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일로 중동전쟁, ‘호르무즈해협’ 막히면 한국 에너지 조달도 ‘비상’
이란산 원유 수입 안 하는 韓, 에너지 수송 경로 불확실성이 문제
(시사저널=채인택 국제저널리스트)
갈수록 긴박해지는 중동 정세가 한국 안보와 에너지 수송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스라엘이 자국에 탄도미사일 180여 발을 쐈던 이란에 보복을 예고하면서 중동 사태가 지역 안보 차원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에 본격적으로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우세한 정보·공작 능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가자지구 하마스와 레바논 헤즈볼라 등 친(親)이란 이슬람 무장정파 지도부를 연이어 제거하자 이들을 지원해온 이란이 보복하겠다며 10월1일 미사일을 날렸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대규모 보복공격을 다짐하면서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0월9일 지난 8월말 이후 49일 만에 통화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양 정상은 보복공격을 비롯해 확전 위기에 휩싸인 중동 사태의 해법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통화에서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헤즈볼라, 이스라엘·하마스 간 갈등과 분쟁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전쟁 중대 기로에서 바이든-네타냐후 통화
이번 전화 회담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바이든이 네타냐후와 통화하는 자리에 한창 대선전을 치르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초대형 허리케인 밀튼이 접근하면서 플로리다주 주민에게 소개령을 내린 상황에서 미 대통령과 대선후보이기도 한 부통령이 한자리에 나와 네타냐후와 통화한 셈이다.
바이든이 이번 통화에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보복과 확전이 11월7일 미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네타냐후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일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잇따른 비밀공작과 군사적 승리에 도취된 네타냐후는 자제를 요청하는 바이든의 말을 무시하고 확전을 거듭해 왔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물론 민주당 정권의 상황 장악력과 외교 능력이 도마에 오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모아줄 수 있는 미국의 유대인을 무시할 수도 없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기간에는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아브라함 협정을 맺고 이스라엘과 수교하는 등 지역 정세가 개선됐음을 강조하며 유권자의 표심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2021년 8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시작으로 중동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생긴 힘의 공백 때문이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중동 사태는 그야말로 박빙의 2024년 미국 대선전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회담 직후 발표된 성명에서 보복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바이든은 이번 전화 회담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보복을 하되 시기와 방법, 대상은 적절한 수준에서 조정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시기를 미 대선 이후로 미뤄 달라고 주문했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군수물자 제공, 이란과 헤즈볼라·하마스·후티 등의 정보 공유, 이란 미사일 요격 등을 위한 연합작전 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네타냐후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약 30분간 이뤄진 이날 양 정상의 통화에 대해 "직접적이고 생산적이었다"고 모호한 말로 결과를 정리한 이유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떤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양 정상의 통화 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장관은 군 정보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의 공격은 치명적이고 정밀하며 놀라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의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갈란트 장관은 "이란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한 채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모종의 비밀공작이나 은밀한 공격이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사후 부담이 크고 누구나 예측 가능한 핵시설이나 석유시설 공격이 아닌 은밀하고도 강력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다.
이스라엘, 핵·석유 시설 공격은 부담
사실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양국 공군력과 대공방어망의 현격한 격차다. 이란 공군은 75대 이상의 F-5, 62대의 F-4, 43대의 F-14, 35대의 미그-29 등을 보유하고 있다. 미군이나 이스라엘군과 비교하면 한참 뒤지는 구식 전투기 일색이다. 이란은 오랜 서방 제재로 부품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부 항공기는 세워놓고 부품을 뜯어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란은 방공망도 한 세대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라엘은 24대의 F-35와 83대의 F-15, 197대의 F-16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훈련은 물론 실전 경험도 풍부한 전력이다. 방공망은 고도별·거리별로 다층 방공망을 운용하고 있다. 그 위력은 이란의 지난 4월 미사일·드론 공격과 이번 10월1일의 미사일 공격을 대부분 막아낸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중동에 주둔한 4만 명 규모 미군과 영국군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보와 감시 자산을 사실상 공유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특히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은 자칫 위험한 방사능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바이든도, 국제사회도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란 핵시설 공격은 자칫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사막에 있는 베에르셰바 등 핵시설 등에 대한 이란의 재보복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시설에 대한 장군멍군식 공격 시도는 환경 재앙을 넘어 글로벌 안보 지형을 뒤흔드는 도박이 될 수 있다.
이란 석유 생산·선적 시설에 대한 폭격도 유가 폭등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져 세계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 이는 미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중동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국가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고품질로 유명한 이란산 원유는 수입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 데이터 제공업체인 CEIC 등에 따르면 이란은 2022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90만 배럴을 수출해 세계 16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전체 석유 수출액이 5억6500만 달러로 배럴당 1.72달러꼴의 헐값에 팔았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이란의 석유 수출과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란이 석유 시설 공격을 받아도 경제적으로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미 이란은 위기이기 때문이다.
석유 수출 1위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평균 736만 배럴을 수출해 연간 2248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배럴당 83.64달러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석유를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러시아도 하루 478만 배럴을 수출하고 1195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으며 배럴당 가격은 68.51달러였다.
하지만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UAE·카타르·바레인 등 페르시아만 연안국가에서 수출하는 석유가 지나는 급소인 호르무즈해협을 위협할 수 있다. 모두 한국에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산유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막거나 유럽과 아시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페르시아만 건너의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의 유전이나 가스전을 공격하는 것은 자칫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자해가 될 수 있다. 그런 행동은 전술적으로 얻는 게 거의 없는 데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자국 석유 산업의 숨통을 끊고 가뜩이나 심각한 경제 상황에 더 심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국민 생활 향상보다 해외의 대리 세력에 대한 군사 지원에 더 앞장서온 신정체제에 대한 국민 저항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변화하는 이란 국민들의 마음도 변수
이란 국민의 마음은 지난 6~7월 치러진 이란 대통령선거 투표율과 지지율에서 잘 드러난다. 투표율이 6월28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선 39.93%였지만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1위를 차지하자 7월5일 결선투표에선 49.68%로 껑충 뛰었다. 그 결과 페제시키안은 7월5일 결선투표에서 54.76%를 얻어 당선됐다. 45년 전 이슬람혁명으로 시아파 사제들이 선출된 권력을 좌우할 수 있는 신정체제를 이룬 이란 국민이 이제는 혁명 피로증을 나타낸 셈이다.
사실 중동 각국의 군주 국가와 권위주의 정부는 이슬람혁명 이후 자유를 외치며 혁명 수출에 열중해온 이란의 신정체제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본 게 사실이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확산을 위해 하마스·헤즈볼라·후티반군 등을 대리 세력으로 활용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중동 상당수 국가와 정부는 이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봐온 게 사실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전 세계 무슬림에게 지원을 호소했지만 이에 호응하는 나라가 별로 없는 이유다. 이슬람 소수 종파인 시아파를 대표하면서 혁명 수출을 기도해온 이란이 전체 무슬림 세계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대다수 미나(MENA·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무슬림 세계가 이번 사태에 침묵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민만 부를 가능성이 있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는 형국이 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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