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AI 대전환]① 모델은 누구나 쓴다…넥슨 승부처는 ‘데이터’

생성형 AI가 게임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는 가운데 주요 게임사들의 AI 활용 전략과 방향을 들어봅니다.

강덕원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그룹장 /사진제공=넥슨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게임 기획·개발·운영 전 과정에 스며들면서 이제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활용 방식'이 경쟁력을 가르는 국면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넥슨은 모델 개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데이터 구조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넥슨 사옥에서 <블로터>와 만난 강덕원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그룹장은 “AI 경쟁은 모델 성능 싸움이 아니다”라며 “누가 더 좋은 모델을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데이터를 더 잘 구조화해 연결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말했다.

강 그룹장은 넥슨의 선택을 ‘모델 개발’이 아니라 ‘데이터 결합’으로 정의했다. 그는 “우리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잘 만들어진 모델을 가져와 넥슨이 쌓아온 데이터와 연결하고 그 결과를 이용자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AI는 효율 도구, 본질은 경험

강 그룹장은 “AI가 강력한 효율 도구인 건 맞지만 본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효율이 전부라면 이용자 문의에 AI가 바로 답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며 “하지만 그게 고객 응대의 본질인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넥슨은 CS 자동 응답 체계를 도입하지 않았다. 대신 AI는 과거 수년간 쌓인 이용자 문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어떤 유형의 답변이 이용자 만족도가 높았는지, 얼마나 빨리 복귀했는지, 추가 문의는 없었는지 같은 결과 신호를 학습한다.

강 그룹장은 “새로운 문의가 들어오면 AI가 과거 사례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응대 방식을 추천한다”며 “하지만 최종 답변은 사람이 한다. AI는 판단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판단을 돕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동 답변이 빠를 수는 있어도 문제 해결과 신뢰 회복까지 책임지긴 어렵다”며 “그래서 우리는 ‘사람의 판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핵(불법 프로그램) 탐지 영역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수만 장의 스크린샷을 운영 인력이 직접 검토해야 했다. 지금은 AI가 1차 필터링을 통해 의심 사례를 압축하고 운영자는 최종 판단에 집중한다.

강 그룹장은 “예전에는 사람이 전부 볼 수 없으니 사후 대응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AI가 먼저 의심 사례를 추려주기 때문에 운영자는 그 압축된 후보군에 집중하고 대응 속도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I가 ‘대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결정해야 할 대상을 ‘줄여주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메이플스토리의 ‘커스텀 일러스트’도 같은 철학 위에 있다. 도트 기반 캐릭터를 생성형 AI로 고해상도 일러스트로 변환해 제공하는 기능이다.

강 그룹장은 “AI가 없었다면 이용자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를 이런 방식으로 확장해 보여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건 제작 효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재미를 만드는 사례”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상업 리소스의 AI 전면 생성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AI가 만든 결과물에는 저작권·문양 같은 리스크가 숨어 있을 수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최종 산출물보다는 중간 과정, 예컨대 컨셉을 빠르게 뽑거나 반복 작업을 줄이는 쪽에서 AI를 더 적극적으로 쓴다”고 말했다.

메이플스토리의 ‘커스텀 일러스트’ /사진=홈페이지 갈무리

넥슨이 조직·인프라를 바꾼 이유

넥슨은 오픈AI, 구글 제미나이 등 외부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한다. 다만 ‘어떤 모델을 쓰느냐’보다 ‘어떤 데이터와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강 그룹장은 전사 차원의 거버넌스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델은 계속 발전하고, 시장에서 좋은 모델은 누구나 계약해 쓸 수 있다”며 “우리가 집중하는 건 넥슨이 오랫동안 쌓아온 데이터와 노하우를 AI가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넥슨은 AI 허브실과 AX 테크실로 역할을 나눴다. AI 허브실은 신규 AI 서비스 검증, 보안·법무 검토, 전사 가이드라인 운영을 맡는다. 중앙 계약을 통해 재학습 금지 등 조건을 명확히 하고, 팀 단위의 ‘제각각 도입’이 아니라 통제된 확산을 지향한다.

강 그룹장은 “외부 모델을 쓸 때는 재학습 금지, 데이터 비활용 같은 조건을 명확히 하고 사용한다”며 “보안상 위험이 있는 서비스는 허브실이 사전에 판단해 사용 중단이나 대체를 안내한다”고 말했다.

AX 테크실은 공통 기술을 만든다. 대표 사례가 ‘코드 온보드(Code Onboard)’ 프로젝트다. 라이브 서비스가 길어질수록 레거시 코드는 방대해지고, 신규 개발자가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AI가 코드 구조를 분석해 맥락과 가이드를 제공하면 온보딩이 빨라진다는 취지다.

강 그룹장은 “코드가 너무 많아지면 신규 인력이 구조를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AI가 레거시를 분석해 가이드를 제공하면 온보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전에는 기술 검증이 연 단위로 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주·월 단위로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AI가 작업 속도를 올리면, 조직의 의사결정 리듬 자체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결합의 전제는 통제다. 넥슨은 통합 데이터 환경 ‘모노레이크(Monolake)’를 운영하면서 AI가 데이터를 활용하더라도 권한 범위 안에서만 접근하도록 설계했다.

강 그룹장은 “데이터가 결합되면 민감한 정보가 섞일 수밖에 없다”며 “AI와 모노레이크를 연결하더라도 모든 데이터를 한 번에 열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의 권한 범위 안에서만 활용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잘 쓰려면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데이터는 동시에 리스크”라며 “그래서 ‘연결’만큼 ‘통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덕원 넥슨 인텔리전스랩스 그룹장이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넥슨

AI 활용 격차는 '데이터'서 난다

강 그룹장은 게임사 AI 경쟁의 분기점을 ‘데이터 구조화’ 라고 강조했다. 모델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지만 데이터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그는 "파운데이션 모델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커넥터도 계속 좋아진다. 결국 데이터를 얼마나 구조화해 연결했느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며 “데이터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이 결국 가장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 그룹장은 번역을 예로 들었다. 그는 “AI로 그냥 번역하면 세계관이나 캐릭터 말투가 반영되지 않아 밋밋해질 수 있다”며 “NPC(Non-Player Character, 이용자가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 설정, 세계관 정보, 스토리 맥락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연결하면 같은 모델을 써도 번역 품질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 결합’이 품질을 만든다”고 덧붙였다.

이 전략은 인게임을 넘어 아웃게임으로 확장되는 ‘초개인화’ 구상과도 맞물린다. 넥슨은 현대카드와 PLCC(특정 기업과 카드사가 함께 만든 전용 제휴 신용카드) 협업을 진행해왔다. 강 그룹장은 이를 단순 제휴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 경험 확장’의 한 사례로 설명했다.

강 그룹장은 “넥슨이 제공할 수 있는 플레이 데이터와 현대카드가 분석해 온 데이터를 잘 결합하면 넥슨 입장에서는 더 즐거운 게임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현대카드 입장에서는 고객을 더 잘 안착시키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게임 경험이 아웃게임으로 이어지고, 아웃게임의 데이터가 다시 인게임 경험을 정교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재미 영역만큼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효율이 높아진 만큼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을 뿐 AI가 재미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넥슨은 AI를 ‘재미를 만드는 과정’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강 그룹장은 "모델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우리는 잘 발전한 모델을 가져와 내재화하고, 넥슨이 오랫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AI와 연결해 최종적으로 이용자의 게임 경험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데 포커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는 수단이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건 더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덧붙였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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