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홈플러스 사태…MBK만 할수있는 일
홈플러스 무너져도 MBK는 한 푼도 손해 안봐
최대 피해자는 사모펀드업계…20년만에 ‘위기’
기업 지배구조 비판하지만 자신들은 더 ‘엉망’
김병주 사재출연 ‘한계’…“고려아연 재검토해야”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경제 뉴스 중 하나는 단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었고, 그 중심에는 운용자산(AUM) 310억 달러(45조 원) 규모의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있습니다. 올 들어 지금까지 가장 뜨거운 경제 뉴스는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고, 이번에도 MBK파트너스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도, 홈플러스의 전격적인 심야 기업회생 신청도 다른 사모펀드였으면 쉽게 하지 못할 일입니다. 설령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MBK파트너스와 그 설립자인 김병주 회장이기에 가능합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오는 28일 정기 주총에서 승부가 날 것으로 보이지만, 그동안 최윤범 회장 측과 MBK가 쏟아부은 엄청난 자금 규모를 감안하면 누가 이기든 2015년 MBK가 무리하게 인수해 이 지경에 이른 홈플러스처럼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특히 재계에 충격을 준 것은 헤지펀드나 행동주의 펀드처럼 대형 사모펀드가 부정적 여론 등을 무시하고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이 유통업계는 물론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준 것은 과정이 워낙 전격적이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인 데다, 그 주체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MBK이기 때문입니다.
MBK가 장씨 집안과 최씨 집안의 경영권 분쟁에 빠진 고려아연 인수에 나선 것은 국내 대기업들이 창업 세대를 지나 3~4세대 경영으로 이동하면서 경영권 분쟁 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대형 사모펀드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평판 리스크나 재계로부터의 견제와 따돌림, 정치적 부담 등을 의식해 분쟁 기업을 공개 매수하거나 인수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MBK는 과감하게 나섰습니다. 이 시장이 돈이 된다는 판단 외에도 MBK는 펀드 자금의 대부분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당장 누구 눈치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MBK의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마이클 병주 킴)은 몸만 한국인이지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어, 돈이 된다면 다른 것들은 애초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홈플러스가 소비자, 납품업체 등 관련 거래기업, 정부 당국 등에 큰 충격을 주면서 전격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은 그 주인인 MBK의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MBK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단기 유동성 악화와 이로 인한 기업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또 홈플러스의 자산이 부채보다 많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MBK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7조 2000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가운데 1조 2000억 원은 기존 차입금을 승계한 것이어서 실제 투입된 돈은 6조 원 정도입니다. 6조 원 가운데 절반인 3조 원 정도는 은행권에서 인수금융으로 차입한 것이고, 2조 4000억 원은 MBK 블라인드 펀드에서 조달했습니다. 나머지 7000억 원은 국민연금 6000억 원을 포함해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마련했습니다. 은행 등 외부 차입금은 그동안 25개의 점포 매각 등으로 상환했고, 현재 남은 금융권 부채는 메리츠금융 계열 3사 1조 2000억 원을 포함해 총 1조 4000억 원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쓰러지면 오너 대주주는 자신의 지분을 넘어서 거의 무한 책임을 지지만, 사모펀드는 다릅니다. 홈플러스가 최종적으로 회생하지 못하고 무너져도 홈플러스의 100% 대주주인 MBK는 손해 볼 게 없습니다. 법정관리 기업으로 좀비처럼 돼 생명을 연장해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자체적으로 동원한 자금은 3호 블라인드 펀드에서 조달했습니다. MBK 3호 펀드에는 홈플러스 외에도 오렌지라이프(현 신한라이프), 두산공작기계, 대성산업가스, 네파, 일본의 아코디아 넥스트 골프 등이 있습니다. MBK는 이들 기업 중 오렌지라이프의 경우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해 2조 원 이상 남겼습니다. 두산공작기계에서도 1조 원 이상, 아코디아 넥스트 골프에서는 무려 3조 원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3호 블라인드 펀드에서 아직 엑시트를 하지 못한 것은 홈플러스와 네파 정도인데,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MBK의 블라인드 3호 펀드의 내부 수익률(IRR)을 15% 전후로 추정합니다.
통상적으로 수익률이 7~8%를 넘으면 성공한 것으로 보고, 이를 초과하는 수익률에 대해서는 초과분의 15~20%를 운용사가 성과 보수로 가져가는 게 관행입니다. 결과적으로 MBK는 홈플러스가 망하든 좀비기업으로 연명하든 합계 1조 원 이상의 성과 보수와 운영 보수를 챙긴 것으로 추산됩니다. 당연히 3호 블라인드 펀드에 출자한 기관투자자(LP)들도 홈플러스의 생존과 무관하게 성과에 크게 만족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MBK의 전격적인 홈플러스 법정관리 신청은 이 같은 거액의 보수 확보에다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등 공룡 e커머스 기업들과의 가망 없는 경쟁에 시간을 끌기보다, 기업회생과 법정관리를 통한 엑시트 전략을 택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승자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어 경제계에 충격을 줬던 MBK와 김병주 회장은 이번에는 MBK답게, 마이클 킴답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국내 대형마트 2위 업체 홈플러스의 법정관리행을 택하는 엑시트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MBK도 마이클 킴도 아쉬울 게 없지만, 주변에는 고통받는 기업들과 개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장 2만 명 직원들은 앞으로 회생 계획안에 따라서는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e커머스 공습으로 유통산업의 맹주인 이마트·신세계와 롯데까지 흔들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홈플러스는 회생보다는 매각·폐업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금을 제때 정산받지 못하는 납품업체와 임차 점포 등 6000여 상거래업체와 관련 10만여 소상공인들도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야 합니다. 변제 의무가 없는 홈플러스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투자자들은 총 6000억 원 정도의 손실이 불가피하고, 이 중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금액만 2000억 원에 이릅니다. 이와 별개로 홈플러스 매장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1조 원대 리츠·부동산 펀드에 투자한 개인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홈플러스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내 사모펀드 업계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MBK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고려아연 분쟁과 홈플러스 사태는 20년 역사의 대한민국 사모펀드 산업의 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안타깝지만 ‘피크 코리아’(한국 경제가 성장의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처럼 국내 사모펀드 산업도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사모펀드 산업이 성장 발전하려면 투자한 회사가 크게 성장하고, 성장시킨 회사를 사줄 기업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투자한 회사를 성장시키기도 어렵고, 힘들게 키워도 적절한 값에 사줄 대기업이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장은 혼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아연과 홈플러스처럼 경영권 분쟁 기업이든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이든 닥치고 인수합니다. 몇 년 뒤 당연히 엑시트는 더 어려워집니다. 최악의 경우 사모펀드끼리 사고파는 이른바 ‘돌려막기’까지 하게 됩니다.
사모펀드업은 분류하자면 금융업입니다. 그만큼 평판과 기업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내 대표 사모펀드인 MBK는 고려아연에 이어 홈플러스까지 두 번이나 연속 스스로를 모욕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수백만 명의 소비자와 거래하는 홈플러스에 대한 기습적인 기업회생 신청은 신뢰도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먹튀와 모럴 해저드의 전형’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홈플러스 사태를 통해 국내 탑클래스 사모펀드조차 경영 실력이 저급한 수준임을 드러냄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도 두고두고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과도한 차입 경영과 산업의 미래에 대한 예지력 부재, 전문 경영이라기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가까운 경영, 턱없이 부족한 인재 풀(Pool) 등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닙니다. 걸핏하면 일반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비판하고 공격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내부 지배구조는 더 후진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MBK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공격하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게 확실히 입증됐습니다.
이로 인한 피해와 폐해는 고스란히 당사자인 MBK는 물론, 사모펀드 업계 전체가 함께 질 것입니다. 사모펀드에 대한 정치권과 국회, 감독 당국의 규제가 본격화될 수밖에 없고, 국민연금·은행·증권 등 기관투자가들은 사모펀드에 자금 공여를 꺼리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사모펀드가 국가 기간산업이나 소비재 산업 등에 투자하려 할 경우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M&A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세계 10위권 대국과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1인당 국민소득 순위 6위라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듯이, 대한민국 사모펀드 산업도 출범 20년 만에 운용자산 140조 원 정도에서 정점을 찍고 추락하는 듯합니다. 대한민국 사모펀드 산업은 다시 턴어라운드할 수 있을까요?
홈플러스의 주인인 MBK는 자신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16일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특히 김병주 회장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사재출연 등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이 정도로 ‘먹튀 논란’ 등 이번 사태의 파장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MBK와 김병주 회장은 사재출연을 넘어 고려아연 인수 등 현재 진행 중인 딜(Deal)부터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