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tory] SSG 랜더스 노경은

투혼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물과 흙, 햇빛과 양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연에 드리워진 꽃 중 바람 한 점 없이 편안하게, 말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핀 꽃이 어디 있으랴. 부모님이 주신 물과 흙을 기반 삼아 뛰어든 프로야구의 세계에서는, 때로는 지나치게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부족한 양분에 배고파하기 일쑤였다. 몸을 휘감는 폭풍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며 야구공을 손에 쥐고 울고 웃는 동안, 어느새 훌쩍 흘러가 버린 22년의 세월. 그동안의 시간이 다 기회이자 즐거운 추억이었다 과거를 돌아볼 법도 하지만, 한 베테랑 마당쇠는 여전한 동력으로 더 이어질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늘도 쉼 없이 마운드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린 깨닫는다. 야구선수 노경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Photographer Mino Hwang Interview Seyeon Kim Editor Jiin Lee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베테랑

과거 두산 베어스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더그아웃 매거진>과 만났네요. 독자분들께 인사 한마디 부탁해요. (9월 10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SSG 랜더스 투수 노경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시즌에만 벌써 70경기에 등판해 32홀드를 챙기면서 KBO리그 최초 2년 연속 30홀드라는 대기록을 세웠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사실 기록을 신경 쓰진 않아요. 시합 때는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하고, 그냥 ‘잘 던지자’라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5월 30일부터 6월까지 10경기 이상, 8월 25일부터 최근까지도 등판 때마다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있어요.
컨디션이 항상 최고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자기만의 루틴을 잘 지킬수록 꾸준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더라고요. 괜찮은 구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루틴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베테랑에게도 힘든 순간이 아예 없을 순 없잖아요. 심적으로 흔들리거나 안정감을 다시 찾아야 하는 순간에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저는 어떻게 하면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극복하고, 나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해요. 그리고 올해 한 가지 깨달은 건, 몸이 피곤하다고 마냥 쉬는 건 정답이 아니란 거예요. 지치고 힘들 때 오히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다음 휴식을 취하니까 회복이 빠르더라고요. 이렇게 했더니 후반기 때도 힘이 꾸준하다는 게 느껴져서 지금도 유지하고 있어요.

힘든 시기임에도 주변으로부터 굳건한 믿음을 받고 있잖아요.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정말 큰 동기부여가 되죠. 감독님은 저를 위기 상황에 줄곧 내보내 주시고, 팬분들은 관중석에서 응원을 보내주시고요. 믿음이 확고히 느껴지니까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에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게 되고, 그게 곧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작년에는 KT 위즈 박영현 선수와 홀드왕 경쟁을 했어요. 아쉽게 두 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는데, 아쉽지 않았나요?
아쉬운 건 전혀 없어요. 작년 홀드왕은 박영현이 당연히 받아야 했다고 봤거든요. 시즌 중반에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있었고, 박영현 선수가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빠진 일수가 꽤 됐잖아요. 그래서 그 틈에 제가 홀드왕이 됐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1년 내내 제 리듬이 나쁘지 않아서, 그냥 작년 시즌을 잘 보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한 정도예요.

올해도 홀드 1위를 달리고 있어요. 약간의 기대는 없을까요?
솔직하게 기대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어요. 근데 주변에서 ‘최고령 홀드왕’이지 않냐며, 꼭 수상을 하길 바란다고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1등보다는 2등이 더 나아요. 비시즌에 좀 쉬어야 하는데 그런 타이틀이 생기면 여러 행사에 참석하느라 바빠지잖아요. 그런 일정 없이 저는 쉬고 싶습니다. (웃음)

평소에도 캠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죠. 이번 시즌의 호투도 그 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네. 재작년에 시즌을 마치고 준비한 부분이 작년 시즌의 호성적으로 이어진 느낌이라, 작년 시즌이 끝나고도 그 루틴을 그대로 가져갔어요. 올 시즌을 마무리하고도 똑같이 진행할 예정이고요. 제가 원래 휴식을 짧게 가져가는 편인데, 비시즌에도 평소에 하던 운동량을 기준으로 무게나 운동 횟수를 더 늘리곤 해요. 이 방법으로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어서, 올해도 짧게 쉰 다음에 곧바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더라고요.

훈련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단련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등 부분과 골반의 유연성을 우선으로 해요. 그다음에 근력을 올리는데, 근력과 더불어 순발력을 집어넣는 훈련이 있어요. 이 과정이 제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에요.

베테랑 선수의 경우 본인만의 관리 루틴이 확고하게 잡혀 있는 편이잖아요. 노경은 선수도 연차가 오래된 만큼, 스스로 컨디션이나 몸 상태를 빠르게 확인하며 대처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예를 들어 경기에 들어가기 전 훈련하는 과정에서 ‘몸이 무겁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평소에 하는 것보다 하체 운동을 추가해준다든지, 연습 때는 공을 최대한 안 던지는 방식으로 관리에 들어가요.

몸 관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때 채식했던 걸로 알려져 있죠?
타 팀에 있을 때 1년 반 정도 채식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성적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아서 ‘그때 왜 채식을 해서 성적이 그랬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채식 덕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때 몸무게를 100kg까지 찌우자는 목표로 비시즌 기간에 엄청나게 먹고 고기도 거의 하루 세 끼를 먹으면서 노력했는데도 제 체질상 잘 안 됐거든요. 근데 채식을 한 이후로 그 목표를 금방 달성했어요. 그걸 계기로 몸에 근육량이나 체중, 힘이 향상됐고,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느덧 페넌트 레이스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벌써 75.2이닝을 책임졌어요. 투구 수나 연투 횟수, 이닝 수 등 수치도 전부 리그 상위권이고요.
체력적으로 괜찮아요. 중간에서 매일같이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재밌기도 하고요. 어릴 때 제대로 된 필승조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즐거움도 있고, 중간 투수라는 보직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든 적이 없어요.

#랜더스의 믿을맨

지난 9월 5일 LG전에서 김광현 선수가 드디어 선발승을 거두면서 ‘쌍둥이 악몽’에서 벗어났어요. 당시 노경은 선수가 마운드를 바로 이어받았는데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까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광현이의 10승도 달려 있었기 때문에…. 사실 모든 중간 투수는 선발 투수 다음으로 던질 때 그런 부담감을 안고 있죠. 게다가 광현이는 이번 시즌에 등판이 몇 경기 남지 않아서 더 조심스러웠고,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 (그날 김광현 선수가 따로 감사 인사를 하진 않았나요?)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했죠. 되게 기뻐했고요.

하루는 중계진이 ‘노경은은 한 타자에게 같은 공을 던져서 공략하는 투수가 아니다. 상하좌우를 노련하게 쓴다’라는 말을 남겼어요.
쇼맨십 때문에 그렇게 던지는 날도 있고요. 점수차가 여유 있는 상황에서는 너클 커브를 던져 본다든가, 한 타자에게 한 구종을 최대한 안 던지려고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필승조로서 중간에 투입되다 보면 그런 여유로운 순간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아요. 무조건 막아야 하고, 타자를 출루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밖에 없으니까 그냥 포수 사인대로 던져요. 그래도 말씀하신 건 제가 구종을 몇 개 더 갖고 있다 보니 포수가 잘 이용해 준다는 뜻으로 읽히네요.

그동안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잖아요. 성향상 어떤 보직에 가깝다고 느껴요?
어려운 문제네요. 흔히 야구의 꽃은 투수라고 하잖아요. ‘이 팀이 정말 강하다. 우승 후보다’라고 하는 기준은 그 팀에 얼마나 강력한 선발 투수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요. 하지만 그만큼 선발 투수는 부담감이 큰 위치예요. 본인이 잘해야 팀의 호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선과 기대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불펜 투수는 오늘 못하더라도 내일 만회할 수 있는 보직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젊을 때는 선발을 더 선호했는데, 지금은 이 자리에 만족해요. 실제로 제가 선발로 나갔을 때 잘 못 던지면, 다음 등판까지의 5일이 그야말로 지옥이었거든요. 심리적으로 더 편하게 임할 수 있는 건 중간이라, 현재에 만족합니다.

랜더스로 이적한 지도 벌써 3년 차예요. 내부에서 보는 랜더스는 어떤 팀인가요?
색채가 확실한 팀이에요. 선수끼리 우애도 끈끈하고요, 후배들이 공경도 잘해주고, 예의가 바르다 보니 선배들도 잘 챙기게 돼서 선후배 간 트러블도 없어요. 당연히 밝은 팀 분위기가 뒤따라오고요. 팀 내부에서도 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전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베테랑 선수의 비중이 큰 구단이잖아요. 입단 초반에 본인을 챙겨주거나 신경을 써준 동료가 있나요?
광현이랑 (문)승원이가 자주 챙겨줬어요. 이를테면 제가 골프를 즐겨 하는데, 비시즌 때나 캠프에 갔을 때 “경은이 형, 라운딩 한 번 나가시죠!” 하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전 신인 때 기억 때문에 후배들한테 먼저 어디 가자고 하거나, 밥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잘 못 하거든요.

옛날에 어떤 기억이 있었길래요?
선배들이 “어디 가자” 이렇게 말씀하시면 선약이 있는데도 거절 못 하고 따라가고… 약간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요? (농담) 그리고 이제 선배의 위치가 되니까, 제가 어디 가자고 하면 괜히 애들이 불편해하진 않을지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광현이나 승원이, (서)진용이, (박)종훈이 아니면 조용히 혼자 지나가는 스타일이에요.

오히려 후배들을 배려하게 됐네요. 반대로, 후배인 김광현, 문승원 선수가 가자고 했을 때 선약이 있다고 말 못 한 적은 없어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지금은 시간적으로 너무 여유가 많아서 오히려 고맙죠. 후배들이 절 잘 챙겨줘요.

#선배의 마음

2003년에 데뷔한 이후로 20년이 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시간의 흐름이 체감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후배들과의 나이 차이요. 제 신인 시절 룸메이트가 권명철 코치님이셨어요. 코치님께서 1969년생인데, 제가 1984년생이니까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넘게 났죠. 그때만 해도 전 진짜 선배님의 눈도 못 쳐다보고 방만 지켰던 기억이 나요. 그 정도로 너무 높게만 보였던 선배님인데, 지금 후배들이랑 제가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절 얼마나 더 어려워할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돼요. 그리고 요즘 어린 친구들이 빨리 성장해야 팀이 강해지는 게 현대 야구의 추세잖아요. 그래서 어린 선수들이 눈치 안 보고 야구를 빨리 잘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제 바로 아래 후배들도 이 부분을 신경 쓰고 있고요.

그거야말로 진정한 ‘선배의 마음’이네요.
그렇죠. 편하게 해주려고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다 보니 고맙게도 후배들도 점점 제게 마음을 열어주더라고요.

최근에 가까워진 선수가 있나요?
친해졌다기보다는, 이제 제게 먼저 물어보러 와요. 전에는 그냥 선배들 눈치만 보던 그런 어린 선수들이, 이제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도 하고 조언을 구하러 오더라고요. 특히 운동에 대해서도 자주 물어보는 걸 보면 후배들에게 제가 조금은 편해졌구나 싶었어요.

어떤 후배가 열심히 질문하던가요?
(최)민준이, (한)두솔이, (송)영진이가 대표적이에요. 가끔은 제가 직접 가서 먼저 도와주기도 하고요. 포수 (조)형우한테도 다음 시즌에 몸을 더 찌워오라고, 근육량도 더 늘려 오라고 잔소리도 종종 해요.

최근 리그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특히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같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딱 한 가지 생각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더라고요. 이 조건이 나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전부 다 똑같은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사고방식을 바꾼 이후로는 오히려 ABS 컨디션을 이용하려고 해요. 특정 코스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잘 나온다든지, 오늘은 좌우로 존이 넓은 편이라든지, 이런 걸 파악하면 경기 중에 불편할 게 없더라고요. ABS는 경기 내내 일관되게 판정을 내려주니까요.

피치컴(사인 교환기)을 착용하고 경기하는 건 어색하지 않나요?
중계를 보니까 모양새가 좀 안 나오더라고요. (웃음) 모자 한쪽이 불쑥 튀어나와 있어서, 그런 모습에 다른 선수들이 “모양 빠진다”라는 농담도 해요. 특히 공을 던질 때 모자가 벗겨지는 선수는 장비가 빠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거기다 가끔 음악과 겹쳐서 사인 소리가 안 들릴 때가 있는데, 그걸 신경 쓰느라 다른 작전을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투수하고 포수가 모두 사인 송신기를 들고 있으면 좋겠어요. 포수가 사인을 낸 게 싫으면 투수가 바로 다시 낼 수 있게요.

쓱튜브를 보니까 피치컴 사인 중에 “정신 차려라”라는 신호가 나오는 버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민식 선수가 자주 쓴다고 하던데,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아뇨. 저한테는 아직 쓴 적은 없어요. 편하게 써도 괜찮은데, 왜 안 쓰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마운드에 있을 때 정신 차리라고 하면 제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안 쓸까요? (웃음) 그래서 전 상관없으니까, 마음 놓고 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막상 마운드에서 들으면 조금 당황하긴 하겠지만요.

#버킷 리스트

지난 9월 1일엔 아버지, 아들과 함께 3대가 시구, 시타, 시포를 했었죠.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당시 기분은 어땠어요?
그날 하루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네요. 그래도 경기 전후로 여운이 진하게 남더라고요. 항상 마음속으로만 꿈꾸던 일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시구할 수 있으려면 제가 1군에서 계속 잘하고 있어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라 사실 힘들지 않을까 싶었어요. 근데 구단에서 먼저 선뜻 얘기해 주셔서 감사했죠.

가족에게도 진짜 특별한 추억이 됐겠어요,
그럼요. 그리고 저는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마운드에 계신 사진을 출력해서 액자에 걸어두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나 아들의 반응이 어땠어요?
솔직히 아들은 아직 어려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느낌이에요. 아버지는 너무 감격하셨죠.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시고요. 게다가 시구 당일의 영상이나 사진이 다 남아 있으니까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쉬워서 매우 만족하는 중이세요.

건강한 체질을 물려준 아버지부터, 본인을 똑 닮은 아들까지 세 부자가 붕어빵이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겠어요.
이런 얘기도 들어봤어요. 저 귀가 3대째 이어오는 귀라고요. 그다음으로는 사각턱도 그렇고, 짝짝이 눈썹까지 닮았다고들 하세요.

아버지의 시구 지도는 본인이 직접 한 거였죠?
자세하게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고집이 정말 세요. 그래서 그냥 뒤에서 어떻게 하시나 지켜봤더니 알아서 잘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아예 터치를 안 했습니다.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직 안 하나요?
아들은 책을 즐겨 보고, 상어나 고래 이런 쪽에 관심이 있어요. 가끔 “야구선수 할 거야”라는 말을 하기는 하는데, 아직 운동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여요. 나중에 자기가 원하면 시킬 순 있겠지만, 제가 먼저 억지로 시킬 계획은 없어요.

시구 외에 다른 버킷 리스트도 있을까요?
제가 가본 장소 중에 인상적인 곳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가보는 거요. 예전에 전지훈련 때문에 갔던 미야자키로 아버지와 둘이서 간 적이 있어요. “여기가 우리가 피칭하는 곳이야, 여기선 무슨 운동을 했고, 여기가 우리가 묵었던 숙소야” 하면서 훈련 당시 방문한 곳을 다 소개해드리고, 아버지와 그 숙소에 묵기도 하고요. 한 번은 질롱 코리아에서 뛰면서 호주에 있을 때도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는 곳에 갔다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아버지를 그냥 불렀어요. 저 혼자만 보기 아까웠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그랜드 캐니언에도 모시고 가고 싶어요.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시즌은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이번 시즌은 뭐 없습니다. 일단 팀이 무조건 5강에 들어서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게 첫 번째고, 개인적으로는 팀 최다 홀드인 34개를 넘어서는 게 마지막 욕심이에요. 물론 홀드왕은 제가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요. 팀이 가을에도 야구를 하는 것, 홀드 35개로 구단 기록을 바꾸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은지도 듣고 싶어요.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선수,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한번 일어섰던 선수, 그리고 몸이 튼튼했던 선수요. 이렇게 세 가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께 인사 부탁해요.
어느덧 시즌의 막바지까지 왔네요. 저희도 가을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거 감사하게 느끼고 있고요,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중간에서 열심히 던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2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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