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사건’ 53년 만에 사과한 국방부…유족 “성의가 전혀 없다”

고경태 기자 2024. 10. 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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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명예회복 어떻게 할 건지 한 마디도 없어”
벽제 묘역서 사형 집행 공작원 유해발굴 시작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서울시립 벽제묘지공원 5-2구역에서 열린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에 대한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희생 공작원 이서천의 동생 이향순(82)씨가 시삽을 하다가 삽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국방부는 실미도 사건으로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들께서 겪으신 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15일 오후 1968년 북한 침투를 목표로 창설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의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사건 발생 53년 만이자 생존 공작원 사형 집행과 암매장 52년 만으로, 실미도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사과다. 1971년 8월23일 실미도 공작원 24명(나머지 7명은 훈련 중 불법처형)은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며 섬을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다 서울 동작구(당시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했다.

이날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서울시립 벽제묘지공원 5-2구역에서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에 대한 유해발굴 개토제(땅을 파기 전 올리는 제사)가 열렸다. 김용현 장관의 사과는 이 자리에서 유균혜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이 대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15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서울시립 벽제묘지공원 5-2구역에서 열린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에 대한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유균혜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사과문을 대독한 뒤 사형 집행된 공작원의 유족들을 한 명씩 위로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다만 유족들은 사과문 내용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령 불법 모집, 사형 집행된 공작원의 유해 암매장, 대법원 상고 포기 회유 등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적시한 인권침해 사실을 소개하듯 짚었을 뿐, 이러한 국가폭력과 범죄를 어떻게 성찰할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대목 등이 문제가 됐다. 임충빈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장은 “형식적이고 성의가 하나도 없어 화가 난다. 아직도 많은 유족이 실미도 공작원들을 간첩·무기수였던 것으로 오해하는 시선에 고통받는다. 이런 명예회복에 대해 국방부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실미도 사건을 조사했던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도 “진정한 사과는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게 어떻게 제대로 된 사과냐”고 반문했다.

이날 유해발굴 개토제에는 사형집행 공작원 4명 중 임성빈·이서천·김창구 3명의 동생과 조카 등 유족들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대독 사과를 한 국장급 간부 외에는 과장급 이하의 군인권총괄과 직원만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제단에 술을 따르며 예를 표하는 의식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이곳에서 유해가 발굴되기를 소망했다.

유해발굴을 맡은 재단법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은 “벽제리 5-2구역 168㎡를 열흘 일정으로 발굴할 예정”이라며 “정밀한 조사를 통해 유해가 확인되면 감식을 거쳐 신원을 확인하고 국방부와 협의해 정중히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우 원장은 또 “반세기 동안의 지형변화 등 문제가 있어 유해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15일 오후 실미도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리 묘지 5-2구역에서 유해발굴 개토제가 열려 유족들과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장, 진화위 대외협력담당관 등 참석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벽제리 묘지 5-2구역은 진실화해위가 지난 2022년 9월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에 대한 조사 결정문을 발표하며 사형집행 공작원들의 유해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을 권고한 곳이다. 2005년 11월에 실미도 사건 당일 사망한 공작원들의 유해가 발굴된 곳이기도 하다. 앞서 육군본부 유해발굴단은 지난 2006년 암매장된 공작원을 찾기 위해 서울 구로구 오류동 산 26-2, 23-8 공군정보부대 터를 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에 나섰으나 실패한 바 있다.

이날 첫 삽을 뜨는 시삽 행사에서 사형 공작원 이서천의 동생 이향순(82)씨는 삽을 붙잡고 “오빠”를 부르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씨는 “제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오빠는 11살에 집을 나가 생사를 몰랐다. 오빠까지 그렇게 실미도에 끌려가며 행방불명돼 피붙이 하나 없이 평생 고생했다”고 말했다.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장이자 사형 공작원 임성빈의 동생인 임충빈(65)씨는 딸 박일미씨가 지은 다음과 같은 추모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산산이 부서진 영령들이여

어디 계십니까?

보고 싶습니다

국가의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부대이거늘

목적이 없어졌다면 그 책임 역시 국가에 있거늘

반란과 살해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책임 없이 중범죄인이라는 오명을 쓴 그대여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어딘가 암매장된 4명의 형제여

50년이 된들 100년이 된들

어찌 잊겠습니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빛을 가릴 수 있는 어둠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가슴 속 불꽃은 진실을 향해

해마다 커져갑니다

(실미도 사건에서 희생되신 모든 영혼의 명복을 빕니다. 전쟁 없는 곳, 분단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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