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링 위에서 쓰러졌고, 대한체육회는 말로 또 상처를 냈다.

중학생 복싱 선수 의식불명 사고가 남긴 질문은 하나다. 선수를 지킨다는 체육 행정은 정말 어디에 있었나.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스탠딩아웃]

아이는 링 위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8개월 뒤, 가족은 대한체육회의 말 앞에서 다시 무너졌다.

이 사건을 “막말 파문”으로만 부르면 본질이 흐려진다. 문제는 한 간부의 거친 표현이 아니다. 선수를 보호해야 할 기관이 사고 이후 어떤 태도로 가족을 대했는 지다.

A군은 지난해 9월 제주 서귀포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제55회 대통령배 전국시도복싱대회 경기 도중 쓰러졌다. 전남 무안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응급 대응을 둘러싼 문제도 제기됐다. 현장에는 119구급차가 아닌 사설 구급차가 대기했고, 이송 과정에서 길을 헤맸다는 가족 측 주장도 나왔다. 이후 관련 조사와 보도에서는 대한복싱협회의 안전관리계획 미수립, 응급체계 구축 미비, 대회 규정 미준수, 초기 대응 미흡 등이 지적됐다.

여기까지가 사고의 첫 번째 고통이다.
두 번째 고통은 그다음에 왔다. 가족이 기다린 것은 설명과 지원이었다. 그러나 보도로 전해진 대한체육회 최고위 실무 책임자의 말은 위로와 거리가 멀었다.

© 스탠딩아웃 뉴스 DB

목포 MBC 보도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나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의식불명 상태인 A군을 두고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이미 뇌사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의 녹취 시도와 관련해서는 “아들 이렇게 된 걸로 뭔가 한밑천 잡으려고 하는 건가”라는 취지의 발언도 전해졌다.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실언으로 넘길 수 없다. 피해 가족을 위로해야 할 자리에 의심과 방어의 언어가 먼저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뇌사”라는 표현은 가볍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뇌사는 의학적·법적 판단이 따르는 상태다. 체육 행정 책임자가 가족 앞에서 단정하듯 말할 영역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필요한 말은 “가능성이 없다”가 아니었다. “끝까지 돕겠다”였어야 했다.

“한밑천”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가족을 잠재적 보상 요구자로 바라본 말이다. 아들이 경기 중 쓰러진 부모가 대화를 기록하려 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기관이라면 기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책임 있는 말은 녹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상급 기관이다. 선수 등록, 대회 운영, 종목 단체 관리, 국가대표 지원까지 체육 현장의 큰 틀을 맡고 있다. 그런 기관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사람은 조직이 아니다. 선수다. 특히 미성년 선수다.

복싱은 위험한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회 운영은 더 엄격해야 한다. 위험을 알고도 링을 열었다면, 링 밖의 안전도 함께 준비돼 있어야 한다. 선수에게 용기를 요구했다면, 행정은 시스템으로 답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대한체육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사고 당일 의료 체계는 적절했나.
응급 이송은 제대로 이뤄졌나.
대회 안전 매뉴얼은 실제로 작동했나.
대한복싱협회의 관리 책임은 어디까지 확인됐나.

김나미 사무총장의 발언에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 대한체육회 유승민 회장 스탠딩아웃 뉴스 DB

대한체육회는 뒤늦게 사과했다. 유승민 회장도 조기 귀국해 선수와 부모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선수의 완쾌를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조치다. 치료 지원, 생계 지원, 심리 지원, 법률 지원, 조사 결과 공개, 종목별 안전 매뉴얼 재정비까지 내놓아야 한다. “강구하겠다”는 말은 실행될 때만 의미를 갖는다.

유승민 회장의 사과가 진심이라면, 이 사건은 사과 장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가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기준이 무너졌는지, 가족에게 무엇을 지원할 것인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지 밝혀야 한다.

스포츠는 사람을 세우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한 학생 선수는 경기장에서 쓰러졌고, 가족은 행정의 말 앞에서 또 다쳤다.

대한체육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변명하지 말 것

가족을 의심하지 말 것

책임을 미루지 말 것

그리고 선수가 깨어나지 못한 시간만큼, 체육 행정도 깨어 있어야 한다.

아이는 링 위에서 쓰러졌다.

대한체육회마저 그 곁에서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출처 : 스탠딩아웃(https://www.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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