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차원이 다른 셀피(Selfie), 루이비통이 선택한 '신디 셔먼'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천(千)의 얼굴을 가졌다. 천의 얼굴로 세상 속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다. 천의 얼굴은 한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인 듯 여러 표정을 가졌다는 뜻. 주로 변장을 잘하는 캐릭터나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 배우인가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천의 얼굴을 지닌 주인공은 무려 반세기 동안 셀피(Selfie)로 자신을 표현해 온 사진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년~)'이다.
사진계의 거장인 신디 셔먼. 지난 50년간 '셀피(Selfie)'로 독보적인 사진을 창조해왔다. 게다가 셀피의 개념이 없었던 1970년대부터 작업을 했으니 이 분야의 원조이자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수식어도 셀피의 원조, 셀피의 대가, 코스프레 셀피, 셀프 포트레이트 등 다양하다. 참고로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셀피'는 '셀카'로 불렸다. 이에 대한 내용은 아트홀릭 독자들은 잘 아실 테니 이쯤으로 갈음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신디 셔먼의 작품 '센터폴드(Centerfolds, 1981)' 연작 중 하나는 2011년에 있었던 경매에서 약 44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사진 한 컷에 44억 원이라니! 세상에 존재하는 셀피 중 가장 높은 가치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셀피 아닐까.

때문에 세계적으로 작품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전시를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7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Espace Louis Vuitton Seoul)을 찾았다. 작년 겨울 열렸던 알렉스 카츠의 전시를 보러 온 이후 거의 7개월 만이었다. 이번 전시에선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한 신디 셔먼의 첫 연작부터 최근작까지 엄선한 대표작(10점)을 만날 수 있었다.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선 잘 알려진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4층 갤러리는 그간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앤디 워홀(Andy Warhol), 알렉스 카츠(Alex Katz) 등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을 선보여왔다.

전시에서 감명 깊었던 작품은 셔먼의 '무제(울고 있는 소녀, 1979)'였다. 보는 내내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단발머리를 한 여성. 손에는 담배를 쥐고 술잔을 앞에 둔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화장은 눈물로 인해 번진 상태. 그녀는 시선을 어디론가 향하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일까. 마치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 같았다. 이 작품은 신디 셔먼의 대표 시리즈인 '무제 필름 스틸' 연작 중 하나다. 작가 스스로가 할리우드 영화배우가 되어 사진에 담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셔먼은 이 작업을 위해 주인공 모델 역할뿐만 아니라 장소 섭외,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포즈까지 모두 자신이 연출해 표현했다고 한다. 무제 필름 스틸 연작은 1977년부터 3년간 이뤄졌다. 한마디로 '메이드 인 신디 셔면 (MADE IN Cindy Sherman)' 그 자체다.
사실 신디 셔먼이 처음부터 사진 작업에 몰두한 건 아니었다. 대학에선 순수예술을 공부하며 회화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내 곧 사진의 즉시성과 호소력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냥 사진을 찍어보라'라는 교수의 한마디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1960년대 이뤄진 텔레비전의 대중화와 어릴 때부터 관심 많았던 분장에 대한 관심도 그녀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신디 셔먼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중반쯤 작업을 시작할 때는 이거 재미나네 이 정도 생각뿐이었다"라며 "정말 예술가가 될 줄 몰랐고 작업을 35년이나 하게 될 줄도 몰랐다"라고 밝혔다. 또 "모든 게 유기적으로 진행됐고 연작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시작되었다"라고 전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작업에 집중한 신디 셔먼이다.

셔먼이 작업에 집중해 만든 작품은 현재 전시 중인 '광대(Clown, 2003-2004)'이기도 하다. 이 사진 속 광대를 보고 그 누가 신디 셔먼이라고 생각할까. 분장과 보형물(코, 눈썹, 이마)로 자신을 철저히 감추었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 '조커'에서 광대로 분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 같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광대.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현대인을 표현한 걸까. 더불어 작품을 보고 있으면 광대가 나를 바라본다. 실제로 셔먼은 작업 과정에서 카메라 앞에서 의도적으로 관람객과 시선을 마주하는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 탐구에 동참시키려는 신디 셔먼의 의도다.

명작의 권위를 흔든 사진 작품도 있다. 역사 인물화(History Portraits, 1989-1990)다. 명화를 재구성한 건데 여기에선 그녀가 착용한 보형물에 주목해야 한다. 사진에서 보이듯 피에로 달라 프란체스카의 초상화를 패러디 한 작품에선 오뚝한 코 보형물을 더했다. 이렇듯 티가 나는 보형물을 부각시키며 명작의 권위를 해체시킨 신디 셔먼은 다양한 주제를 관찰하며 탐구했다. 지난 50년간 그녀는 스스로를 유명 영화배우나(무제 필름 스틸 Untitled Film Stills, 1977-1980) 거장의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History Portraits, 1989-1990), 광대(Clown, 2003-2004), 남성(Men, 2019-2020)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를 통해 현실을 비틀고 꼬집었다.

미술평론가 정윤희 씨는 신디 셔먼에 대해 "분장을 통해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자를 비웃었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매체들을 비꼬았다"라며 "다양한 인종과 직업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그러한 경계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라고 평가했다. 아트홀릭 독자들은 과연 신디 셔먼의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알렉스 카츠 등 거장의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신디 셔먼을 택한 이유도 전시를 통해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전시 예약은 인터넷 창에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을 검색하면 나온다.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는 오는 9월 17일까지. 장소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Espace Louis Vuitto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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