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의 부활 下] 세계 위상은 '전략자원'…한국은 여전히 '폐기물' 취급

진명갑 기자 2026. 4.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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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자동차 철스크랩 회수율 60% 불과
폐기물 비용 전가…제도 재정비 시급
산업부·국토부·환경부 多 부처 얽혀
에스피네이처 슈레더 사업소에 가공된 철스크랩이 쌓여있다. [출처=진명갑 기자]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적 흐름 속에서 고철(철스크랩)이 '쓰레기'에서 '전략 자원'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단순 재활용 자원으로 여겨지던 철스크랩은 이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핵심 원료로 평가된다. 주요국은 수출 제한과 비축 정책을 통해 자원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K-스틸법을 통해 정책 기반 마련에 착수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폐기물 관점의 관리 체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BN 산업경제>는 고철의 전략자원화 시대 흐름과 현장의 목소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고철이 '전략자원'으로 불리는 시대가 됐다. 철스크랩 업계에도 AI 로봇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양질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대형 제강사들은 수천억 원 규모 설비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 깊숙이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양질의 고철은 여전히 법의 허점을 타고 외부로 빠져나가고, 20년 넘게 바뀌지 않은 제도는 산업 현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변화하는 철스크랩 산업 현장

경북 포항시 남구에 위치한 에스피네이처 슈레더 사업소. 부지 2만1710㎡(약 6500평), 연 매출 2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철스크랩 가공 현장이다.

사업장에 들어서자 야적장 한편에 압축된 폐자동차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곳에서 파쇄와 분류를 거쳐 철스크랩으로 다시 태어난다.

압축된 차체는 에어백과 연료통은 물론, 최근에는 전기차·하이브리드 차량의 폐배터리까지 남아 있다. 충격에 취약한 배터리는 파쇄 과정에서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3차례에 걸친 선별이 진행된다.

선별을 마친 차체는 거대한 슈레더로 향한다. 파쇄된 금속은 풍력으로 가벼운 물질을 날려 보내고, 자력으로 철을 가려낸다. 이어 자력으로 걸러지지 않은 잔해는 물보다 무거운 액체를 이용한 중액선별 설비를 거쳐 알루미늄 등 비철금속까지 정밀하게 분리된다.

중장비가 쉼 없이 오가는 작업장 한가운데에는 변화의 상징이 자리 잡고 있다. AI 로봇 설비다.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로봇팔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흐르는 금속을 집어 올리며 이물질과 비철금속을 골라낸다. 사람이 맡던 선별 작업 일부를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비용 절감과 폐기물 최소화를 통해 고품질 철스크랩을 확보하기 위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대형 제강사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32년까지 약 1700억원을 투자해 경기 남부권에 파쇄·선별·정제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2028년 가동이 목표다.

포스코와 동국제강도 전기로 확대에 맞춰 양질의 철스크랩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철스크랩 산업 역시 기술과 투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철스크랩 가공설비 슈레더. [출처=현대제철]

◆철스크랩 가공은 '비용과의 전쟁'

양질의 철스크랩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모재는 폐자동차다. 철스크랩 업체는 이를 인수해 새로운 자원으로 가공하지만, 현장은 비용 부담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차량 파쇄 과정에서는 시트와 내장재 등 각종 폐기물이 대량으로 발생한다. 이 폐기물은 관련 법에 따라 전량 위탁 처리해야 한다.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사업자 몫이다. 파쇄를 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다.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도 부담을 키운다.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은 "폐자동차와 관련 없는 폐기물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각종 생활 폐기물이 차체에 포함된 채 유입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슈레더 업체는 무게 기준으로 차체를 매입하기 때문에 폐기물까지 포함된 비용을 떠안는다. 이후 선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 비용도 전적으로 업체가 부담한다.

현장 관계자는 "차량 용품부터 기저귀까지 각종 생활 쓰레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전기차 증가로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폐배터리 해체와 안전 관리에 추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폐자동차 매입을 줄이기도 어렵다. 자동차 수명 연장과 중고차 수출 증가,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폐자재 감소 등으로 원료 공급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가동률이 낮은 가운데 모재 확보까지 위축되면 사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05년부터 '자동차 리사이클법'을 시행하고 있다. 자동차 구매 시 소비자가 재활용 비용을 미리 부담하는 구조다. 차종과 사양에 따라 7000~1만8000엔(약 6만~16만 원) 수준으로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포항시에 위치한 에스피네이처 슈레더 사업소 야적장에 쌓인 폐자동차 [출처=진명갑 기자]

◆"자급률 착시 넘어 공급 위기"…전략자원 전환, 제도 보완 시급

"철스크랩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탄소중립의 핵심 원료'지만, 양질의 스크랩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 경기 회복 시 '철스크랩 대란'이 재발할 위험이 크다."

철스크랩 산업에 수십 년간 몸담은 손상석 상무의 진단이다.

그는 지난해 국내 철스크랩 자급률이 93~98%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데 대해 "건설 경기 침체로 제강사 가동률이 50% 내외로 떨어지며 나타난 착시 현상"이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해 대형 제강사들은 공장 가동 중단과 축소를 반복했다. 반면 설비를 멈출 수 없는 슈레더 업체들은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 수출로 눈을 돌렸다.

손 상무는"국내 수요 부진 속에 업체들이 인도와 중국 등으로 수출을 늘렸다"며 "이 같은 계약이 장기화되면 수요 회복 시 오히려 공급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스크랩 산업의 구조 전환을 강조했다. "탄소중립 시대 핵심 공급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존 '폐기물 처리업' 관점에서 벗어나 '전략 자원 가공산업'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6년 시행 예정인 철강특별법에 철스크랩 전문기업 육성 조항을 구체화해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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