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산후조리원비 500만원 내줬는데.." 사돈이 동네방네 하고 다닌 말에 기가 막혔다

딸이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의 마음은 바빠집니다. 내가 겪었던 산후의 고통을 딸만큼은 덜 겪게 해 주고 싶어 없는 형편에도 지갑을 엽니다. 그 정성은 생색을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마음이 엉뚱한 사람의 자랑거리로 둔갑할 때, 친정엄마의 가슴에는 말 못 할 응어리가 남습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이영희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20년 넘게 천안 시내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며 외동딸 지현이를 키웠습니다. 하루 여덟 시간을 서서 바코드를 찍다 보면 퇴근길엔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딸 생각을 하면 힘든 줄 몰랐습니다.

마트 계산대는 생각보다 고된 자리였습니다.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가기 어려웠고, 무거운 생수 묶음을 수십 번씩 들어 올리느라 허리에 파스가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진상 손님에게 반말을 듣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영희 씨는 "딸 학원비 한 달 치"라고 속으로 되뇌며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현이는 3년 전 같은 회사 동료와 결혼했습니다. 사위 집안은 천안 근교에서 대대로 과수원을 하는 집이었습니다. 사돈 내외는 말이 많고 활달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바깥사돈은 동네 모임마다 빠지지 않는 마당발이었습니다.

결혼할 때 영희 씨는 혼수를 넉넉하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돈댁이 은근히 서운한 기색을 비쳤을 때도 영희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혼자 키운 딸이라 부족하다는 말은 듣게 하지 말아야지.' 그 다짐이 영희 씨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봄, 지현이가 첫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영희 씨는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트 야간 근무까지 자청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딸이 아이를 낳으면 좋은 산후조리원에 보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출산을 두 달 앞두고 영희 씨는 딸과 함께 천안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는 산후조리원을 찾아갔습니다. 2주에 500만 원이었습니다. 지현이가 "엄마, 너무 비싸요. 그냥 집에서 몸조리할게요" 하자 영희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는 너 낳고 시댁 부엌에서 사흘 만에 밥을 했다. 그때 몸이 상해서 지금도 손목이 시리다. 너는 그러지 마라." 영희 씨는 그 자리에서 카드로 500만 원을 결제했습니다. 마트에서 몇 달 동안 야근해 모은 돈이었습니다.

결제를 마친 뒤 영희 씨는 딸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사돈댁에는 엄마가 냈다고 굳이 말하지 마라. 괜히 부담 느끼실라." 그것이 영희 씨다운 배려였습니다.

지현이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고,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편안히 보냈습니다. 영희 씨는 퇴근길마다 조리원에 들러 손주 얼굴을 보고 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몇 달의 고생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조리원 면회 시간마다 사돈 내외도 자주 들렀습니다. 바깥사돈은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서 손주 사진을 찍어 동네 단체 대화방에 올리며 흐뭇해했습니다. 영희 씨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손주가 사랑받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사진들이 어떤 자랑과 함께 퍼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영희 씨는 마트 단골손님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손님은 사돈댁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영희 씨, 사돈댁 바깥양반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던데요. 며느리 산후조리원을 천안에서 제일 좋은 데로 보내 줬다고. 500만 원이나 들었다면서, 요즘 그런 시아버지 없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해요."

영희 씨는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오해가 있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는 그 뒤로도 계속 들려왔습니다. 사돈어른이 동네 경로당에서, 교회 모임에서, 과수원 손님들에게 같은 자랑을 늘어놓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며느리 몸조리 비용은 내가 다 댔지. 친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시댁에서라도 해 줘야지."

그 말을 전해 들은 날 밤, 영희 씨는 부엌 식탁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낸 것을 알아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야근해 모은 돈이 사돈의 자랑거리가 되고, 그 자랑 속에서 자신은 '넉넉하지 못한 친정'으로 깎아내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희 씨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현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울먹이며 털어놓았습니다. 시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참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한 가지를 더 털어놓았습니다. 시댁 식구들 앞에서 시아버지가 "네 친정이 형편이 어려우니 우리가 해 준 거다, 고마운 줄 알아라"라고 말한 적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현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딸의 흐느낌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손주의 백일잔치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돈댁이 과수원 근처 식당에서 백일잔치를 열었고,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서른 명 넘게 모였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자 바깥사돈이 일어나 건배사를 했습니다. "우리 며느리가 몸조리를 잘해서 손주가 이렇게 튼튼합니다. 제가 조리원도 제일 좋은 데로 보내 줬지요. 친정어머니 혼자 고생하시는데 시댁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영희 씨는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 그 박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딸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위의 사촌 하나가 지현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형수님은 시아버님 잘 만나서 복 받으셨네요." 지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희 씨는 그런 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결심했습니다. 이번만큼은 딸이 고개를 숙이게 둘 수 없었습니다.

영희 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방에서 꼭꼭 접어 둔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산후조리원 결제 영수증이었습니다. 혹시 몰라 버리지 않고 지갑 깊숙이 넣어 두었던 것입니다.

"사돈어른,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바로잡을 건 바로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영희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영수증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지현이 조리원비 500만 원은 제가 마트에서 몇 달 동안 야간 근무해서 낸 돈입니다. 사돈댁에 부담 드리기 싫어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돈이 사돈어른 자랑거리가 되고 저는 넉넉하지 못한 친정이 됐더군요. 넉넉하지 못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 딸 몸조리 비용 정도는 제 손으로 댈 수 있었습니다."

식당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영수증에는 영희 씨의 이름과 카드 번호 끝자리, 결제 날짜가 또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바깥사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안사돈은 남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사위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장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고 다니시는 줄 몰랐습니다. 아버지, 지금이라도 장모님께 사과하세요."

바깥사돈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부인, 내가 잘못했소. 동네 사람들한테 체면 좀 세우려다 그만... 미안하오."

영희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저는 그 돈 생색내려고 낸 게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제 딸 앞에서 친정 흉은 보지 말아 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그날 이후 사돈댁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바깥사돈은 동네에서 더 이상 조리원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명절이면 영희 씨에게 과수원 배 한 상자를 보내왔습니다. 상자 위에는 서툰 글씨로 '사부인, 늘 고맙습니다'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며칠 뒤 지현이가 아기를 안고 친정에 왔습니다. 영희 씨는 딸이 좋아하던 미역국에 소고기를 듬뿍 넣어 끓였습니다. 딸은 미역국을 한 숟가락 뜨더니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엄마, 그날 엄마가 일어날 때 나 진짜 자랑스러웠어. 나도 우리 아들한테 엄마 같은 엄마가 될게."

연암 박지원의 소설 제목 『허생전』에는 체면과 허세에 매달려 실속 없이 큰소리만 치는 양반들이 등장합니다. 남의 수고를 제 것인 양 자랑하는 말은 잠깐의 박수는 받을지 몰라도, 진실 앞에서는 금세 허물어지기 마련입니다.

배려는 침묵할 때 아름답지만, 그 침묵이 왜곡될 때는 당당하게 바로잡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내 자식이 나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올가을 영희 씨는 손주를 유모차에 태우고 천안 천호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호수 위로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져 떠다녔고, 해 질 녘 햇살이 물결 위에서 반짝였습니다. 손주의 옹알이 소리를 들으며 영희 씨는 오랜만에 가벼운 걸음으로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출처 : '허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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