 첫 번째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편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통계 조사에서는 '취업'이 가장 많이 나와요. 생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하죠. 하지만 이곳에 와서 '취업해야 한다'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사람이고, 대부분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두 번째가 잘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회복의 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김옥란 센터장은 청년들의 신체 건강, 정서 건강, 관계, 자립 건강을 돌본다. 신체 건강은 야구로 푼다. 청년 회복 센터에서 야구를 한다는 게 어색해 보이지만, '홈'에서 나가 '홈'으로 돌아오는 운동을 통해 결국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집을 잘 만들어 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기가 9회 말까지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다는 것, 어떨 땐 1루까지 가기도 하고 어떨 땐 아웃되지만 홈런을 쳐서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구원해 줄 수도 있다는 것도. 그저 경기장을 뛰거나 햇볕을 쬐며 시야를 멀리까지 둬 보는 사람도 있다. 아침부터 움직이는 걸 힘들어하던 청년들도 막상 끝나면 "땀 흘리니 좋다"고 말한다. 

정신 건강은 예술로 풀어 간다. 청년들은 그림을 그려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작년에는 아리랑시네센터에서 작은 영화제도 열었다. 매일 점심 센터에서는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해 밥을 먹는 '쿠킹 런치'가 열린다. 깻잎을 처음 다듬어 봤다는 청년도, 배달 음식만 시켜 먹던 청년도 함께 서로를 먹이며 돌보는 법을 익힌다. 부모 교육도 한다. 사회적 불안이 고스란히 부모에게 주어지고,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된다는 게 오랜 시간 청년들을 만나며 김 센터장이 내린 결론이었다. 청년들이 회복되어도 부모 때문에 다시 고립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청년들의 회복은 부모 교육과 분리할 수 없다. 
야구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이다. 모두가 필드에 나와 글러브·배트를 잡는 건 아니다. 그저 햇볕을 쬐는 이들도 있다. 사진 제공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교회의 허들은 너무 높다 

푸른고래 직원들은 모두 크리스천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가진 청년들과 따로 모임도 한다. 그러나 청년들 앞에서는 신앙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센터가 종교적으로 비칠까 봐 기독교 언론과의 인터뷰도 지양해 왔다. 한국교회를 향한 청년들의 반응이 너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의 남편 김현일 대표가 모임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왜 센터에서 신앙 얘기를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 청년은 나중에 세례를 받았지만, 그때 김 센터장은 교회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을 직접 느꼈다. 조울증을 겪던 한 청년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갈등을 겪다 결국 다른 교회로 옮기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청년들에게는 저마다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었다. 

공동체 하우스에 살던 청년들과 함께 인근 교회에 갔을 때였다. 예배를 마친 이들이 한결같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 "허들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청년부 모임에 갔는데 다들 학교, 직장, 취업, 연애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너무 잘 사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은 자기만 동떨어진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이 풍경 앞에서 김 센터장은 한국교회가 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회의하게 됐다. 청년이 줄어들어 위기이고, 청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특정한 청년들은 교회에 속할 자리가 없다. 제도권 교회의 공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여겨서는 안 되고 '내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작은이들의교회에서 사회선교사로 파송받아 센터에서 청년들과 자체적으로 모임을 한다. 나들목네트워크에서 교회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과 드리는 '찾는 이와 함께하는 예배' 형식으로, 찬양 대신 노래를 부르고 삶을 나눈다. 이 시간이 김 센터장에게는 예배이고, 청년들에게는 '회복 모임'이다. 이를 통해 세례 받은 청년이 10명쯤 된다. 

"'내가 교회가 되어 주자'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와 사회선교사가 됐어요. 청년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어요. 교회를 가는 게 아니라, 내가 교회라는 것. 그걸 알게 되면 청년들이 흔들리지 않거든요."

많은 교회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며 푸른고래에 연락한다. 김 센터장은 솔직하게, 우선 현장에 있는 종사자가 소진되지 않도록 살피는 일부터 해 달라고 말했다. 단체가 건강하다면 그 단체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살펴줬으면 좋겠다. 야구나 바나바하우스 등 센터의 사업도 올해는 사업비를 따지 못해 잠정 중단 상태다. 그러고도 정말 이해하고 싶다면, 직접 와서 배웠으면 한다. 같이 숨을 쉬는 동료로서. 

나수진 sjnah@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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