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 넘은 윤·한 갈등, 지금 못 풀면 공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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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 문제’ 놓고 골육상쟁으로 시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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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법 부결시켰지만 이탈표 4표, ‘위험 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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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한 대표, 감정싸움 접고 머리 맞댈 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한 대표는 최근 두 번이나 대통령에 독대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일축당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30일 한 언론사 창간 기념식에 함께 참석하기로 했지만 30분 전에 한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2일엔 윤 대통령이 한 대표만 쏙 빼고 추경호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불러 만찬을 했다.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한 대표가 없어서였다”는 얘기가 나오니 기가 막힌다. 한 대표는 한 대표대로 “(대통령실 출신) 정부투자 금융기관 감사가 좌파 유튜버에 저를 공격하라고 사주했다”고 공개 비난하고 나섰다. 대통령실 출신 인사가 유튜버에 여당 대표 공격을 주문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지만 여당 대표가 대통령실을 겨냥해 원색적인 비난전에 나선 것도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192석 거야( 巨野)가 대통령 탄핵을 대놓고 추진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지율 20%대 대통령과 의석 108석의 최약체 여당 대표가 사사건건 부딪치는 것도 모자라 얼굴조차 안 보려고 한다. 그 결과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더욱 곤두박질쳐 정부 출범 후 최저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절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이전투구로 날밤을 새우고 있다. 여당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10·16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금정구·인천 강화군 같은 강세 지역조차 승리를 장담 못 하는 신세가 된 이유다.
윤 대통령이 여당 원내 지도부를 용산에 초청해 “우리는 하나” 건배사를 외친 건 4일 ‘김건희 특검법’·‘채 해병 특검법’이 재표결에 부쳐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재표결 결과 국민의힘이 ‘부결·폐기’를 당론으로 정한 두 특검법은 각각 찬성 194표, 반대 104표로 모두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이걸로 김 여사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믿을 이는 없을 것이다. 명품백 수수 논란을 필두로 전당대회 개입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방조 혐의 등 김 여사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온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김 여사와 측근들이 의혹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특검법이 나쁘다 해도 김 여사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김재섭), “야당에 끌려가 사과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입장 발표가 있어야 한다”(김용태)라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을 용산은 성찰하고 국민이 납득할 조치를 해야 한다. 당장 4일 재표결에서 여당에서도 4표의 이탈표가 나왔지 않는가.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 4명의 연임안을 한 달 넘도록 재가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오동운 공수처장 임명 당시 추천 58일 만에야 재가할 만큼 늦장을 부린 대통령실이 이대환 수사4부 부장검사 등 인사 검증이 끝난 현직 검사들의 연임까지 결재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26일까지 연임을 재가하지 않으면 이들은 임기가 만료돼 업무에서 배제된다. 공수처 주요 사건들의 수사를 이끌어 온 검사들인 만큼 공수처 운영의 불안정성을 가중하는 행태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외면하면 국정을 풀어갈 수 없다. 대통령은 적대국 지도자나 야당 대표와도 대화해야 하는 자리인데 하물며 여당 대표를 안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 대표 역시 용산에 할 말은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언론 플레이나 대통령과의 감정 싸움은 자제해야 한다. 주도권 다툼에 매몰되지 말고 국정 난맥을 풀기 위한 진심 어린 설득에 나설 때다. 의료대란·내수 부진에 심상찮은 중동 정세 등 난제가 가득한데 정권의 두 축이 골육상쟁만 벌이니 국민은 억장이 무너진다. 하루빨리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만나 갈등을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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