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골프장은 본인이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한 곳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베스트 스코어를 기록한 골프장에 대해서 누군가가 "거기 쉬운 골프장 아니야?" 혹은 '라베 골프장'이라고 말하는 순간 김 빠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골프장이 어렵다 쉽다를 어떻게 함부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골프장에도 분명 난이도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수치로 말입니다.
자신의 핸디캡만큼이나 꼭 확인해봐야 할 숫자 - 코스 레이팅 (Course Rating)
최근 국내 골프에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변화가 몇 가지 있습니다. 바로 골프 관련 수치의 '정량화'가 이루어지는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골퍼들의 실력을 나타내 주는 '핸디캡'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고 있고, 이를 관리해 주는 앱도 생겨나고 있어서, 골퍼들 간의 실력 차이를 '숫자'로 표현해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치 중 골퍼들이 기억하고, 라운드 전에 확인해야 할 수치가 있습니다. 바로 '코스 레이팅'입니다.
코스 레이팅 (Course Rating)이란 스크래치 골퍼(핸디캡 ‘0’)가 해당 코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코어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이 수치는 일반적으로는 67~77 사이의 숫자로 표현되는데, 코스의 길이와 코스 내 10가지 장해물 요소에 대한 난이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코스 레이팅이 72.5 인 골프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수치는 핸디캡 0인 골퍼(스크래치 골퍼)가 평균적으로 72.5타를 기록할 수 있는 코스라는 뜻입니다. 만약 이 골프장이 파 72 기준으로 만들어진 골프장이라면, 0.5타 정도를 더 기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니, 조금 더 어려운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70.5 정도의 코스 레이팅을 가진 코스라면 스크래치 골퍼가 70.5타 정도를 기록할 수 있으므로 조금 더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코스레이팅은 한 개의 골프장에 하나의 숫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9홀 기준으로도 바뀔 수 있습니다. 9홀의 코스를 가진 27홀 골프장이 있을 경우, 각 코스별로 코스 레이팅이 다를 수 있는 것이고, 이에 따라서 어떤 코스 조합으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같은 코스 내에서도 티잉 구역에 따라 코스 레이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Blue 티에서 칠 때와 White 티에서 칠 때 난이도가 달라지므로 서로 다른 코스 레이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남자 기준으로 볼 때 '화이트 티'는 대부분 72보다 낮은 숫자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는 스크래치 골퍼에게는 언더파를 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스 레이팅이 왜 중요한가?
이렇게 코스의 객관적인 난이도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최근 국내 골프의 긍정적인 흐름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핸디캡과 코스 레이팅이 조합되면, 골퍼들 간에 다양한 경쟁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골프는 분명 타수가 중요하고, 낮은 타수를 위해 노력하는 스포츠이지만, 반대로 실력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같은 장소에서, 그리고 같은 시간에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실 텐데요.
오늘 설명드린 코스 레이팅과 핸디캡 수치는 이러한 골프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핸디캡 수치를 통해 두 사람의 타수 차이를 '보정'해 줄 수 있으며, 코스 레이팅을 통해서 핸디캡에 따라 서로 다른 티잉 구역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실력차를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자기 실력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국내 코스 레이팅 시행 골프장 현황>
그렇다면 현재 국내 골프장의 상황은 어떨까요?
대한골프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 회원사 골프장의 코스 레이팅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300개의 골프장에 대한 '인증'을 마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이 정도면 국내 골프장의 절반 정도에 대한 인증을 받는 셈이 됩니다.
이렇게 코스 레이팅을 정한 골프장이 늘어나서 좋은 점은 있지만, 아쉽게도 많은 골프장의 홈페이지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배경과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골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러한 수치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
사실 코스 레이팅과 더불어, 슬로프 레이팅 (Slope Rating)이라는 요소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스크래치 골퍼와 보기 골퍼가 느끼는 상대적인 난이도 차이를 말하는데, 이는 조금 더 복잡한 개념이므로 별도의 칼럼을 통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코스 레이팅이니, 핸디캡이니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골프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제 주변에도 그냥 복잡한 거 다 빼고 플레이만을 즐기고 싶다는 분들도 분명 많습니다.
같은 여행지를 가도 그저 여행을 갔다는 사실만을 즐기는 분들이 계시고, 어떤 분들은 꼼꼼하게 계획표를 짜고, 현지의 정보를 최대한 자세하게 습득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제를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코스레이팅의 개념을 이해하고, 자신이 플레이할 골프장의 난이도를 확인하고, 왜 이러한 난이도로 평가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며 치는 것은 분명 골프의 또 하나의 재미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스레이팅 73-74쯤 되는 골프장에서 과연 무엇이 이 골프장을 어렵게 만들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데요.
다음번 라운드할 골프장의 코스 레이팅을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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