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프로젝트] 평범한 운전 실력,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1편


자동차 면허를 딴 뒤 운전 스킬을 추가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평범한 운전 실력에 만족할뿐더러 투자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 년간 자동차 전문기자로 일하다 보니, 지금의 운전 실력에 머무르긴 자존심이 상했다. 마침 나에게 딱 필요한 ‘학원’을 찾았다. 바로 현대자동차의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다.


글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현대자동차, 서동현

충남 태안에 위치한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HMG Driving Experience Center). 한국타이어의 연구 시설 한국테크노링(Hankook Technoring)에 입주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기존에는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운영했는데, 지난해 9월 개편과 함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머나먼 태안 땅으로 이사한 이유는 ‘최신 설비’다. 한국테크노링은 126만㎡ 부지에 약 2,2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시설. 마른 노면과 젖은 노면, 고속 주회로, 제동 시험로, 오프로드 등 목적이 서로 다른 13가지 테스트 장소를 한 곳에 모았다. 특히 최대 38.87°로 솟구친 고속 주회로는 레이싱 드라이버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코스다. 뒷바퀴를 ‘툭’ 건드려 중심을 무너뜨리는 킥 플레이트도 마찬가지.


동시에 브랜드별 특화 프로그램도 알차게 마련했다. 현대·기아·제네시스 모두 ‘레벨 1~3’까진 과정이 같다. 이후 현대는 ‘N 어드밴스드’와 ‘N 마스터즈’로 올라가며, 제네시스는 ‘드리프트 레벨 1·2’를 상위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이외에 SUV로 즐기는 ‘오프로드’와 전기차로 채운 ‘EV 익스피리언스’, 인스트럭터 옆에 동승하는 ‘택시 드라이빙’,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HMG 주니어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도 있다.

나를 비롯한 자동차 기자 대부분은 개관 행사 때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빼곡한 프로그램 구성과 깔끔한 시설, 다양한 차종에 만족하며 돌아간 기억이 있다. 다만 반나절 안에 살짝 맛만 봤기에, 인스트럭터와 함께하는 체계적인 교육은 받아볼 수 없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총 여섯 명의 기자가 다시 이곳에 모였다.

올바른 운전은 올바른 자세로부터

첫 프로그램은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레벨 1. 파트너는 제네시스 G70 2.0T AWD다. 총 120분 동안 이론 교육과 주행 실습을 진행하는데, 가장 쉬운 단계인 만큼 내용은 어렵지 않다. 올바른 운전 자세와 스티어링 휠 및 브레이크 조작의 기본을 배우고 실습하는 시간이다. ‘정석’에 가까운 운전 방법과 나의 운전 습관을 비교할 수 있어 은근히 유익하다.


먼저 시트 조절 순서부터 교육받았다. 의외로 첫 번째는 ①높이다. 위아래 조작과 동시에 앞뒤로도 시트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눈을 앞 유리 중간에 맞춘 뒤 ②앞뒤 거리를 설정한다. 풀 브레이킹 자세에서 무릎이 120°로 구부러질 만큼 당기면 된다. 이어서 ③등받이 각도를 95°로 세우고, ④운전대 3·9시 방향을 잡아 양 팔꿈치를 120°로 구부린다. ⑤헤드레스트 끝을 정수리만큼 올리고 ⑥안전벨트와 거울까지 조정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다음으론 ‘운전대 돌리는 방법’을 배운다. 기본자세는 ‘베이직 스티어링’이다. 운전대를 180°로 꺾을 때까지 양손을 3시 및 9시 방향에서 떼지 않아야 한다. 그 이상 회전할 땐 ‘크로스 암 스티어링’을 쓴다. 운전대를 180° 이상 돌리며 차의 진행 방향 손을 놓았다가, 다시 정확한 위치를 쥐는 방법이다. 글로 풀면 어려운데, 현장에선 시각 자료로 가르쳐 이해가 쉽다.

드디어 실습 시간. 가벼운 슬라럼과 레인 체인지로 G70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콘 사이를 S자로 헤집으며 252마력의 넉넉한 힘과 빠릿한 핸들링을 몸에 익혀갔다. 모든 기자가 한 바퀴씩 코스를 돌자, 우리의 스승님인 인스트럭터의 무전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속도를 10㎞/h씩 높이겠습니다. 차의 거동이 바뀔 거예요. 빠를수록 더 신중하고 정확하게 운전대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처음 속도는 시속 40㎞. 이후 50, 60㎞/h로 차근차근 난이도를 올렸다. 단계를 거듭할수록 슬라럼 라인은 부풀었고, 보다 과감한 운전대 조작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속도에 따른 나의 시야와 반응속도 차이가 예상보다 컸다. 단순한 ‘몸풀기’ 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다음 코스로 이동할 때쯤에야 깨달았다.

브레이크는 자신 있게, 타이어 관리도 필수!

조향만큼이나 중요한 동작이 ‘제동’이다. 브레이크와 타이어 성능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도로에서 ‘풀 브레이킹’을 해본 운전자가 얼마나 있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힘을 더 줄지언정, ‘차가 미끄러지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끝까지 못 밟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제동 코스는 그러한 염려를 완벽히 깰 장소. 앞을 가로막는 차도, 불쑥 튀어나오는 보행자도 없다. 덕분에 브레이크 페달이 부서지도록 밟으며 제동력의 한계를 배울 수 있다. 이번에도 시속 40, 50, 60㎞로 나눠 진입. 차이는 확실했다. 속도에 따라 제동거리가 확연히 늘어난다. 특히 젖은 노면에선 깜짝 놀랄 만큼 차체가 밀려났다. 평소 안전거리를 왜 확보해야 하는지 스스로 되새길 수 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 ‘타이어 마모도’ 또한 제동거리를 결정짓는 핵심 포인트다. 결국 노면과 닿는 부분은 타이어뿐이니까. 트레드(Tread)라고 부르는 타이어 표면 홈은 바닥과 바퀴 사이 물을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즉 트레드 깊이가 줄어든 마모 타이어는 물을 빼내지 못하고, 충분한 마찰력이 나오지 않아 결국 차는 미끄러진다.

위 사진은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미리 끼워둔 마모 타이어다. 제동 능력은 섬뜩한 수준이다. 같은 G70인데, 브레이크 페달을 아무리 세게 밟아도 원하는 지점에 멈추지 않았다. 물을 더 많이 뿌리는 코스 끝자락에선 얇은 젤리 위에 떠가는 듯한 묘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매년 여름 장마가 오기 전, 타이어 점검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반복 학습으로 익히는 서킷 주행 테크닉

마지막 순서는 프로그램의 꽃인 서킷 주행이다. 트랙 전체 길이는 3.4㎞. 그중 레벨 1 프로그램은 1.3㎞로 분리한 B 코스에서 진행한다. 여기에선 ‘전방 안전 시스템’을 꺼야 한다. 갑자기 앞 차와의 거리가 줄어들 때 스스로 긴급 제동을 걸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뒤따르는 차를 위협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은 정확한 코너링 실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스트럭터를 따라 속도를 낮추고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리자, 코너 안쪽 파란색 콘이 눈에 띄었다. 그 지점이 코너와 차를 가장 가깝게 붙이는 포인트다. 콘을 지나면 부드럽게 가속. 트랙 바깥쪽까지 활용해야 탈출 속도를 최대한 올릴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코너를 공략하면 최고의 랩타임이 나오는 레코드 라인(Record Line)을 그릴 수 있다.

3대의 G70은 각각 자동차 한 대 간격을 유지하며 숙련도를 높여갔다. 난해했던 부분은 코너 가장자리의 기준점.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서킷은 독특하게도 ‘연석’이 없다. 연구 목적이 우선이라 설계 관점이 다른 탓이다. 평범한 서킷에 익숙한 참가자들은 흰색 점선과 실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 인스트럭터가 이를 눈치 못 챌 리 없다.


“겁내지 말고 실선까지 사용하세요! 점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자마자, 우린 확신을 갖고 라인을 수정해갔다. 이에 따라 인스트럭터도 평균 속도를 올렸다. ‘레벨 1이면 큰 재미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던 과거는 이미 잊었다. 다가오는 코너를 노려보며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영상 촬영을 위해 켜놓은 마이크엔 점점 무전기 소리만 들어갔다.

그렇게 몇 바퀴나 돌았을까. 드디어 감을 잡았다고 생각할 때쯤 프로그램이 끝났다. 두 시간 동안 시계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니. 내 집중력이 이렇게 높았던가? 배움의 의지가 더 강한 참가자라면 2시간을 20분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운전의 기초’를 기르기 위한 레벨 1이지만 지루할 틈은 조금도 없었다. 인스트럭터가 직접 서명한 수료증까지 받고 나면 뿌듯함은 두 배로 오른다. 다음날엔 공식 홈페이지의 ‘마이페이지’에서 내 점수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인 레벨 2는 기아 EV6 GT와 함께한다. 출력 차이만큼 난이도도 올라가고, 교육 시간은 190분으로 늘어난다. 준비물은 더 높은 집중력과 체력. 레벨 1에서 얻은 교훈과 겸손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적나라한 점수를 보고 나니, 애써 누른 승부욕이 다시 불탄다. 아무래도 방구석에 모셔둔 레이싱 휠을 오랜만에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