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해외 기술유출 5兆… 산업스파이 잡는 `특허청 기술경찰`
밤 새며 잠복… 피의자 구속
법학·약학·변리사 이력 다양
2021년 사건 19% 처리 성과
"법률·근무여건 등 개선해야"


지난해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특허청 기술경찰 A수사관은 경기도 성남시 모 아파트 앞에서 잠복 근무에 들어갔다. 그동안 사무실에 앉아 출원 특허의 등록 여부를 심사하는 특허청 심사관 업무에서 벗어나 기술범죄를 수사하는 기술경찰으로 사건 현장에 투입됐다. A씨는 특허청에 근무하면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봄직한 잠복수사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모든 것이 그에게 처음이자 새로운 일이었다. 잠복수사에 나선 그의 임무는 며칠 전 중국에서 입국한 국내 반도체 대기업 출신 기술유출 피의자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동네 주민을 가장해 아파트 주변과 아파트 앞에 세워둔 자동차에서 동료 수사관과 3일째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다.
◇기술심사 대신 잠복근무·기획수사까지=그날도 허탕 칠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잠복 중 주범이 누군가를 만나 함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소재지를 쫓던 주범 외에 또다른 피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집에 들어가는 그들을 몰래 따라 급습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피의자 집에 있던 컴퓨터 외장하드와 노트북, 휴대전화 등을 빼앗았다. 이어 주범이 다른 피의자와 증거를 없애려고 했던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증거인멸·교사혐의를 더해 사전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A수사관 외에 기술 전문성을 가진 동료 수사관들의 집요하고 신속한 기술적 증거 확보를 통해 특허청은 지난달 3명을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첩보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 지 5개월 만이다. 기술경찰 출범 이후 처음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함으로써 해외 기술유출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류철종 특허청 기술경찰 수사관(서기관)은 "기술경찰과에 배치돼서 이렇게 다이나믹한 일을 할 지 전혀 생각도 못했다"면서 "동료들과 잠복수사를 거쳐 기술유출 증거를 신속하게 확보함으로써 범죄자를 잡아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이전에 하던 특허 심사 업무와는 또 다른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기술범죄 추적자 '특허청 기술경찰'…기술 전문성 살려 '맹활약'=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아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 간 첨단 기술 확보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써 개발한 기술을 유출·탈취·침해하는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술범죄 수법이 고도화·지능화·조직화되면서 기술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기술유출로 인해 입는 국가적 피해는 연간 56조원 규모에 달한다. 해외로의 기술유출 피해도 잇따른다. 최근 5년간(2017∼2022년 9월) 국내에서 해외로 유출된 산업 기술은 총 112건(국가핵심기술 36건 포함)으로, 피해액은 26조931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네이버 연간 매출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지식재산 전담 부처인 특허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19년 3월 산업재산조사과 내 특허, 영업비밀, 디자인수사팀을 출범시켜 본격적인 기술유출과 침해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그간 성과와 인력 증원을 토대로 2021년 7월 기술디자인특별사법경찰(이하 기술경찰)로 확대 개편했다.
기술범죄를 다루는 만큼 기술경찰들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법학부터 공학, 약학, 디자인 등 박사학위자부터 변호사, 변리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반도체 웨이퍼 연마 관련 기술범죄 수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김지언 수사관(사무관)은 법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 임용 연수를 받다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케이스다. 이후 특허청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하다가 기술경찰로 활약하고 있다.
기술경찰 조직은 기획수사와 디지털 포렌식을 담당하는 '수사기획팀'을 필두로 기술분야별로 수사를 담당하는 4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기술범죄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할당받아 수사를 진행하고, 필요할 경우 잠복수사를 하는 등 일반 경찰과 동일한 수사업무를 담당한다.
이형원 수사관(서기관)은 "한 개 기업이 36개 기업을 상대로 고소하는 사건이 접수돼 피고소 기업을 조사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며 "이렇다 보니 외근이 다반사이고, 출장도 잦아 수사관 사이에서 우리가 한 해 동안 이동한 거리만 지구 반 바퀴는 될 것이라는 농담섞인 얘기를 주고받곤 한다"고 했다.
수사관들의 노력 덕분에 기술경찰은 짧은 기간이지만 2021년 기준 국가 전체 기술침해 사건의 19.6%를 처리했다. 기술범죄 관련 입건자만 현재 1333명에 달한다.
◇양형기준 낮고 처벌 수위도 약해…"전문직 지정 통해 수사 전문성 높여야"=기술범죄는 국가적·경제적·산업적으로 피해가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죄에 비해 처벌이 약한 법적 한계가 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기술 피해를 피해자 스스로 입증하기 어렵고, 양형 기준도 낮아 강력한 처벌이 사실상 쉽지 않다. 여기에 초범 등 감경인자가 많아 재판 형량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실제로, 기술범죄자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치고 2년 이상 징역형 선고는 2.2%에 불과하다. 설령 유죄를 받아도 화이트컬러 범죄 특성상 형량이 낮다보니 기술 범죄자들 사이에서 걸리면 벌금 내고 말지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기술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기술경찰의 수사 범위도 특허, 영업비밀, 디자인, 부정경쟁행위 등에서 실용신안과 산업기술 침해 등으로 넓혀 기술범죄 수사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공무원 인사 특성상 3년 이내 순환 근무로 인해 수사 역량과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기술경찰 업무를 전문직으로 지정해 최대 5년 이상 근무하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성이 있다.
이선우 특허청 기술경찰과장은 "기술범죄는 이른바 '고급 범죄·화이트 컬러 범죄'로 불리는 만큼 수사 전문성 향상과 전문인력 증원, 첨단 수사역량 확보를 통해 신속하게 대응해야 기술 유출 및 침해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는 양형기준 강화와 수사범위 확대, 소송 관할 집중 등의 법·제도적 개선을 통해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서 기술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범죄 차단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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