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 분위기를 사랑하는 대치동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는 글이 하나 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참 7세 고시가 진행 중인 대치동의 분위기, 나는 대치동의 이 분위기를 참 좋아해." 글쓴이는 7세 아이가 대치 영어 빅 3 학원 세 곳을 모두 합격하고 반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면서 20분간 영어로 노트 한 페이지 반 정도를 빼곡히 써낸 글을 자랑한다. 독해, 어휘, 문법 등 40분간 영어 문제 60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이 모든 걸 해내는 7세들이 가득한 대치동의 분위기를 그는 참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의 분위기가 어딘지 무척 섬뜩하고도 놀라웠다. 물론, 영어 잘하는 아이가 자랑스러울 수는 있다. 그런데 고요한 시험장에서 40분간 영어로 된 60문제를 풀어내는 아이들이 가득한 '7세 고시' 현장의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는 건 어딘지 섬뜩하다. 7세 아이들이 그렇게 가득 모여 영어 학원 입시 고시를 준비한다는 것까지야 경쟁의 지옥인 대한민국에서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아이들의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건 어딘지 기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얼마 전, 해외에 사는 친척 한 분이 한 말이 생각난다. 외국에 있다 보면, 한국 아이와 미국, 유럽 아이의 모습이 매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 분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한국 아이들은 차지하는 공간이 적다."고 한다. 반면, 차지하는 공간이 가장 넓은 건 미국 아이들이라고 한다. 미국 아이들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동적으로 쓰면서 뛰어 다니고, 놀고, 활기차게 온갖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아이들은 너무 얌전하고, 너무 작은 공간에만 머물러 있어서 어딘지 참 가엾다는 것이다.

Unsplash의Jessica Lewis 🦋 thepain

고시 같은 것과는 무관한 7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먼저 떠오르는 건 아이의 좁은 어깨와 낮은 앉은키다.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으면 참 낮다. 키가 부쩍 큰 것처럼 보이더라도, 함께 앉아 있으면 아이들은 식당 테이블에 간신히 턱을 걸쳐 있곤 한다. 그리고 아직 몸이 다 발달하지 않아 다른 어떤 신체 부위보다 어깨가 유난히 좁다. 이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처박고 그 좁은 노트의 줄에 영어 문장을 맞춰가며 가만히 쓰고 있는 걸 상상해보면, 나는 감옥에 갇힌 노예들이 생각난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학습이 필요하다. 한글도 익혀야 하고, 외국어도 배우면 좋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배워야할 것들은 한 무더기다. 덧셈 뺄셈도 해야하고, 간단한 역사나 과학 상식도 쌓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배움'이 '경쟁'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고사장에 밀어넣는 일은 배움이 아니다. 나아가 아이들은 저 어른들이 사랑하는 그 '참 좋은 분위기'에 아직 갇힐 때가 아니다. 아이들은 더 뛰어 놀아야 하고, 줄 맞춰 글씨를 쓰기 전에 자유롭게 노트에 낙서를 해야 한다. 리딩, 보캐브러리, 그래머 60문제를 풀 시간에 더 자유롭게 상상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불안세대>에서 모든 포유류의 유아기에는 '자유 놀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역설한다. 조노선 하이트가 주로 지적하는 건 스마트폰이나 부모의 과잉 보호에 의한 놀이의 감소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상황은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아이들은 '자유 놀이'의 '자'도 경험하기 전에, 무시무시한 7세 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돌입한다. 영어유치원에의 진입은 4세에 시작된다. 아니 4세들이 들어가는 영어유치원에조차 '4세 고시'라는 말이 있다. 4세들은 영어 대소문자를 쓰고, 영어회화 시험을 거쳐, 새가 'bird'인지 따위를 정확히 발음해야 유명 영어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다.

이런 시작도 끝도 모를 경쟁이 퍼져나가는 사회에서의 삶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든 자녀를 최상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의 불안이 만들어내는 괴물같은 시스템, 그렇게 경쟁 밖에 모른 채 만들어진 존재들, 그 존재들이 다시 만들어가는 양극화와 각자도생의 끝을 달리는 사회의 자화상이라는 게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4세부터 아이를 무장시켜서 사회 속에서 다른 모두를 이기게 만들도록 준비시키는 게 당연하고, 그것을 '참 좋다'라고 느끼는 사회를, 과연 고요한 지옥도라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있을까 싶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가엾다. 그러나 그들은 가엾지 않은 어른들이 될 것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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