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의대 신입생은 수업을 들을까 [노원명 에세이]
설마하니 의대사태가 내년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에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정부도, 전공의도 버틸 수 없다. 누가 좀 더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일 뿐이다. 다만 만에 하나 이번 사태가 내년까지 간다고 했을 때 나는 100%의 확신을 갖고 2025학년도 신입생들이 수업거부에 동참한다는 쪽에 걸 수 있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의 인간과 나온 후의 인간. 자석의 N극과 S극만큼 다르다.
내년도 전국 의과대학 수시모집에 지난해보다 1만5000명이 늘어난 7만2000명이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의대 수시 모집인원이 전년(1872명) 대비 60.8% 늘어난(3010명) 탓이다. 정시를 합쳐 내년 의대 증원 총규모는 1509명이다. 이들 1509명은 의대 증원 정책의 최대 수혜자다. 윤석열 정부가 아니었으면 의사가 되지 못했을 학생들이다.
장담컨대 내년도 의대 신입생 4567명 중 그렇게 생각할 학생과 학부모는 단 한명도 없다. ‘원래 우리 아이는 의대를 가고도 남을 실력이었고 공연히 정원을 늘리는 바람에 의대 값어치만 떨어졌다’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2026학년도 의대정원 축소를 요구하며 집단 수업거부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만약 정부가 의사들 요구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 의대증원을 전면 백지화시키면? 집단 소송은 기본이고 나라를 두쪽 낼 기세로 무한 농성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이게 나라인가’ 하면서.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속이 빤하도록 이기적인 존재. 이기심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는 면죄부가 내려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고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공식이 일반적으로 공유된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그렇게 단순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스미스는 경제학자인 동시에 도덕철학자였다. 그는 인간은 첫째 세상의 평가에 의해 구속되고 두 번째 자기 양심에 의해 구속된다고 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의 평가, 고양된 인격의 소유자는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를 판단의 제1 준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은 두 가지 준칙에 동시에 규율된다. 외부 평가를 중시하는 마음은 ‘야심’을 자극해 인간을 경쟁하게 만든다. 양심은 ‘정의’로서 그 야심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정의에 의해 제어된 야심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쟁만이 진정한 사회 질서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도메 다쿠오,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자기 비하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은 스미스가 말한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가 미발육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반면 야심은 과잉 발육돼 있다. 의정갈등이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의 발육이 미흡한 사회 특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가령 ‘관찰자’의 시각이 발달한 문화권이라면 갈등 와중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일단 대화는 하자’ ‘2025학년도는 이미 끝났으므로 2026학년도부터 논의해 보자’ ‘전쟁중에도 수업은 들어야 하지 않나’ 같은 목소리가 나올법한데 안 나온다. 영국 같은 문화권이라면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왜 독일과 일본은 의대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들이 싸우지 않겠는가.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의 눈으로 미래 의사 수요를 추정할 때 의사들과 정부의 의견이 크게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일본 의사들의 이해가 한국과 달라서가 아니라 그 이해에 접근하는 모럴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현상이 의정갈등 문제에 그칠 리가 없다. 어느 사회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존재하고 큰 양상은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송·배전선망이 자기 동네를 지나가는 것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다. 영국 의회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이 늘 영국신사들처럼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해가 갈리는 문제에 있어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과 수준에는 편차가 있다. 공론장에서 높은 수준의 자기절제를 보이는 사람을 교양인이라고 하고 이 교양인이 많은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한다. 그런 나라는 갈등이 있어도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 선진국은 분열로 망하지 않는 나라이고 그러려면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를 키우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전 시어머니와 여전히 연락”…이혼한지 12년 된 여배우의 속사정 - 매일경제
- “한국에 언제 온거야”…삼성역서 목격한 러시아 출신 유명 모델 - 매일경제
- “짐승보다도 못한 처지였죠”…중국 신혼여행서 ‘그들’ 만난 20대 여성, 그 길로 - 매일경제
- 미코 출신 레이싱모델 신해리, 32세로 사망 - 매일경제
- “잠 깨려고 먹는 아메리카노 1등 아니었다”…휴게소 인기 최고 음식은? - 매일경제
- “퍽퍽 소리가 스크린 뚫고 나오는 느낌”…싸움 모르던 정해인이 꼭 보라는 이 장면 - 매일경제
- 1137회 로또 1등 ‘4, 9, 12, 15, 33, 45’, 보너스 ‘26’···당첨금 20억 - 매일경제
- “이정도면 판매 접어야 할 판”…중고시장서도 ‘찬밥’ 이 녀석, 뭐길래 - 매일경제
- “고향 갔더니, 너 성공했구나”…이재용도 ‘카니발’ 타자 일본차도 총공세 [세상만車] - 매일
- 안세영 최대 경쟁자 중국대표팀 탈퇴…은퇴는 미정 [After Paris]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