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서 유례없는 ‘반의사불벌죄’…경찰이 수사해도 피해자가 요청하면 처벌은 못 한다?
”가해자 합의 빌미로 2차 범죄 저지르게 해”

작년 9월 14일, 전주환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인 피해자를 살해했다. 전주환은 살인에 앞서 피해자를 상대로 지속적인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2021년 10월 피해자에게 교제를 강요했고, 피해자가 거부하자 1년 동안 350차례에 걸쳐 불법 촬영물과 메시지를 전송하며 스토킹했다.
사실 전주환의 살인을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법원이 전주환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경찰이 스토킹 혐의가 추가된 전주환의 구속영장 신청을 안 하면서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로 ‘반의사불벌죄’를 꼽는다. 반의사불벌죄는 쉽게 말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한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수사기관은 수사를 하고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스토킹 가해자들은 수사 대상이 된 후로도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며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전주환 역시 피해자가 고소한 이후 수백 회에 걸쳐 “찾아갈 수밖에 없다”, “내 인생 망칠 거냐”며 문자메시지를 보내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2차 스토킹을 하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신당역 살인사건 발생 직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반의사불벌죄를 즉각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경찰청 ‘스토킹 범죄 현황’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인 2021년 10월 21일부터 작년까지 스토킹 범죄 피해자 수는 7718명이고 검거된 가해자는 7152명이다. 경찰은 그중 4554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2557건에 대해서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불송치 사유를 보면 ‘공소권 없음’이 1879건으로 전체 불송치 건수 중 26.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나, 반의사불벌죄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한 것이다.
폭행죄, 과실치상죄, 협박죄, 명예훼손죄 등 형법과 특별법상 다수 법률에 들어간 반의사불벌죄는 1953년 9월 형법 제정 당시 도입됐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고소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우선 수사를 진행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공소를 제기하지 않도록 규정한 것이다. 경미 범죄에 대한 당사자 사이의 분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
반면 신당역 살인사건처럼 피해자에 대한 합의 종용 등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와 관련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한 장관은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되면 경찰도 이 사건이 수사가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불안정하기 때문에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렵다”며 “반의사불벌죄 폐지가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접촉을 차단해 주고 초기부터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신당역 살인사건 이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반의사불벌죄 폐지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다. 법무부는 작년 이런 내용을 담은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올해 5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게 주된 사유다.
이에 법원이 반의사불벌죄 관련 논의에 뛰어들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는 외국의 입법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라며 “이런 특유의 제도가 도입된 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해 관련 사례와 논의가 다수 축적됐고, 최근 관련 법률안 발의도 다수 이뤄진 만큼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기능과 의미에 대한 연구와 검토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반의사불벌죄가 ‘경미’한 범죄에 대한 신속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폐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스토킹 범죄나 교제 폭력 등은 경미하게 시작해 중대범죄로 발전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도 “스토킹 범죄는 집착 범죄 유형이지만, 반의사불벌죄라는 것이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또다른 스토킹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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