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 부대·‘칼각’ 행진 생략…“예산 낭비, 북한 연상” 눈총 의식?
1일 오후 서울 숭례문∼광화문 일대 세종대로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진행됐다.
3천여명의 병력과 80여대 장비가 참가한 이날 시가행진 때는 이전과 달라진 장면들이 있었다. 먼저 스키 부대, 산소통 등 수중침투장비를 갖춘 병력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26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는 특전사 도보부대 병력 가운데 하얀색 복장에 스키를 멘 장병, 까만 잠수복에 산소통을 멘 장병들이 있었다.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도 지난해 행사 때는 오리발, 잠수복, 다이버 수경 등 각종 수중침투장비를 갖춘 장병들이 있었으나 이날 행진에는 이런 차림의 장병이 없었다.
지난해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10년 만에 재개됐다가 올해도 진행되면서, 대규모 시가행진이 보여주기식 행사로 예산 낭비란 지적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이전에는 장병들이 하늘과 땅, 바다, 바다 속 어떤 곳에서도 어떤 날씨에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스키 차림, 잠수복에 오리발 차림으로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참여했지만, 이제는 국민들도 우리 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리발 부대, 스키부대가 도심 시가행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데다 그동안 이런 시가행진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장병들이 불편한 복장으로 쓸데없이 고생한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가행진 때는 장병들이 오와 열을 자로 잰듯 맞춰 행진하고 양 팔을 머리 높이까지 올리며 행진하던 모습에서 상당 부분 벗어났다. 과거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참가했던 한 장병은 “시가행진 내내 구령에 맞춰 대열 유지에 신경쓰느라 힘들었고, 행진 중 눈섭 높이까지 팔을 힘차게 들어 올려야 했기 때문에 행사가 마치고 나면 팔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날 장병들은 과거 행진 내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팔 다리를 크게 흔들며 걷던 모습에서 얽매이지 않고 행진 구간에 따라 편하게 걸으며 길가의 시민들과 인사했다. 군 관계자는 “과거처럼 오와 열을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정돈한 채 과장된 팔 동작으로 무표정하게 행진하지 말고 자신감 넘치고 자연스럽게 시민들과 호흡하며 행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는 대규모 시가행진이 전체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의 전유물이란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열병식 화면을 보면, 평양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만명의 병력들이 로봇처럼 군홧발을 높이 치켜들고 행진(거위걸음)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2차 대전 이후 소련, 중국, 동유럽, 북한 등 사회주의권이 대규모 ‘거위걸음 열병식’을 자주 열면서 서구 사회에서는 군 시가행진이 ‘낙후’ ‘호전’ ‘전체주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시가행진에도 참가한 주한미군 장병들은 이날 무기를 휴대하지 않은 채 편한 걸음으로 산책하듯 걸었다. 2018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에서 대규모 열병식 개최를 국방부에 지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의 존 케네디 상원의원은 “자신감은 침묵으로 표현된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이를 일부러 과시할 필요는 없다”고 비판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열병식을 개최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자랑하거나 구 소련이 붉은 광장에서 벌이는 대규모 군 행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승리를 기념한 이후 열병식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반대를 무시하고 2019년 7월4일 워싱턴에서 독립기념일 축하행사로 ‘미국에 대한 경례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미국 언론은 이 행사가 군의 문민통제 정신을 훼손하고 군을 정치에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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