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C 도피아코다’, 자가토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알파로메오의 영혼
2025년 5월, 이탈리아 코모 호수의 우아한 정취를 배경으로 펼쳐진 세계적인 클래식카 축제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에서는 올해도 전 세계 수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 만한 이색 차량들이 공개됐다.
매년 유서 깊은 브랜드들의 히스토리컬 모델과 창의적인 리디자인 작품들이 이 무대에 오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카로체리아(디자인 하우스) 자가토(Zagato)가 새롭게 재해석한 단 하나의 알파로메오, ‘8C 도피아코다(DoppiaCoda)’다.

이 모델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극소량 생산된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를 기반으로 자가토가 직접 차체를 설계하고, 디자인 전반을 새롭게 재구성한 1인 주문형 커스텀 모델이다. 전 세계에 단 한 대만 존재하는 이 특별한 쿠페는 알파로메오가 쌓아온 역사와 자가토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 그리고 오너의 취향이 정교하게 결합된, 말 그대로 ‘주문 제작된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벽했던 8C 디자인에 다시 도전한 자가토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는 이미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모델이다. 알파로메오 내의 디자인 스튜디오 ‘첸트로 스틸레’에서 볼프강 에거와 다니엘레 갈리오네가 함께 설계한 이 차량은, 이탈리아 스포츠 쿠페의 우아함과 근육질의 강인함이 균형을 이루는 조형미로 찬사를 받았다. 단 500대의 쿠페와 329대의 스파이더만 제작되었고, 이로 인해 희소성과 상징성도 매우 컸다.
이처럼 ‘건드릴 수 없는 미학’에 가까운 8C의 외형을 리디자인한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있어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도전이다. 그럼에도 자가토는 과감하게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기존의 8C가 갖고 있던 순수한 아름다움에 자신들만의 디자인 철학을 덧입혔다. 자가토는 이 작업을 단순한 외형 변형이 아닌, 알파로메오 8C라는 존재에 대한 오마주로 해석하며, 자사 고유의 조형언어와 정체성을 반영한 최종 진화형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했다.


‘두 개의 꼬리’를 뜻하는 도피아코다, 후면 디자인에 담긴 철학
‘도피아코다(DoppiaCoda)’라는 이름은 이 차량의 핵심 디자인 포인트를 직접적으로 담아낸 명칭이다. 전통적인 스포츠카 혹은 레이싱카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캄 테일(Kamm-tail) 스타일의 후면부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그 자체로는 시각적으로 무거워 보이거나 단조로울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가토는 캄 테일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 일명 ‘윙 트론카(Wing Tronca)’를 개발했다. 이 설계는 절단된 듯한 후면부와 곡선이 부드럽게 맞물리는 방식으로 공기역학적 효율성과 미학적 완성도를 동시에 잡아낸 결과물이다. 특히 리어의 상단 라인이 미묘하게 이중 구조를 이루며, 차량의 측면에서 후면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자연스러운 균형감을 부여한다. 전통적인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자가토의 디자인 철학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새로운 외형, 그러나 본질은 그대로
8C 도피아코다는 차체 전체가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본래의 알파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가 지녔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차량의 섀시는 기존 8C의 카본 파이버 모노코크 구조를 그대로 활용했으며, 엔진과 구동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위에 얹힌 외형은 전면부터 후면까지 자가토가 전적으로 새로 설계한 것으로, 8C의 실루엣을 베이스로 한층 정제되고 예술적인 조형으로 다시 빚어졌다.
특히 전면부는 기존보다 훨씬 절제된 형태를 띄며, 부드러운 곡선과 낮은 보닛 라인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공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측면은 깊은 캐릭터 라인과 과감한 휠 아치로 역동성을 강조했으며, 후면부는 앞서 언급한 윙 트론카 스타일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감을 부여받았다. 이처럼 전체적으로는 8C의 정신을 이어가되, 외피는 전적으로 다른 감각으로 완성된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자연흡기 V8, 자가토의 마지막 찬사
엔진은 기존 8C와 동일한 4.7리터 V8 자연흡기 유닛이 탑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엔진은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공동으로 개발한 F136 계열로, 알파로메오에서는 당시 고성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파워트레인이다. 최고출력은 약 444마력, 최대토크는 480Nm 수준이며, 6단 자동 수동 겸용 변속기와 후륜구동 방식의 조합을 통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약 4.2초 만에 도달한다.
이 수치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압도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다운사이징 터보 혹은 전동화가 일반화된 지금 시대에서 오히려 자연흡기 V8 특유의 응답성과 사운드, 직결감은 더 귀한 경험으로 여겨진다. 자가토는 이 모델을 통해 단순한 출력 수치가 아니라, 운전자가 느끼는 감성과 엔진이 주는 정서적인 만족감에 집중하고자 했다.



전 세계에 오직 한 대, 한 사람만을 위한 설계
이 차량은 양산형이 아니다. ‘8C 도피아코다’는 한 명의 이탈리아 자동차 수집가가 자가토에 특별히 요청해 제작된 1대 한정 모델로, 이번 콘코르소 델레간차에 전시된 이후 바로 해당 오너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기본형 8C 자체도 매우 적은 수량만 생산되어 희귀성이 높은 모델인데, 자가토가 손을 더한 이 차량은 그 어떤 경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환상의 존재’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포함한 일반 소비자들은 이 차량을 실제로 구매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지만, 자가토가 만들어낸 디자인 유산과 커스터마이징 문화의 정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상업적인 모델을 넘어서, 브랜드 간 협업의 새로운 사례로도 주목받고 있다.


기계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 한 대의 쿠페
자가토가 만든 ‘8C 도피아코다’는 단순히 기존 차량을 리디자인한 수준을 넘어, 자동차라는 기계에 예술적 가치를 입힌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새로운 8C는 알파로메오가 지닌 감성과 역사를 되새기게 하며, 동시에 자가토라는 이름이 왜 여전히 자동차 디자인계에서 독보적인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오늘날 자동차 업계가 고성능, 효율, 전동화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와중에도, 이처럼 정통 디자인과 감성을 중시하는 프로젝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보여준다. 자동차가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닌, 인간의 감각과 취향을 반영하는 예술의 영역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모델은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쿠페. 그것이 바로 자가토의 알파로메오 8C 도피아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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