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또 응급실 ‘뺑뺑이’…신고 7시간 만에 수술했지만 끝내 숨져
복통 호소 14시간 만에 겨우 수술
“아빠는 평소 지병도 없었고 건강했어요. 말로만 듣던 응급실 ‘뺑뺑이’로 아빠가 돌아가셨다니 아직도 믿기질 않네요. 가슴 아프고 억울합니다.”
지난 9월 5일 경남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박동원씨(가명·54)는 평소처럼 웃으며 일터로 향했다. 딸 이슬씨(가명·25)는 여느 때처럼 출근 인사를 건넸다. 그날이 아빠의 마지막 출근이 될 줄은 몰랐다.
16일 이슬씨가 전한 사례와 당시 소방서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지난달 응급 처치와 수술 가능한 곳을 찾아 두 차례의 응급실 뺑뺑이를 겪은 뒤 끝내 숨졌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 취약한 지역·필수의료의 문제가 박씨의 죽음에 모두 녹아있었다.
그날 오후 8시 박씨는 퇴근길에 갑작스레 복통을 호소했다. 동료의 차를 타고 가까운 A병원을 찾아 진통제를 맞았다. 병원은 CT(컴퓨터단층촬영)와 엑스레이, 피 검사를 진행한 뒤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고 박씨는 그 길로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박씨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이슬씨는 아버지가 내원했던 A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진통제 부작용이 아닌지 물었다. 병원에서는 직접 와봐야 알 수 있다고 했고, 새벽 3시 가족들은 119 구급대를 불렀다.
박씨를 받아주는 응급실을 찾기는 어려웠다. 병원에 와봐야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던 A병원조차 박씨를 받지 않았다. 구급대는 거제 지역과 인근 진주, 부산, 창원 소재 약 10곳의 병원에 환자 이송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약 1시간 동안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박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A병원 측은 당시 박씨를 거부한 이유 등을 묻자 “해당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가 현재 부재중이라 확인이 불가능하다”고만 답했다.
전화를 돌리던 구급대원은 “아시다시피 의료 대란으로 응급실 상황이 좋지 않다”며 “병원이 잘 안잡힌다”고 했다. 해당 구급대가 소속된 거제소방서 관계자는 “당시 중복 포함 10개의 병원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며 “구체적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슬씨는 다급한 마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6일 새벽 4시반쯤 거제 소재 B병원에서 진통제라도 놔줄테니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B병원에서 박씨는 다시 검사를 받아 급성 복막염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수술 가능한 의사가 없어 여기서 수술은 어렵다고 했다.
B병원 응급과장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70분간 수차례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 “지금 해드릴 수 있는게 없다”는 말뿐이었다. 두번째 ‘뺑뺑이’를 도는 사이 박씨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열이 심해졌고 혈압이 떨어졌다. 폐렴 증상도 나타났다.
오전 8시 부산 소재 C병원에서 박씨의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사설 구급차를 불러 거제에서 부산까지 약 64km를 1시간30분을 이동했다. 이송 중 박씨의 의식은 점차 옅어졌다. 박씨는 오전 10시30분이 돼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박씨가 복통을 호소한지 14시간, 119에 신고한지 7시간이 지나서였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이미 다른 장기가 망가진 뒤였다.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지내다 이틀 뒤 심정지로 사망했다.
유족들은 집도의가 “뒤늦게 수술을 받아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슬씨는 “아버지가 (뺑뺑이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점점 의식을 잃었다”며 “어디에다 어떻게 이 억울함을 얘기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복막염 수술은 빨리할수록 좋고, 간단한 것은 빨리 들어가면 금방 끝나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를 수술할 수 있는 외과의사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슬씨 아버지의 사례를 두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지역의료,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모두 혼합된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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