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경찰서 포토 라인에 선다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10. 15.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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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너무도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인간을 사랑하는 문제에 관해 생각해보자.”

영화 〈성덕〉은 한 연예인을 지독히 사랑한 팬의 이야기다. 어느 날 자신의 우상이던 스타가 무대 위 대신 경찰서 포토 라인에 서자 주인공은 ‘팬심’과 ‘분노’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사랑했던 예술가에게 배신당하는 경험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듯하다. 기념비적 영화를 여러 편 남겼지만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로만 폴란스키, 미국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찬사 뒤에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얼굴을 숨겼던 레이먼드 카버 등의 사례는 작품과 창작자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준다. 사생활 노출의 시대를 맞아 더 많은 ‘괴물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금,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자연치아

박창진 지음, 조성민 그림, 은행나무 펴냄

“치아가 망가지는 건 습관이 8할, 아니 어쩌면 전부입니다.”

치과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3주간 이를 닦지 말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닦는 학생은 점수를 깎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구취가 심해지고, 잇몸에 피가 나는 학생도 있었다. 3주 뒤 이를 닦고 나니 신기하게도 잇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치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오래된 이야기라고 한다. 치석은 몇 주, 몇 달간 칫솔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데에 생긴다. “칫솔질에 진심인 치과의사”가 쓴 책이다. 책 내용 전반이 이 닦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올바른 칫솔질, 칫솔 교체 주기, 구강 청결액의 사용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담았다. 서문 제목은 ‘지금 당신의 칫솔질이 잘못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치과의사인 그림 작가가 상세한 삽화로 이해를 돕는다.

 

고전을 펼치면 반드시 이로움이 있다

홍성준 지음, 시여비 펴냄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

병자호란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당시 ‘척화파’의 수장 김상헌은 꽉 막힌 명분론자로, 남한산성의 왕과 신하들이 몰살당하더라도 오랑캐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패할 때 화친해야 한다”는 김상헌의 상소를 읽으면 그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다. 적절한 군사력으로 힘을 과시해야 유리한 강화 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는 현실주의자의 면모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최근 뉴라이트 부류의 ‘조선 정체론’을, 주제별로 분류된 42종의 조선시대 문헌을 통해 반박한다. 조선을 망친 수구세력 정도로 알려진 노론과 그 수장인 송시열이 ‘여성 총포수 징집’이나 ‘사족호포론(양반도 군포 납부를 해야 한다)’의 주창자였다거나 숙종 당시 조선과 청나라 산학자 사이에 벌어진 ‘수학 배틀’처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성리학과 조선이란 국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실재론

스타티스 프실로스 지음, 전현우 옮김, 사월의책 펴냄

“소박한 불가지론적 경험론에 반대한다.”

당신은 전자나 블랙홀 등 과학 교과서에서 배운 여러 ‘개념’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그것들이 ‘실재(實在)하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과학 이론을 둘러싼 이 논쟁은 지난 1세기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어왔으며 우리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다. 예컨대 전자나 블랙홀이 현실 세계에 실제로 있는 ‘존재자’라면, 우리는 우리(인간)의 인식능력(=과학)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전자와 블랙홀이 단지 과학자들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이론적 구성물’일 뿐 허구에 불과하다면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져들 수 있다. 이 분야의 고전인 이 책은 지난 100여 년에 걸친 과학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탁월하게 설명하면서 ‘성공한 과학 이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와의 관계를 포착해왔고 그럼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과학적 실재론’의 승리를 선언한다.

 

삶이 흐르는 대로

해들리 블라호스 지음, 고건녕 옮김, 다산북스 펴냄

“그때 그 빌어먹을 케이크를 그냥 먹어버릴 걸 그랬나 봐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환자의 증상에 맞춰 적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의료’라고 배운 젊은 간호사에게 호스피스 병동은 ‘의학’을 새로 배워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으로 환자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엔 의학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는 것도. 임종을 앞둔 이들과의 관계는 의료적 처치 대신 이야기로 채워졌다. 가장 후회되는 일,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헤아리는 동안 환자라는 정체성은 그를 이루는 매우 작은 일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먼저 떠난 이들이 세상에 공유하고자 했던 삶의 교훈을 받아 적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

김지은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사실은 다 어린이와 관련돼 있다.”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누구나 어린이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의 어린이는 상상하지 않은 곳에서, 상상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린이는 어떤 존재일까? 저출생 시대, 어린 존재가 추앙받는다. 그런 한편 어딘가에서는 출입을 거부당한다. 김지은 평론가, 서한영교 작가, 배경내 활동가, 변진경 〈시사IN〉 기자 등 저자 12명은 모두 ‘현실의 어린이와 손잡고 틀을 비틀며 상자에서 걸어 나오려는 사람들’이다. 어린이를 품고, 어린이와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통찰을 나눠준다. 책을 읽고 난 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는 말의 의미가 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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