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정복자 티무르 ‘예술의 꽃’도 피웠다
막대한 군사력 바탕 유라시아 장악
항복엔 관용… 저항하면 가혹한 처단
사마르칸트 도시 문화·건축으로 승화
몽골·이슬람 융합 독특한 제국 일궈
칭기스칸에서 티무르까지/ 피터 잭슨/ 최하늘 옮김/ 책과함께/ 5만8000원
몽골제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피터 잭슨이 중세 유라시아를 관통한 몽골제국의 흥망사를 다룬 책이다. 그의 전작 ‘몽골제국과 서방’과 ‘몽골제국과 이슬람 세계’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몽골제국사 연구의 독보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1327년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황족이 아닌 지역 유력 부족 바를라스 가문 출신이었다. 초원 사회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칭기스칸의 혈통 여부에 달려 있었지만, 티무르는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티무르의 원정에 대한 기록을 읽다 보면 참혹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티무르가 누구도 탐내지 않을 만한 악명을 얻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를 보면 으레 몽골제국의 정복 원정이 떠오른다. 칭기스칸과 마찬가지로 티무르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장기전보다 즉각적인 복종을 선호했다. 항복한 군주들은 대체로 온화한 대우와 관대한 혜택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저항을 택할 경우에는 가혹한 폭력이 뒤따랐다.”(489쪽)
티무르는 잔혹함으로 유명하다. 페르시아 이스파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며 주민 약 7만명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주민들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 형태로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는 약 9만명을 학살했다는 전언도 남아 있다. 저자는 “티무르는 폭력을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는 무대 장치로 활용했다. 이는 몽골제국의 군사적 지배와는 다른 차원의 정치적 연출이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티무르는 정복지에서 생포한 장인과 학자들을 사마르칸트로 이주시켜 도시를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페르시아의 건축가, 인도의 장인, 아랍의 학자들이 모여들며 사마르칸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변모했다. 그는 폭력으로 확보한 자원을 예술과 건축으로 승화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전쟁광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관리한 정치가였음을 보여준다.
티무르의 정복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몽골제국 붕괴 이후 혼란스러웠던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 그의 제국은 유럽·중동·인도에 걸쳐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냈다. 유럽에서는 티무르의 등장이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효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를 티무르가 몽골제국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편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한다.
티무르는 1405년 중국 원정을 앞두고 사망했다. 그의 제국은 곧 분열했지만, 사마르칸트의 건축과 문화적 유산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후대 무굴 제국의 창건자 바부르 역시 자신이 티무르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는 티무르가 단순한 파괴자가 아니라 몽골제국사의 연장선에서 정치적 상징성을 남긴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티무르 제국의 핵심 특징을 ‘합성’으로 규정한다. 이슬람적 관행과 초원 유목의 전통, 몽골제국의 이념과 무슬림 군주권의 정치적 이미지를 결합한 복합적 통치 체제였다는 것이다. 그간 잔혹한 정복자라는 면모만 부각됐던 티무르를 몽골제국의 연장선에서 재해석하고, 몽골제국의 분열 이후 몽골·이슬람·튀르크 전통이 교차한 중세 유라시아사의 복잡한 흐름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노작이라 할 만하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친부 떠난 뒤 만난 새아버지…조현아·선미가 성까지 바꾸려 한 이유
- 매달 8000만원 버는 토니안, 슈퍼카 3대 날리고 ‘재무제표’ 뜯어보는 이유
- 쥐 나오던 지하실에서 157억 매출까지…브라이언이 쓴 20년의 기록
- 하루 2억원 벌던 전성기 사라진 자리, 편승엽이 5남매를 키워낸 방식
- 폐지 줍던 엄마 건물주로…가난 공포 ‘부동산’으로 지운 서인국·지디·조권
- ‘천만 배우’가 미역을 감았다?…박지훈이 ‘왕’에서 ‘취사병’이 된 건에 관하여
- 감자밭 매던 소녀, 상금 3억 당구 여제로…‘캄보디아 김연아’ 피아비의 기적
- 세금 다 냈는데 압류?…김사랑 아파트 논란이 보여준 ‘행정의 민낯’
- “그 꼴은 못 본다”…탁재훈이 180억 배경 뒤로하고 예능 현장 지키는 이유
- ‘100만원’ 단칸방에서 80억대 집주인으로, 유해진 38년 노동의 성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