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영장판사들,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필요성 논의…“사생활 침해는 막아야”

홍다영 기자 2023. 5. 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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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지연, 증거 인멸 우려”
대법원(왼쪽)과 대검찰청 전경./뉴스1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 제도’ 도입에 대해 논의했다.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는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수사기관이나 사건 관계자를 불러 대면 심문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이다. 검찰은 이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 밀행성을 해치고 증거 인멸 우려가 높아진다는 입장이지만, 영장전담판사들은 “사생활 침해를 막고 국민 기본권 보호를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일 대법원은 전날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지난 2월 입법 예고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 대해 직접 영장을 발부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작년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1%로 무분별한 압수수색으로 인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 침해, 별건 수사를 막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는 발제를 맡아 기업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된 사내 변호사 A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압수수색 범위로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 내부 메신저,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 서버 저장 전자 정보’ 등이 영장에 적시됐는데, 실제 현장에서 수백만건의 파일을 선별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정 판사는 전했다.

결국 수사기관이 전체 파일을 가져간 뒤 A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지만, 막상 선별하자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에 A씨는 절차를 포기했다. A씨는 사건과 무관하게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수사기관에 넘겼다고 한다.

정 판사는 “‘본건과 관련 있는’이라는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능하고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압수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는지, (사건과 무관한)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을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에 떨며 산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정 판사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판사가 서면 심리 중 압수 대상, 범위, 방법 등에 대해 의문이 생겨도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담당 판사는 수사를 발목 잡는다는 부담감에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고, 이것이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정 판사의 설명이다.

정 판사는 이어 “추가 소명이 필요한 경우 수사 검사 등과 비공식적으로 통화하는 경우가 있으나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로) 영장 판사에게 대면 심리 수단을 부여하면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수사기관에도 서면으로 수사 필요성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전국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수사 정보 유출과 수사 지연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심문 대상은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으로 제한하고 비공개로 심문할 예정이기 때문에 수사 밀행성 확보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 판사는 “서면 심리만 할 경우 충분한 설명 기회를 갖지 못해 영장 기각 후 재청구로 이어지는 사건도 있을 수 있다”며 “대면 심리를 통해 영장 재판에 소요되는 기간이 단축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갖고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체포·구속·압수·수색·심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법률이 아닌 대법원이 권한을 갖고 있는 형사소송규칙 개정으로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심문(審問)이 아닌 심리(審理)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형사소송규칙 개정으로 도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 판사는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재 절차에 신중을 기하자는 취지로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석 심문, 구속영장실질심사 등의 형사 절차가 대법원 규칙에 규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은 늘 사악하고 계획적인 범죄자에 대해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며 “증거 인멸 우려가 큰 범죄자에겐 (범위가) 넓은 영장을, 그렇지 않은 피의자에게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포털 사이트 가입자 인적 사항, 폐쇄회로(CC)TV 영상, 상품권 사용 내역 등 개인 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과거에는 임의 제출받아 취득했으나 현재는 모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정식 압수하고 있다”며 “과거 영장 없이 수집하던 증거에 대해 현재는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할 수 있게 돼 있어 영장 발부 건수가 증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의한 대면 심리가 진행되는 이상 기일 지정, 소환 통지, 기일 진행, 심문 조서 작성 등으로 절차 지연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여러 사정으로 참고인에 대한 신속한 소환이 불가능한 경우 심리 절차 종료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며 “절차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절차가 길어질수록 수사 정보가 유출되고 증거가 인멸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찰 측은 “압수 전 전자정보 탐색 과정에서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지 않도록 이미 피압수자의 참여가 실무상 확립됐다”며 “범죄 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는 경우 피압수자는 준항고를 통해 법원의 심사를 받을 수 있고 만약 준항고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재판 절차에서 증거 능력을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이를 압수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검찰 측은 이어 “판사가 수사기관이든 참고인이든 대면으로 심리해도 실제 압수수색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정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며 “사전에 전자 증거의 압수 범위나 방법을 제한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면 심리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마치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전자 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대법원은 오는 6월 초 형사법연구회와 한국형사법학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를 열고 검찰, 경찰, 국회 조사관, 변호사 등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간담회에서 공유된 의견을 정리해 압수수색 영장 실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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