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
나무호의 이동 배경 규명: 나무호가 위험한 출구 대기선까지 이동하게 된 판단 근거와 시점(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발표 전후 여부)을 확인하여, 이것이 미국의 군사작전 흐름에 포함된 결과였는지 밝혀야 한다.
항적 및 교신 기록의 투명한 공개: 선박의 항적 데이터와 본사·정부 간의 교신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미국의 '이란 공격' 단정에 섣불리 휘말리지 않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전쟁 동원 논리 차단과 외교적 자율성: '통킹만 사건' 식의 일방적 결론과 참전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한 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중견국으로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냉철한 대응을 견지해야 한다.
같은 날 벌어진 두 사건
지난 5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UAE 움알쿠와인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한국 HMM 나무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한국 선원 6명을 포함한 승무원들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보도됐다. 폭발은 기관실 부근 좌현 쪽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선체 침몰이나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사건의 성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날짜다. 같은 날 미국은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을 본격화했다. 이 작전은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상선들을 미국 군사력으로 안내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바로 그날 나무호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사건이 같은 날 겹쳤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한국 언론은 나무호가 이란이 새로 주장한 통제선 바깥쪽에 있었고, 주변에도 여러 국적 선박들이 비슷한 해역에 머물러 있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해역이 항로 대기, 입항 순서 조율, 안전 확인 절차를 위한 대기 집결 공간으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나무호는 임의의 바다에 떠 있던 것이 아니었다. 호르무즈 통과를 준비하는 상선들이 모이는 민감한 대기 해역에 있었다.
문제는 폭발 직후의 정치적 반응이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곧바로 이란의 공격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무호 사건을 근거로 한국도 프로젝트 프리덤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압박했다. 미국은 선박 안전 문제를 이란 책임론과 동맹국 동원 논리로 즉시 연결했다.
한국정부의 반응은 신중했다. 폭발 원인, 선박 안전, 미국의 작전 참여 요구를 모두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의 압박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란과의 관계, 중동 해역의 한국 선박 안전, 에너지 수급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정이 아니다. 나무호가 왜 그 위치에 있었는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나무호는 왜 그곳까지 갔을까
나무호 사건에서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쐈는가”만이 아니다. 그보다 앞선 질문이 있다. 나무호는 왜 그곳까지 갔는가. 이 배는 페르시아만 안쪽 깊숙한 곳에만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었다. 중국 상하이행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호르무즈 해협 직전의 출구 대기선까지 이동해 있었다.
이 지점이 핵심이다. 배가 상하이로 가려면 페르시아만 안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해협 통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장이 선박과 선원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출구 대기선까지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장은 무엇을 확신했는가. 누가 통항 가능성을 말했는가. 나무호는 어떤 정보를 받았는가.
선박의 이동은 선장 개인의 감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특히 전쟁 위험 해역에서는 선사 본사, 선박관리회사, 현지 대리점, 보험사, 보안자문, 정부 연락망, 해상교통 정보가 모두 작용한다. 나무호가 출구 대기선까지 이동했다면, 그 배경에는 어떤 정보와 판단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부도 나무호로부터 이동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 도착 시점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나무호가 언제 움알쿠와인 앞바다의 출구 대기선에 도착했는지는 공개적으로 명확히 확인되어야 한다. 그 도착이 프로젝트 프리덤 발표 전이었는지, 발표 후였는지에 따라 사건의 해석은 달라진다. 5월 3일은 프로젝트 프리덤 발표와 해역 긴장이 본격화된 날짜다. 그러나 나무호가 그날 도착했는지는 별도로 확인되어야 한다.
미국은 프로젝트 프리덤을 추진하면서 선박, 선사, 보험사와 접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호르무즈 남쪽에 강화안전구역을 설정했고, 상선 통항을 유도하려 했다. 이것은 미국이 단순히 군함을 띄운 것이 아니라, 실제 선박 이동 흐름을 만들려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무호의 이동도 이 흐름과 무관하게 볼 수 없다.
나무호가 미국의 직접 지시를 받고 이동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의 통항 재개 구상이 선사, 보험사, 해상보안망을 통해 나무호의 이동 판단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미국의 통항 가능성 신호가 나무호 이동에 개입했다면, 사건의 성격은 달라진다. 단순 폭발 사건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작전 흐름 속에 한국 선박이 들어간 사건이 된다.
물론 통항이 막힌 상태에서도 선박이 상업적 판단에 따라 출구 대기선까지 미리 이동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해협이 열릴 경우 곧바로 통과하기 위해 선사가 독자적으로 대기 위치를 조정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나무호가 이동한 시점은 미국이 프로젝트 프리덤을 준비하며 선사·보험사와 접촉하던 시기와 겹친다. 단순한 관행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사건 당일 프로젝트 프리덤이 본격화되었다는 우연이 지나치게 무겁다.

두 개의 통항질서...미국의 보호와 이란의 승인
《프로젝트 프리덤》은 겉으로는 상선 보호 작전이다. 미국은 이를 인도주의적 통항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해협에 갇힌 선박들을 안내하겠다고 했고, 방해가 있으면 강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작전의 본질은 '단순 안내'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질서를 누가 관리하느냐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예견된 것이다.
미국은 프로젝트 프리덤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통항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보도들은 유도미사일 구축함, 100대 이상 항공기, 다영역 무인 플랫폼, 1만 5천 명 이상의 병력 투입을 전했다. 이것은 단순 안내가 아니라 대규모 군사작전이다.
반면 이란은 정반대의 해상질서를 주장한다. 이란은 호르무즈의 안전한 통항은 이란군 또는 혁명수비대와의 조율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안전구역이 아니라, 이란이 승인한 '통항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미국 군사력이 이란의 승인 없이 해협에 접근하거나 진입할 경우, 이를 주권 침해로 보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역에는 두 개의 통항질서가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이 군사력으로 구축하려는 프리덤 작전의 보호질서다. 다른 하나는 이란이 자국 안보 주권에 기초해 주장하는 해상통제 질서다. 한쪽은 통항의 자유를 내세우고, 다른 쪽은 통항 승인권을 내세운다. 나무호는 바로 이 충돌선 위에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시발, 통킹만 사건은 단순한 “불확실한 해상 충돌”이 아니었다. 미국이 존재하지 않은 두 번째 공격을 전쟁 확대 명분으로 사용한 사건이었다. 나무호 사건을 곧바로 통킹만 사건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원인 규명이 끝나기 전에 적국의 공격으로 단정하고 동맹국 참여를 압박하는 방식은 '통킹만식 전쟁 동원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프리덤 작전은 새 전쟁인가, 에픽 퓨리의 연장인가
《에픽 퓨리》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시작한 대이란 군사작전이다. 타격 대상에는 혁명수비대 지휘통제시설, 방공망, 미사일·드론 발사장, 군 비행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이를 핵위협 제거와 군사시설 타격으로 설명했지만, 5월 4일 《프로젝트 프리덤》이 등장하면서 전쟁은 공습 중심 작전에서 해협 통항 작전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에픽 퓨리는 작전 규모와 공격 범위를 볼 때, 그 이면에는 더 큰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의 실질적 무력화, 핵능력의 완전한 제거, 그리고 궁극적으로 중동 석유질서의 재편이다. 공식 명분은 군사시설 타격이었지만, 작전의 정치적 효과는 이란 체제와 에너지 질서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4월 말까지 이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붕괴하지 않았다. 핵능력 제거도 확인되지 않았다. 호르무즈와 페르시아만의 석유 통제권도 미국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은 호르무즈 통항을 자국 군과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의 통항 재개 작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프로젝트 프리덤이다. 미국은 이를 상선 보호와 인도주의적 통항 지원이라고 불렀다. 헤그세스는 프로젝트 프리덤이 에픽 퓨리와 별개이며 방어적·일시적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호르무즈 상업 통항을 다시 열기 위해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작전의 공식 이름은 바뀌었지만, 목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란의 해상통제권을 무력화하고, 호르무즈 통항질서를 미국 주도로 재편하려는 목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에픽 퓨리가 이란 본토와 군사시설을 겨냥한 작전이었다면, 프로젝트 프리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같은 목표를 다시 밀어붙이는 작전이다.
왜 '불리한' 전쟁의 연장을 택했는가
문제는 왜 트럼프 정부가 이런 위험한 전쟁 연장을 택했느냐이다. 장기전은 미국에 불리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그곳에 있고, 호르무즈의 위험을 계속 높일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먼 거리에서 함정, 항공기, 병력, 보급망을 유지해야 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비용은 미국과 동맹국, 해운시장, 에너지 소비국에 누적된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전쟁을 끝내기보다 전쟁을 이어가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단기 목표 때문이다.
첫째, 에픽 퓨리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둘째, 국내 정치의 혼란과 비판을 외부 전쟁 국면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호르무즈 통항 장면을 만들어 “미국이 여전히 질서를 통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다.
넷째,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끌어들여 전쟁 부담을 분산하려 했다.
여기에 미국의 전쟁권한법 60일 시한 문제가 겹친다. 트럼프 정부는 에픽 퓨리가 멈췄고, 프로젝트 프리덤은 별도의 방어작전이라고 주장하려 한다. 그래야 새 작전에는 새 법적 계산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트럼프의 셈법일 뿐이다. 미국 내 비판 여론과 국제사회가 보기에는 에픽 퓨리와 프로젝트 프리덤은 별개의 전쟁이 아니다. 2월 28일 시작된 이란전쟁의 연장이다.
프리덤 작전은 휴전을 안정시키는 작전이 아니다. 모호한 휴전상태를 다시 전쟁상태로 밀어 넣는 군사작전이다. 미국은 상선 보호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란의 통항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군사력을 투입했다. 충돌 가능성을 알면서도 밀고 들어갔다면, 그것은 평화 유지가 아니다. 전쟁 재개의 다른 형식이다.
트럼프 정부는 장기전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단기적 정치 효과와 작전 목표 달성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프로젝트 프리덤의 본질이다. 전쟁을 끝내는 작전이 아니라, 끝난 것처럼 말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계속하는 작전이다.

한국정부는 무엇을 알고 있나
한국 정부의 처지는 간단하지 않다. 한국 선박과 선원이 걸려 있다. 미국은 한국의 작전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조율 없는 통항을 위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중동 해역에는 한국 관련 선박과 한국인 선원이 더 있다.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설명 책임은 더 커진다.
한국정부가 나무호의 위치와 이동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호르무즈 안쪽에 한국 관련 선박들이 묶여 있었고, 정부는 선박 안전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사고 뒤 정부가 선박 안전과 공관 협력을 점검했다면, 사고 전에도 최소한 위치와 위험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위치' 인지가 아니라 '이동 배경' 인지다. 정부가 단순히 나무호의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선박 자동 식별 장치) 위치만 파악했는지, 아니면 나무호가 출구 대기선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까지 알고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무호 선장과 선박관리회사, 현지 대리점, 보험사, 미국 측 해상안보망 사이에 어떤 통항 가능성 정보가 오갔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나무호가 왜 호르무즈 통과 직전의 위험한 대기선까지 이동했는지, 그 판단에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 사전 준비가 반영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정부가 “선박 이동은 선사의 자율적 판단”이라며 선을 긋고 싶어 할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설명의 전부라면, 정부는 핵심 질문을 피하는 셈이 된다.
자율적 판단이 내려질 때 그 판단의 배경이 된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통항 재개 신호가 있었는지, 정부가 그것을 알았는지,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의 결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란 공격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한국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폭발 원인과 이동 배경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참전 논의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 선박 보호와 군사작전 참여는 같은 말이 아니다.
정부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아야 하고, 이란과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남은 선박의 안전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의문은 커진다. 나무호는 어떤 정보를 받고 움직였는가. 정부는 그 이동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미국은 한국정부나 나무호에 통항 가능성 정보를 제공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한국은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작전에 끌려 들어가는 처지가 될 수 있다.
항적을 공개해야 한다
나무호 사건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미국이 나무호 이동에 개입했다면, 이 사건은 미국의 전쟁 동원 구조와 연결될 수 있다.
반대로 이란이 개입했다면, 한국 선박을 겨냥한 계획적 공격이 아니라 미국의 프로젝트 프리덤과 이란의 해상통제 조치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발 또는 우발적 사고일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그 무엇 하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우연과 필연을 아직 판단할 수 없어도, 이 사건이 단순한 사고로만 처리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수많은 정보와 판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선박이 피해를 입었다면, 그 배경에는 반드시 밝혀야 할 구조적 연결고리가 있다.
나무호는 왜 그곳까지 갔는가. 누가 통항 가능성을 말했는가. 선장은 무엇을 확신했는가. 나무호와 한국정부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폭발은 사건의 표면이다. 항적은 사건의 구조를 푸는 첫 단서다. 지금 한국정부와 나무호 본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무호의 항적과 교신 기록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개하는 것이다.
특히 나무호가 움알쿠와인 앞바다 출구 대기선에 언제 도착했는지, 그 도착이 프로젝트 프리덤 발표 전(前)인지 후(後)인지, 그리고 그 이동 판단에 어떤 통항 정보가 작용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최소한 폭발 며칠 전부터 5월 4일 폭발 직전까지의 AIS 항적, 목적지 변경 시점, 선장과 본사의 교신, 현지 대리점의 정박지 안내, 해수부와 외교부의 상황 인지 시점은 공개되어야 한다. 군사기밀이나 선박 안전상 비공개가 필요한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왜 그 배가 그 위치까지 이동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의 압박을 견뎌내면서 더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 먼저 나무호가 왜 위험한 출구 대기선까지 이동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그다음 폭발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확인되어야 나무호 사건이 우연이었는지, 필연적 충돌의 결과였는지 판단할 수 있다. 원인 규명 전의 참전 논의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이후 전개는 이 의문을 더 키운다. 트럼프는 프로젝트 프리덤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이란과의 합의 진전”을 이유로 작전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란은 미군이 호르무즈에 접근하면 공격받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 군함 저지 또는 피격 주장도 나왔으며, 혁명수비대는 새 해상통제 구역을 지도화했다.
작전은 멈췄지만 봉쇄는 유지됐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프리덤 중단은 단순한 평화 신호라기보다, 이란의 군사적 저지와 작전 지속 비용을 계산한 전술 조정으로 보아야 한다.
나무호 사건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아직 답은 없다. 그러나 답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 배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한국이 미국이 강요하는 전쟁 동원 압박에서 벗어나는 첫 조건이다.
프로젝트 프리덤이 하루 만에 중단됐다고 해서 이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왜 나무호는 그 작전이 본격화된 바로 그날 그 위치에 있었는가.
※ 이 글은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 글쓴이 윤현일 님은 35년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금은 은퇴후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리아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심있어 틈틈히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