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추락하는 KBS 주말극, 불패의 신화 무너지나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0. 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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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심상찮은 시청률 하락과 KBS 주말드라마의 딜레마
KBS 주말드라마의 깊어진 고민, 과거와 현재 사이의 선택지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새 주말드라마 <삼남매가 용감하게>의 시청률 추락이 심상찮다. KBS 주말극은 최근까지 거의 유일하게 30% 시청률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졌던 편성대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시청률이 갈수록 빠져나가고 있다. 20.5%의 첫 회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3회에서 18.5%로 하락세를 보이더니 5회에는 급기야 16.9%까지 추락했다.

물론 여기에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주말 시간대에 야외 활동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무엇보다 KBS 주말드라마 자체가 갖고 있는 딜레마도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즉 조금은 구닥다리이고 다소 틀에 박힌 드라마 문법을 쓰면 그 익숙함과 자극적인 설정 때문에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지금의 변화하는 가족 양태와 트렌드를 접목시키려 하면 고정 시청층의 이탈이 생겨버리는 딜레마가 그것이다.

이런 딜레마는 이미 전작이었던 <현재는 아름다워>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이 가족드라마는 현재가 아름답다는 다소 정답에 가까운 메시지를 큰 자극점이나 갈등 없이 풀어나간 드라마였다. 그래서였는지 시청률은 내내 20%대를 전전했다. 마지막회 29.4%(닐슨 코리아)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결국 30%대 시청률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이것은 그 이전 주말드라마였던 <신사와 아가씨>가 최고 시청률 38.2%를 기록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신사와 아가씨>는 출생의 비밀부터 신데렐라 스토리까지 다소 뻔한 드라마 작법을 갖고 와 너무 퇴행적인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삼남매가 용감하게>는 <신사와 아가씨>보다는 <현재는 아름다워>의 방향성을 따르는 주말드라마다. 드라마의 전개나 설정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전형적인 KBS 주말드라마의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소재나 내용은 자극을 추구하기보다는 건전한 메시지를 담으려 하는 쪽이다. 이것이 잘 드러나는 건 물론 불륜을 저지르는 민유리(오하늬)나 조남수(양대혁) 같은 밉상 캐릭터가 있긴 하지만 그간 주말드라마에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늘 등장하던 '빌런' 캐릭터가 생각만큼 강렬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는 아름다워>에서 심지어 출생의 비밀 코드를 쓰면서도 자극적인 빌런 캐릭터가 생기지 않았던 것과 유사하다.

<삼남매가 용감하게>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김태주(이하나)와 이상준(임주환)이란 인물의 멜로라인이고, 이들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는 이른바 K장녀, K장남이 늘 희생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삶을 찾으라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한 때 연인이었지만, 이상준이 잘 나가는 연예인인데다 그의 가족이 가진 기대치가 달라서 헤어지게 된 것이었고 그로 인해 김태주는 이상준의 전 여자친구라는 굴레 속에서 자신의 청춘이 저당 잡힌 채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이상준의 인기도 시들해지는 상황에 그들은 다시 만났지만 여전히 가족들은 이 두 사람에게 장녀, 장남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한다.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설레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김태주는 이상준의 구애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라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다시 피어오른다.

<현재는 아름다워>가 가족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낸 것처럼, <삼남매가 용감하게>도 주요 이야기는 삼남매의 연애에 맞춰져 있다. 김태주의 엄마 유정숙(이경진)과 부딪치는 이상준의 엄마 장세란(장미희) 같은 부모 세대의 갈등이나, 그 윗세대인 최말순(정재순)과 양갑분(김용림)의 갈등이 존재하지만 아직은 부차적인 스토리에 머물고 있다. 결국 가족드라마라고 하지만 멜로드라마가 중심에 서 있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가족보다는 개인의 삶이 더 우선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현재의 변화를 수용한 결과일 수 있다. 즉 가족드라마가 과거의 향수에 가깝다면 멜로드라마가 내세우는 개인의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은 KBS 주말드라마라는 전통적인 가족 서사와는 엇나가는 딜레마를 만든다. KBS 주말드라마가 거의 유일하게 30%가 넘는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의 달라진 가족양태와는 맞지 않지만 옛 드라마의 향수를 느끼고픈 고정적인 시청층을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름다워>에 이은 <삼남매가 용감하게>에 불어닥친 시청률 추락은 그래서 단지 드라마 각각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가 갖는 딜레마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과거로 퇴행하면 시청률은 높아지지만 논란의 대상이 되고, 현재를 담으려 하면 시청률이 추락하는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KBS 주말드라마는 어느 쪽으로 나가야할까. 과거일까 아니면 현재일까. 단 하나의 숨구멍으로서 과거를 재연하는 가족판타지의 틀로 남겨두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시청률은 다소 빠져도 용감하게 현재의 달라진 가치관을 가족에도 투영해 담는 것이 옳은 일일까. 단지 시청률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선택의 질문지 앞에 KBS 주말드라마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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