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타고니아'
한국환경공단이 주최한 ‘2024 대한민국 환경사랑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은 꼿꼿이 선 채 죽은 갈매기의 모습을 포착한 ‘Entanglement(얽힘): 지독하게 얽히고설키는’이었습니다. "낚싯줄에 얽혀 죽음에 이른 새의 모습을 통해 얽히고설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는 친환경 행동주의 브랜드 ‘페셰’ 이우열 대표 인터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한국의 ‘파타고니아’로!
“우리의 조금 불편한 하루가
지구에 건강한 하루 선물”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흑백사진 한 장. 뼈만 남은 앙상한 새의 몸에 얼마 남지 않은 털이 얼기설기 엉켜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몸 곳곳엔 낚싯줄이 휘감겨 있습니다. 꼿꼿이 선 채 죽은 갈매기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의 제목은 ‘Entanglement(얽힘): 지독하게 얽히고설키는’. 10월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주최한 ‘2024 대한민국 환경사랑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바닷새의 40%가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25%는 플라스틱 얽힘 피해를 보고 있어요. 낚싯줄에 얽혀 죽음에 이른 새의 모습을 통해 얽히고설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우열 ‘페셰(pesce)’ 대표는 새의 마지막 순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습니다. 페셰는 2020년 이 대표가 설립한 친환경 행동주의 브랜드입니다. 이탈리아어로 어류를 뜻합니다. 페셰는 해양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수명이 다한 물건을 업사이클링해 새 제품을 만들고(슬리핑 자이언트 프로젝트) 환경보호 가치에 동참하는 기업들의 콘텐츠를 제작(타이드 프로젝트)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치클린 캠페인’은 페셰의 근간입니다. 시민들과 함께 매달 전국의 바다를 찾아다니며 해양쓰레기를 치우는 일입니다. 친환경 가치를 몸소 보여주겠다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대표는 “낚싯줄에 걸려 죽은 갈매기도 비치클린 활동 중 발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치클린 캠페인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는 페셰의 ‘크루’가 됩니다. 이 대표는 비치클린에 앞서 크루들에게 오늘만큼은 도로 대신 철도를 이용하고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해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불편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구엔 하루치의 숨을 더 불어넣어주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Q. 페셰를 설립하기 전 사용자 환경·경험(UX·UI) 디자이너로 일했다고 들었다. 친환경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EBS 다큐멘터리 ‘인류세’를 보고 나서입니다. 첫 장면에 엄청난 쓰레기로 덮인 산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런 쓰레기산이 전 세계 곳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음료수 뚜껑을 가리키며)이런 걸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버리지 않나요. 나도 과거엔 이 쓰레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가 저 쓰레기산을 만든거구나 싶더라고요. 기업이 만들어주는 대로 소비하고 세상이 이끄는 대로만 살아선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특히 ‘바다’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어디로 흡수되는 줄 아나요? 대부분의 사람은 나무나 숲을 떠올리지만 정답은 물, 바다입니다(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바다는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의 90% 이상을 흡수했다). 방송인 타일러 라쉬의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된 내용입니다. 특히 지구 생물 중 가장 큰 뇌를 가지고 있는 향유고래는 매년 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합니다. 한 해 승용차 4만 대가 배출하는 양입니다. 고래와 같은 해양생물 보호가 몹시 중요한 이유입니다.
Q. 브랜드 설립 후 1년간 비치클린 활동만 했다고.
사업을 시작해보니 당장 친환경 소재나 기술로 물건을 만드는 건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해양환경보호라는 우리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참여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누리소통망(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적게는 10명에서 많을 땐 50명까지 모입니다. 특히 쓰레기를 주운 후엔 다 같이 서핑을 즐깁니다. 내가 청소한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해보는 것입니다. 환경보호 활동도 재미있고 ‘힙’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서핑을 통해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Q. 한 번에 줍는 쓰레기 양이 어느 정도인가?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나?
한 사람당 70리터 포대 하나를 다 채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제조일자를 보면 10년 전 버려진 쓰레기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건 어업활동으로 발생한 것들입니다. 환경에 가장 악영향이 큰 것은 스티로폼 부표입니다. 나는 이걸 ‘입 앞에 와 있는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스티로폼 부표는 파도에 쉽게 부서져 미세플라스틱이 되는데 이걸 섭취한 물고기를 인간이 다시 먹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습니다.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립니다.
Q. 낚싯줄에 걸려 죽은 새도 비치클린 활동 중 발견한 거라고.
인천 무의도에서 비치클린에 참여했던 수의사 크루가 처음 발견했습니다.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낚싯줄에 뒤엉킨 채 갯바위 위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손으로 아무리 끊어보려고 해도 안될 만큼 낚싯줄이 단단했습니다. 그러니 새의 날갯짓으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부리나 목 어느 한 곳에 걸린 낚싯줄이 점점 더 꼬이면서 온몸을 뒤감은 것 같았습니다.
Q. 해양생물의 플라스틱 섭식 피해만큼 얽힘 피해도 심각하다고 들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바닷새 종 가운데 40% 이상이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25% 이상이 플라스틱 얽힘 피해를 입습니다. 실제로 비치클린을 하며 그물에 걸려 죽은 토종고래 상괭이 사체를 여러 번 봤습니다. 대부분의 얽힘 피해는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빈도와 규모를 정확히 밝히기 쉽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위기에 처한 바다생물을 보면 119에 즉시 신고하고 이미 죽었다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에 알려 피해 원인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Q.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이미 만들어진 것을 오래 쓰고 또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셰의 업사이클링 제품은 뭘로 만드나?
가장 처음 만든 건 버려지는 서핑슈트를 재활용한 제품입니다. 서핑슈트는 네오프렌이라는 석유를 원료로 한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데다 수명이 1~3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버려지는 옷들을 보니 팔꿈치, 무릎 같은 데는 많이 낡았더라도 등, 배, 가슴 부분은 깨끗해 재활용이 가능해보였습니다. 안 입는 서핑슈트를 보내주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방식으로 원단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든 게 키링과 파우치입니다. 이 밖에 버려지는 당구대 원단으로 만든 서핑보드 커버와 워크재킷, 폐아크릴로 만든 치약 튜브 짜개, 표백과 염색과정을 생략한 티셔츠 등이 페셰의 대표 상품입니다.
Q. 가치소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친환경 제품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환경보호는 브랜드의 중요한 가치지만 그것이 소비자 선택의 최우선 기준이 돼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무엇보다 지구 환경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작은 환경보호 활동을 내세워 광고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당구대 원단을 재활용한 워크재킷의 경우 환불을 요구해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옷에서 히끗히끗하게 공이 굴러간 자국을 발견하고 제품 하자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럴 때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는 걸 자세히 설명해주면 대부분은 그냥 입겠다는 반응입니다.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좋아졌다는 걸 느낍니다.
Q. 환경보호의 가치를 다른 기업에 확산하려는 노력에는 무척 적극적이다.
친환경 가치를 내세우는 기업은 많지만 직접 그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몇 년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지분 4조 2000억 원을 모두 환경단체에 기부한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동참하는 곳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업의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사업이 ‘타이드 프로젝트’의 취지입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친환경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곳과는 협업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한 백화점과 ‘리얼스(RE:EARTH)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페셰는 1년 동안 백화점 외벽에 걸렸던 현수막과 고객들로부터 수거한 보냉백을 재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환경보전의 가치를 더 널리 공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지구를 위한 ‘불편한 행동’을 50년, 100년 이상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위기에 처한 해양동물을 발견했다면?
그물에 걸린 고래, 빨대가 꽂힌 거북? 119에 신고하세요!
위기에 처한 해양동물을 발견했다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합니다. 119에서는 가장 가까운 해양경찰 및 구조·치료기관에 연결해 즉시 출동을 요청합니다.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10여 개의 해양동물 전문 구조·치료기관이 전국에 있습니다.
전문가가 오기 전까지는 상황을 지켜보되 동물 근처에 가까이 가면 안됩니다. 해양동물은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공격성이 있고 사람을 피하기 위해 더 위험한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수공통감염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수부는 “직접 구조하거나 무리해서 바다로 돌려보내는 건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라면서 “구조·치료기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근처에서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해양동물의 목숨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