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이 이야기가 전 세계에 퍼지길”…위로 건넨 ‘노벨 문학상’

김애린 2024. 10. 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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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재학 열사의 아버지가 소설 〈소년이 온다〉에 남겨둔 메모.


책을 펼치니 빼곡한 밑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모서리를 접어둔 곳도 있었습니다. 어떤 구절은 펜 잉크가 번져 있기도 했습니다. '동호야아' 라는 문장에는 빨간색 네모 상자가, 그 옆에는 '문재학'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인물은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고 문재학 열사입니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동호'와 마찬가지로 문재학 열사는 초등학교 동창을 찾으러 당시 전남도청에 갔고, 마지막까지 남아 싸우다 숨졌습니다. 그의 나이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냈습니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이었습니다.

책이 세상에 나왔을 당시, 그의 남편은 손녀딸을 시켜 여러 권을 사다놨습니다.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우리 재학이가 나오는 책'이라며 권했습니다. 눈이 침침해 글자를 읽기 힘들다고 하면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좋아했을 텐데….' 김길자 씨는 생각했습니다.

김길자 씨는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부터 났습니다. 지난 삶을 다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김 씨는 "내가 두들겨 맞아 가면서 투쟁했어도 전국이 다 알지 못했는데, 작가님의 책이 퍼져나가 사람들이 읽어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죄책감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1980년 5월 25일, 김길자 씨와 그의 남편은 문재학 열사를 찾으러 도청에 갔습니다. 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문재학 열사는 동창 '창근'을 수습해 놓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부부는 그 길로 돌아섰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이 죽어 주검으로 실려 왔다는데, 차마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이틀 뒤 최후항전의 날, 부부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막차가 끊겨 집에 못 갈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문재학 열사는 '학생들은 손 들면 안 죽인다고 했다'며 부모님을 안심시켰습니다. 그 말이 문재학 열사의 마지막 음성이 되었습니다.

그날 억지로 끌고 오지 못한 게 부부의 마음에 오랜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소설로 되살아 난 동호의 이야기는 오히려 아들 재학이를 이해하게 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도청에 갔구나, 이런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었구나, 조금이나마 그 뜻을 헤아려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소설이 '동호'의 이야기를,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더 널리 실어 나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5ㆍ18기념재단 등 다른 오월 단체들도 수상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5ㆍ18 기념재단은 수상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은 1980년 5월이 광주를 넘고 전국을 넘어 과거 국가 폭력의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계기"라고 축하했습니다. 박강배 5ㆍ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이번 수상으로 5ㆍ18의 진상이 국내외로 더욱 알려지기를 바란다"면서 "5ㆍ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수상 소식과 함께 5ㆍ18민주화운동을 향한 왜곡과 폄훼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역사 왜곡이라느니, 5ㆍ18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은 가짜라느니, 모두 해묵은 허위 주장들입니다. 여러 차례 법원 판결과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5ㆍ18민주화운동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왜곡과 폄훼는 국가 폭력 희생자들과 유가족에게 상처가 될 뿐입니다. 5ㆍ18민주화운동부터 제주 4ㆍ3까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국가 폭력 희생자들에게 그 자체로 또 다른 위로가 되어준 것이 분명합니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세상을 떠난 문재학 열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재학아. 이제 네 뜻을 다 이루었으니, 하늘나라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즐겁게 지내고 아버지도 만나서 손잡고 놀러도 다니고 그래.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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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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