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pecial Interview] 콘텐츠 크리에이터 육튜브

도전은 나의 것

자고로 도전이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의미가 크다. 육청호에게 도전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매 순간 습관적으로 시도하는 것에 가깝다. 단순한 변덕으로 꿈이 바뀌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육청호’라는 이름을 달고, 누군가의 형이자 자신만의 기록을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그는 직접 땅을 일궈 걸어갈 길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걸어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다. 진심에서 비롯된 일은 보는 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닮는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열정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에 관한 기록이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Jiin Lee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해요. (4월 28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KT 위즈 육청명 선수의 친형이자, 야구 관련 영상을 재미로 제작하고 있는 ‘육튜브’ 육청호라고 합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육튜브라고만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왜 육청명 선수 얘기를 다 빼놓냐고 묻는 분이 계셔서 오늘은 이렇게 인사드려 봤어요.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 어땠나요?
<더그아웃 매거진>은 야구계 최강 잡지라고 생각해요, 축구 쪽에는 ‘베스트 일레븐’이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처음 인터뷰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 장난인 줄 알았어요. 공식 계정에서 온 게 맞나 얼떨떨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너무 영광이고, 동생도 아닌 제가 감히 이런 자리에 나와도 되나 싶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튜브 채널 ‘육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군대에 있을 때, 문득 전역 이후에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연기도 해 보고 싶고, 야구 영상도 다뤄 보고 싶었고요. 더 다양한 걸 하고 싶은데, 그걸 모두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바로 유튜브였어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채워 나가는 영상 일기장으로 쓰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저만의 방식으로 이루고 있는 거죠. 장래 희망이 많은데,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적성에 맞는 게 뭔지 찾아본다는 느낌이에요.

초반에는 성대모사, 패러디 영상이 중심이었잖아요. 애초에 그런 콘셉트를 염두에 둔 거예요?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친구들한테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 주거나 일인다역으로 연기해서 보여 주는 걸 즐겼고요. 군대에서 유명한 영화 장면을 계속 보면서 행동, 지문까지 다 받아 적고, 원하는 방식대로 대사와 상황을 바꾼 대본을 만들었어요. 아직도 미처 올리지 못한 게 잔뜩 쌓여 있어요.

‘수리남’ 1인 7역 성대모사 영상은 67만 뷰를 넘겼더라고요. 학창 시절에도 분위기 메이커였겠어요.
그런 사람들 꼭 있잖아요.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해당 과목 선생님을 따라 하는 친구요. 그런 역할을 항상 제가 했었거든요. 다들 재밌어하니까 집에 가서 연습하기도 하고, 정치인이나 유명 배우 성대모사도 하고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따라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했어요. 학창 시절 포지션은 광대가 아니었나 싶네요.

운동부였는데도 다른 친구들이랑 그렇게 가까이 지낼 수도 있어요?
야구선수 생활은 중학교까지만 하고, 고등학교 때는 펜싱부를 했어요. 그리고 수도권 쪽 운동부들은 정규 수업을 다 듣고 운동을 하러 가다 보니 웬만하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어요. 다만 학교 축제처럼 행사에 참여하긴 좀 어렵고요. 수학여행도 안 갔던 것 같아요. 어? 근데 수련회는 갔네요.

#있는 그대로

‘형제의 난’ 콘텐츠부터 동생이 영상에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육청명은 촬영에 잘 협조하는 편인가요?
당시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채널 초반이라 다양한 시도를 할 때여서 시너지를 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어릴 때부터 집 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투타 대결을 하곤 했는데, 제가 다 이겼거든요. 140km/h 이상의 공을 던지는 ‘야구선수 육청명’과 다시 대결했을 때 누가 이길지 호기심이 생긴 거죠, 동생은 ‘이제 형은 내 공 못 친다’, 저는 ‘프로 되기 전까지는 절대 인정 안 한다’라는 입장이었는데, 확실히 구위가 달라졌더라고요. (동생이 변화구까지 던지던데요?) 너무해요. 직구만 던져도 못 쳤을 텐데, 좀 스친다 싶으니까 이기고 싶어서 변화구를 던지더라고요. 제가 사회인 야구를 쭉 했어도 쉬고 있으니까 감이 없어서 못 친 거라고 했더니, 동생이 비겁한 변명이라는 둥…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청명의 삶’ 시리즈는 동생의 일상을 기록하는 콘텐츠예요. 동생의 삶을 대신 기록한다는 게 대단하면서도 신기한데, 어떻게 시작했나요?
수리남 영상이 너무 떠 버리는 바람에 과분한 관심을 받으면서 부담이 생겼었어요. 사실 아르바이트 중에 사장님이랑 넷플릭스 얘기를 잠깐 나누다가 “너 이거 잘한다. 이걸로도 영상 만들어 봐” 하셔서 가볍게 시작한 거였거든요. 재미로 시작했다가 욕심이 생기면서 스트레스도 덩달아 쌓이게 된 거죠. 그러다 학교 복학까지 하게 된 탓에 잠깐 업로드를 쉬게 됐어요. 그때 청명이의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리는 채널을 운영했는데, 편집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팬 채널을 운영한 거죠. 마침 동생이 야구에만 집중해야 할 시기다 보니 함께 찍기로 했던 콘텐츠도 미루고 있다가, 드래프트 날에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아 만들게 됐어요.

동생도 드래프트 당일의 현장이 영상으로 남는 걸 좋아했죠?
저는 운동할 때 누가 와서 관심을 주고 응원하면 오히려 힘이 들어가서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경기 날에 부모님이 찾아온다고 하셔도 오지 말라고 할 정도고요. 근데 동생은 그로부터 힘을 얻곤 해요. 다들 잘한다고 띄워 주기만 하니까 악영향이 있을까 봐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일부러 “너는 프로 못 갈 거다”, “나는 너 절대 인정 안 한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선수 못 된다”라고 꾸짖곤 했지만요. 그래도 동생을 알리고 싶었어요. 팬 채널이 아니라 본 계정에 올린 이유도 한 명이라도 구독자가 더 있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고요.

야구 관련 콘텐츠가 경기 다큐멘터리, 입중계, 게스트 출연까지 확장되고 있어요.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모든 구장에서 홈 팀 응원을 해 보고 그 영상을 담아 보고자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섭외해서 10개 구단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어요. 동생이 없어도 제가 야구에 관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기도 했고, 야구 관람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동생이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과정을 담았던 게 ‘청명의 삶’의 1막이라면, 1군에서 데뷔를 한 이후의 영상들은 2막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근데 매번 동생한테 카메라를 들이밀고 뭘 좀 해 보라고 할 순 없으니까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했어요.

동생의 첫 승을 친구들과 함께 봤죠. 축구 팬인 친구도 함께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고, 또 다른 친구는 넥센 시절부터 히어로즈 팬이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키움보다는 넥센 시절의 추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예요. 보통 학교에 가면 “어제 경기 봤냐”, “너희 어제 지지 않았냐”라고 대화를 시작하곤 했는데요. 그 친구랑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서로 응원하는 팀 얘기를 하다가 친해졌어요. 축구 팬인 형은 대학교에서 만난 동기인데, 야구를 아예 몰라서 오히려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야구를 처음 볼 때 웃긴 질문을 자주 했었거든요. 데려가서 축구의 어떤 상황인 건지 연관시켜 보자 했는데, 마침 청명이가 1승을 올린 덕에 더 재미난 영상이 만들어졌어요. 아무래도 제가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까 주변에도 야구 좋아하는 친구들로 채워진 게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입중계 콘텐츠가 중심이더라고요. 가장 신경 쓰는 포인트는 뭔가요?
어릴 때부터 야구 캐스터를 해보고 싶었어요.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더 컸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지만요. 유튜브를 하는 3년간 어느 쪽으로 삶의 방향을 잡을지 고민하다가 스포츠 아나운서로 가닥을 잡았어요. 배우를 꿈꿨을 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처럼, 중계 경험을 쌓아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방송할 때 텐션이 되게 높더라고요.) 물론 진짜 캐스터가 된 것처럼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일반적인 방송에 나가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으면 시청자분들이 제 채널을 볼 이유가 없잖아요. 결국, 제가 추구하는 건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마치 경기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거예요. 이기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아파트’도 부르는 것처럼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드래프트나 청명이 첫 선발 이후 업로드한 영상에 팬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편집이 늦어지면 업로드 시점에 이미 다음 로테이션이 돌아와 있기도 한데, 그러면 ‘내일 경기 파이팅하세요. 응원합니다’ 이런 댓글도 남겨 주시고요. ‘육청명 선수 덕에 야구팬이 됐다’ 혹은 ‘KT 팬이 됐다’하는 분들도 계세요. 전에 한화 이글스 문동주 선수와 겨뤘을 때는, 한화 팬이지만 육청명 선수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분도 있었어요. 본인의 가족이 아님에도 친동생처럼 여겨 주시는 분들 덕에 따뜻함을 느끼고, 조회 수보다 그런 댓글들이 힘이 돼서 제가 더 신나게 영상을 만들게 돼요. (본인에 대한 댓글을 얘기할 줄 알고 물어봤는데, 대부분 동생 얘기네요.) 동생이 받는 칭찬이 저한테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당연히 성대모사 영상에 ‘눈 감고 들었는데 진짜인 줄 알았다’ 이런 댓글도 큰 힘이 됐어요. (웃음) 기억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팬분들을 만나면 팬서비스 요청도 자주 받죠?
위즈파크에 가면 특히 많이들 알아보세요, 사진 요청을 주로 하시는데, 제가 이래도 되는 건지 아직도 헷갈려요. 저는 그냥 유튜버잖아요. 사진은 동생한테 찍어 달라고 하셔야 하는데 말이에요. 동생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시작한 콘텐츠로 제 어깨가 올라가는 것 같아서… 저는 그런 걸 바란 건 아니거든요. 그러다가도 팬분들께서 동생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든가 영상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면, ‘빨리 집에 가서 영상 편집해야겠다. 지금 동생의 팬분들이 기다리시고 있다. 보답할 방법은 그거다’ 싶어요. 가끔 사인해 달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요, 너무 떨리더라고요. KT 유니폼을 주시면서 사인 요청을 하셔서 너무 부담스러운 나머지 절대 틀리지 않으려고 천~천~히 그리듯이 했던 기억이 나요.

동생의 사인도 직접 만들어 줬다면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길래, 육청명이니까 육천(6,000)이 들어가면서 쉽게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면서 만들어 줬어요. 처음엔 막 못생겼다고 하면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더니 아직 쓰는 모양이더라고요. 되게 단순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사인이에요.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뭘까요?
가장 조회 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건 ‘이슈가 되고 있느냐’이더라고요. 스포츠는 직전 경기 영상을 빠르게 올렸을 때 조회 수가 가장 잘 나오다 보니까 축구 영상의 경우, 직접 가서 찍고 다음 날 바로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처했었어요. 성대모사도 한창 유행인 작품을 올렸을 때 반응이 더 괜찮았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너무 이슈만 좇고 있는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사실 시간이 더 들더라도 재밌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제는 영상의 러닝 타임이 20분쯤 되면서 제작 시간이 늘긴 했지만, 전반적인 퀄리티는 올라가고 있다고 봐요.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고, 오랫동안 여운이 깊게 남을 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멀지 않고 가까웁다

동생인 육청명과의 맞대결, 프로가 된 이후에도 해 봤나요?
하려고 했는데요, ‘청명의 삶’을 만드는 것도 구단에서 불편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멈춘 상태예요. 다른 의미가 아니라, 신인 선수이기도 하고요. 동생이 잘해서 덩달아 이슈가 되면 좋지만, 나쁜 날이 없을 순 없잖아요. 만약 영상 속에서 제가 한 발언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요. 선수에게 가는 피해를 넘어서 구단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돼요. 대결하는 콘텐츠의 경우는 실제 장비를 쓸 텐데, 동생이 부상을 입거나 ‘야구는 안 하고 이거 하고 있냐’라는 얘기를 듣는 건 싫어요. 근데 어느 날 동생이 먼저 언젠가 한 번 둘이 붙어야 한다고 말을 꺼내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건강하게 돌아오고 나면 다시 도전해 볼 계획입니다.

육청명이 작년에 팔꿈치 수술을 하고 곧 복귀를 앞뒀잖아요. 형으로서 해 준 말이 있다면요?
지금 재활 단계에 있는데, 라이브 피칭도 몇 번 했고 조만간 2군에서 선발 기회를 받지 않을까 싶어요. 후반기에는 만나 보실 수 있을 듯해요. 전에도 동생이 비슷한 수술을 했었는데, 프로 입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좌절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나 지금 모두 병원에 가서 간호를 하긴 했는데 별말 안 했어요. 부모님이야 항상 궁금해하시지만 뭐 물어 보는 게 부담스럽거나 귀찮을 수 있잖아요. 저는 그냥 ‘잘해라’, ‘파이팅 해라’ 이 정도만 얘기해요. 정말 필요하다 싶을 때 아니면 동생 본인이 알아서 잘하고요. 또, 프로라는 게 어려울 때 본인이 방법을 찾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위치잖아요. 오히려 야구 말고 즐겨 하는 게임, 최근에 재밌게 봤던 영상 얘기를 나누죠.

부상 경험은 본인도 있죠?
펜싱부에서 활동할 때 햄스트링이 파열되고, 무릎이 아팠던 경우가 있어요. 사실 이외에도 여러 부상이 있었는데, 너무 무리해서 훈련했던 게 원인이라고 봐요. 저는 항상 최대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의였거든요. 그렇다고 운동을 대충 한다는 게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절해야 했는데 과부하가 왔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랑 우애가 정말 깊어 보여요. 오히려 형제간엔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비하인드가 있어요. 부모님은 보통 동생 편을 들잖아요. 물론 제가 어릴 때 동생을 자주 괴롭힌 건 사실이지만, 부모님의 전담 마크가 시작된 거예요. “너 그렇게 동생 괴롭히면 이러쿵저러쿵…” 아시죠? 그걸 동생이 역이용하더라고요. 제가 자기를 못 건든다는 걸 안 거죠. 슬슬 기어오르면서 장난을 치다가, 혼내려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는 연기를 하면서 억울한 상황이 반복됐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얘가 우는 거라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엄마는 절대 안 믿으시더라고요. 근데 하루는 제 친구 어머니가 그걸 목격하곤 말씀해 주셨어요. 저 청명이라는 애가 완전 약은 놈이라고. 그때부터 동생이 저한테 호칭을 형님이라고 하게 됐죠. (그럼 형을 어려워하게 된 거 아니에요?) 적대감이 있긴 했어요. 근데 저희가 둘 다 운동부라 만나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서로 학교 갔다가, 훈련 갔다가 오랜만에 보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게임 같은 것도 제가 집에 가야 할 수 있는 거니까, 어느 순간부터 청명이가 저랑 있으면 재밌는 일들이 생긴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영상을 보면 가족들끼리 엄청 화목해 보이더라고요.
친구들이 신기하다고 해요. 동생도 동생인데, 아빠랑 친한 걸 놀라워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아빠랑 말도 안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중학교 때 아빠가 해외 축구나 야구처럼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 얘길 먼저 꺼내 주시면서 다시 친해지게 됐어요. 동생도 덩달아 아버지랑 가까워졌죠. 대회가 있으면 서로 멀리 지방까지 부모님이랑 함께 따라가서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됐어요.

#마음이 가는 일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는 절 축구 선수로 키우고 싶어 하셨는데, 경기 도중에 발톱 부상을 당한 이후에 겁이 나는 바람에 아예 관두게 됐어요. 그러다 친구랑 친구 아버지와 주말에 야구를 하러 가서 야구라는 걸 처음 봤어요. 축구는 계속 뛰어야 하는데, 야구라는 건 기술이 들어가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맨날 학교 끝나면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서 캐치볼도 했는데, 같이 하던 친구가 이사를 가니까 할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그러다가 동생을 불러서 ‘너 야구해’ 이렇게 시킨 거죠. 그때 동생이 다섯 살이었을 거예요. 딱딱한 공으로 동생 머리를 맞혀서 울리기도 하다가 근처에 새로운 리틀야구단이 생긴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리틀야구를 하던 시절은 기억나나요?
그럼요. 저희가 신생 팀이라 한 번도 못 이겼어요. 심지어 저는 6학년 때 남양주 리틀야구장에서 원주시 리틀야구단을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고요. 힘 빼고 치는 법을 몰라서 맨날 삼진만 당하다가 하루는 동생이랑 아버지가 외야석에 제 51번 유니폼을 걸어놨는데, 딱 그쪽으로 쳐서 3루타를 만들었어요. 근데 안타의 맛을 처음 본 뒤로 또 힘이 엄청 들어가서 계속 못 쳤어요. 중학교에 가서야 타격의 감을 조금 알게 됐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면서 결국 종목을 바꿨죠. 사회인 야구를 다시 시작하고는 팀에서 되게 기뻐하십니다. 선수 출신이 아니라서요. (그게 특별한 장점이 되나요?) 선출이 아닌데 그 정도의 실력이 나오니까 용병 취급을 해주시더라고요. FA 선언한 것처럼 매 겨울 ‘우리 팀에서 야구하자’라고 연락도 꽤 왔고요.

펜싱이랑 야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펜싱은 개인 종목이라는 거요. 쭉 단체 종목만 해 오다 보니 새롭긴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분명히 팀 분위기를 올리고, 협력해서 점수를 만드는 생활을 해 오다가 어느 순간 개인 능력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 돼 버린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대회를 나가면 개인전보다 단체전에서 기량이 세 배 이상 잘 나왔어요. 펜싱에 단체전만 있었다면 제가 메달을 몇 개 따지 않았을까 싶어요. 협동 플레이를 하는 게 적성에 맞나 봐요. (진학은 사회체육학과로 했죠?) 그것도 다양한 스포츠를 체험하고 싶어서였어요. 대신 운동의 난이도가 쉬워지긴 했지만요. (웃음) 근데 강도가 낮은 만큼 기록을 올려야 한다는 게 또 달라요. 당연히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했습니다.

SNS를 보니 봉준호 감독과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배우에 도전할 때 찍은 거예요?
아뇨! 봉준호 감독님이 아버지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동기세요. 아버지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화염병 던지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나오시기도 했고요. 원래 엑스트라를 쓰시려다가 ‘이런 건 해 본 사람이 안다’라며 운동하셨던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셨대요. 이렇게 옛날부터 친분이 있으셔서 종종 여행을 함께 가시는데, 어느 날은 막내 역할을 하라고 절 부르셔서 끌려갔어요. 그때 찍은 사진이에요. 이후로도 가끔 뵙는데 제 ‘파묘’ 패러디 영상을 보시곤 특유의 말투로 “한 3일 정도 걸렸겠는걸?”하고 맞히시더라고요. 한번은 대한민국 축구 몰락의 과정을 1분 요약으로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콘텐츠 추천도 해 주셨어요. 워낙 열렬한 축구 팬이시거든요.

‘육튜브’의 다음 챕터는 뭘까요?
동생이 부상에서 돌아오고 나면 ‘청명의 삶’의 새로운 막이 열리지 않을까요? 제목은 ‘동생이 돌아왔다’라고 해서, 복귀하는 날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요. 최근엔 야구선수를 대상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진 개수에 따라 기부금을 모으는 콘텐츠를 시작했는데요. 동생을 시작으로 원상현(KT 위즈) 선수가 김서현(한화 이글스) 선수를 지목했는데, 지금은 한창 시즌 중이라 리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섭외를 해 보려고요. 지금은 은퇴 선수로 다시 시작해서 임재철 코치님이 송진우 코치님을 지목한 상황이에요. 기부금은 취약계층에 기부 중이고, 본 콘텐츠보다 관심이 적긴 하지만 새로운 직업을 찾기 전까지는 쭉 하려고 해요. 특히 야구장에 직접 가서 팬분들께서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어요. 성공 시 한 명당 백 원, 혹은 천 원이 기부된다고 하면 많이들 참여해 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구장마다 어느 팀 팬이 가장 야구를 잘하는가 해 보는 거죠.

그렇다면 ‘청호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직업으로 꼽자면, 학업을 마친 이후에 스포츠 아나운서를 목표로 준비할 예정이에요.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물으신다면, 어릴 때부터 정말 야구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야구’ 하면 떠오를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를 넘어서 ‘스포츠 하면 육청호가 떠오른다’도 괜찮겠어요.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어서 건강한 에너지를 전하고, 앞으로도 많은 분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도 유튜브를 계속할 것처럼 말하네요.
편집할 게 쌓이고 피곤할 때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어요. 근데 다른 일을 찾아보면서 인턴 생활도 해 보니까 ‘이게 내겐 정말 재미있는 거구나’라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스스로 재밌어서 시작한 거랑 아닌 건 분명한 차이가 있더라고요. 아마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시간을 쪼개서 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육튜브와 육청호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께 한 마디 부탁해요.
육튜브에 열렬한 관심을 보내 주시고 저한테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이 되고 있어요. 영상을 시청해 주시고 응원의 말들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앞으로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야구와 스포츠계에서 육튜브가 더 다양하게 활약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영상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0호 (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www.dugoutmz.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DUGOUTMAGAZINE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dugout_mz
유튜브 www.youtube.com/@DUGOUTMZ
네이버TV tv.naver.com/dugoutmz


<더그아웃 매거진>은 대단한미디어가
제작,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포스트 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대단한미디어와 표기된 각 출처에 있습니다.
잡지 기사 전문을 무단 전재, 복사, 배포하는 행위를 금하며,
적발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