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와 '마루' 다음은?...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한국은 왜 자취를 감췄나 [NEW 휴머노이드가 온다]
수학 계산 기반 기술의 한계
속도나 가격 기대 못 미치자
정부 관심 떨어져 지원 줄어
해외선 민간 중심 개발 지속
격차 커지니 부랴부랴 투자
편집자주
로봇은 인간을 얼마만큼 닮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제어로봇시스템학회를 찾아 로봇 기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인공지능을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진단한다.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 지능로봇시스템 콘퍼런스'(IROS) 이곳저곳에서 기량을 뽐내는 동안 전시장 한쪽에서 익숙해 보이는 로봇이 컵을 쌓고 있었다. 국내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바퀴형 휴머노이드, Y1이었다. IROS에 모인 수많은 휴머노이드 중 유일한 한국산이다. 현장을 가득 메운 중국산 휴머노이드 광풍에 "'중국 기업이냐'는 질문도 받았다"며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약 20년 전만 해도 세계 무대에서 최초를 써왔던 한국 휴머노이드는 왜 이렇게 종적을 감췄을까. 로봇 연구자들은 기존 기술의 한계와 함께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지원체계 구조가 주요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기술 ↑, 가격 ↓... 20년 사이 벌어진 격차
휴머노이드 '와봇'과 '아시모'를 앞세워 치고 나가던 일본을 한국은 2000년대 들어 바짝 추격해갔다. 2004년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휴보'를, 이듬해에는 '마루'를 만들었다. 정부는 이 같은 지능형 로봇을 '제2의 반도체'라 부르며 한발 앞서 나가려고 혈안이 됐다. 당시 산업자원부는 '자율형 로봇'을, 정보통신부는 '네트워크형 로봇'을 추진하며 부처 간 경쟁까지 붙었다고 연구자들은 기억한다. 산업은행경제연구소는 2007년 보고서에서 "부처 간 정책 방향 차이로 추진 일관성이 떨어진다", "중복 투자도 있어 통일된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동력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서서히 떨어졌다. 근본 원인은 기술의 한계였다. 당시 휴머노이드의 움직임은 인공지능(AI)이 접목된 지금과 다르게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탓에, 환경이 바뀔 때마다 조정이 필요했다. 가령 조금만 땅이 기울어져 있거나, 계단 같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즉각 대응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쓸모를 증명해내는 데도 벽에 부딪혔다. 기술 과시를 넘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마루 개발을 이끌었던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궁극적으로 '무슨 용도로 팔 수 있나' '가격이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고급스럽게 안정적으로 제작하려면 가격이 5억 원 이상 돼야 하는데, 현실성이 떨어지니 당시 정부가 상업화에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 뒤로 정부 관심이 식으면서 한동안 휴머노이드 연구과제도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손을 뗀 사이, 다른 나라에서는 기업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그 결과가 최근 몇 년 새 공개된 놀라운 성과들이다. 걷기도 어려워하던 휴머노이드가 공중제비를 돌고, '먹을 것을 찾아달라'는 주문에 사과를 내주는 능력도 생겼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자사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2만 달러(약 2,600만 원) 수준으로 판매할 거란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자 한국도 부랴부랴 휴머노이드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올해 첨단 로봇 기술 개발 투자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됐고, 휴머노이드 연구과제도 다시 나왔다.
선도엔 멈칫, 추격엔 채찍질... "활력 사라져"
오랫동안 로봇 분야에 몸담아온 중견 연구자들은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국내 R&D 시스템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봤다. 결과물에 '당장의 쓸모'를 요구하다 보니 빨리 만족시키지 못하면 연구 동력이 떨어지고, 외국에서 이슈가 되면 그때서야 따라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오용환 KIST 책임연구원은 "한 분야를 잡고 수십 년을 끌고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한국 공학계의 현실이다. 과제가 끊기면,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며 "그간 등한시했다가 최근 다시 휴머노이드에 투자하겠다는 모습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휴보 아빠'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 역시 "선도적인 연구를 제안하면 '그걸 과연 어떻게 할 수 있냐'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러다 선진국에서 뭔가 나오면 그보다 좋은 걸 빨리 내놓길 원한다"면서 "그럴 때마다 한국 연구자들은 위축되고 활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제는 '한국형'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 연구원은 "2, 3년짜리 단기 성과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한국이 어떤 최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장기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식당을 비롯한 한국 고유의 문화에 맞는 로봇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볼거리가 되면서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부다비=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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