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 김서현 무너진 한화! 타선과 문동주가 살렸다!

대전의 가을밤이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18년 만에 대전에서 열린 포스트시즌 승리, 그 한가운데에 있던 건 딱 두 가지였다. 믿기지 않는 에이스의 흔들림, 그리고 그 흔들림을 덮어버린 불방망이. 한화가 삼성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대8로 이겼다. 스코어만 보면 정신이 아득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더 정신이 없다. 팬들 말대로 “이게 가을야구지” 싶은 롤러코스터였다.

먼저 폰세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규시즌 17승 1패, 평균자책점 1점대, 말 그대로 무결점이던 그 폰세가 맞았다. 초반부터 삼성 타선이 달라붙었다. 2회 이재현의 2루타와 강민호의 희생플라이가 맞물리며 3점을 내줬고, 흐름을 겨우 끊나 싶던 순간 또 맞았다. 김지찬, 김성윤이 번갈아 출루하니 구자욱이 침착하게 타점을 만들었고, 김영웅이 한 방 더 얹었다. 4회엔 김태훈에게 솔로포까지. 6이닝 동안 안타 7개, 삼진 8개를 잡았지만 6점을 내줬다(자책 5). 숫자만 보면 ‘그래도 6이닝은 버텼네’인데,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피치클록 간격을 두고 구자욱과 신경전 비슷한 장면도 있었고, 템포가 확실히 흔들렸다. 본인은 7회를 더 던지겠다고 신호를 보냈지만, 코치진이 말렸다. 올 시즌 최고의 카드였던 에이스가 가을 첫날부터 이렇게 흔들리면 벤치도, 덕아웃도 덩달아 조마조마해진다. 김경문 감독도 경기 뒤 “5회를 넘겨야 한다고 봤고, 갈 수 있을 만큼은 맡겼다”면서도 표정이 무거웠다. 살아나야 한다. 한화의 가을 플랜은 기본적으로 ‘상위 선발이 길게 끌고, 불펜이 잠그는’ 그림이다. 폰세가 흔들리면 뒤가 다 꼬인다.

뒤는 더 민감한 자리다. 마무리 김서현 얘기로 넘어가자. 9회 9-6, 여유 있는 점수차였다. 여기서 게임을 닫으면 한줄평은 “타선 폭발, 안정 마무리”로 끝났을 거다. 그런데 선두 이재현에게 우중월 솔로, 이어 김태훈에게 안타, 강민호의 땅볼로 1사 2루, 대타 이성규 적시타… 순식간에 1점 차. 김경문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 다독였지만, 흐름은 이미 넘어간 뒤였다. 결국 좌완 김범수가 불을 껐다. 두 타자를 6구로 정리한 터프 세이브였다. 김범수 말대로 “맞아도 단타” 계산이 선 과감한 승부였다. 반대로 김서현은 전반기와 후반기가 다른 선수처럼 보인다. 빠른 공은 여전한데, 카운트 싸움이 늘어지고 유인구가 안 먹히니 타자들이 기다렸다가 한 방씩 찍어 누른다. 단기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신감과 볼배합, 어느 하나라도 빨리 맞춰야 한다. 감독의 말처럼 “살리는 길”을 코치진이 찾아줘야 한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바꿔준 사람들을 짚어보자. 이 경기의 흐름을 뒤집은 건 결국 타자들이었다. 2회 손아섭의 동점 적시 2루타, 그리고 문현빈의 싹쓸이 3타점 2루타가 대전 하늘을 찢었다. 그 한 방으로 “오늘 되는 날”이라는 기운이 덕아웃에 번졌다. 문현빈은 대전 로컬보이라 더 눈길을 끈다. 포스트시즌 데뷔전, 4살 때 봤다는 대전의 가을 승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표정은 아직 앳된데, 타석에서는 참 노련하다. 풀카운트까지 끌고 가서 자기 공을 기다린다. 3번을 맡긴 이유가 있다.

이 불씨를 확 불태운 사람은 주장 채은성이다. 6회 무사 2, 3루에서 앞선 두 타자가 삼진으로 돌아나가며 찬스가 흔들렸을 때, 채은성이 이호성 상대로 두 점을 쓸어 담았다. 그게 결승타가 됐다. 8회에도 바뀐 투수 김태훈을 상대로 추가점을 하나 더 뽑았다. 5타수 3안타 3타점, ‘주장은 말이 아니라 타구로 한다’를 몸소 보여줬다. 라커룸에서 ‘더 표출하자’고 젊은 선수들에게 주문했다는 얘기도 인상적이다. 큰 무대에선 표정과 몸짓이 팀을 붙든다.

노시환의 3안타, 리베라토의 멀티히트, 손아섭의 두 개의 적시타, 이 라인업은 쉬지 않았다. 2주 넘게 쉬면서 타격감이 꺼질까 걱정했는데, 추석 연휴에도 연습경기 돌려서 감을 유지했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특히 초구부터 방망이가 쉽게 안 나간다. 볼을 고르고, 자기 존이 올 때까지 버틴다. 삼성 불펜이 강한 팀인데도 카운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가라비토가 3.1이닝 5실점으로 내려간 것도 이 집중력이 쌓여 만든 결과다.

여기에 한 명만 더, 문동주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7회에 등장해 8회까지 2이닝 무실점. 최고 162km, 전광판 숫자가 코끝을 때렸다. 158, 159, 160… 스피드건이 계속 올라가더니 161.6km까지 찍었다. 공 하나하나에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타자들이 방망이를 휘둘러도 공이 손 앞에서 뚝 떨어지고, 밀어 넣는 직구는 헛스윙을 끌어낸다. 김경문 감독은 “원래 7회만 생각했는데 공이 너무 좋아서 한 이닝 더”라고 했다. 이게 바로 가을의 ‘비밀병기’다. 선발이 흔들릴 수 있고, 마무리가 흔들릴 수도 있다. 그 사이를 문동주가 철문처럼 막아주면 팀은 숨을 고를 수 있다. 물론 연투, 볼륨, 역할 분배를 조심해야 하지만, 오늘 경기만 놓고 보면 승리의 1순위 공신은 문동주였다.

삼성도 쉽게 물러선 경기가 아니었다. 구자욱은 여전했고, 디아즈와 김영웅이 묵직했다. 김태훈의 솔로포는 타이밍이 절묘했고, 이성규의 대타 적시타는 벤치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한 수였다. 그래서 한화 입장에선 더 아쉬운 대목이 있다. 9회 석 점 차 리드를 그렇게 쉽게 내줄 뻔한 건 포스트시즌에선 위험 신호다. 오늘은 김범수가 막았지만, 이런 장면이 한 번 더 나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불펜 운용표를 조금 더 보수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9회 시작을 김범수-김광현 류의 좌우 맞춤 콤보로 가져가거나, 김서현에게 확실한 ‘낮은 존 하나’만 요구해도 된다. 유인구가 많아지면 카운트가 불리해지고, 결국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밖에 없는 순간 한 방을 맞는다. 오늘이 딱 그 사례였다.

그래도 한화가 얻은 게 훨씬 많다. 새 구장에서 치른 첫 가을야구 승리라는 역사, 18년 만의 대전 가을 승리라는 상징, 1차전을 잡은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 76.5%라는 통계까지 고려하면, 이건 가볍게 볼 수 없는 한 발이다. 무엇보다 “한화는 방망이가 약하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오늘만큼은 깨부쉈다. 초반에 세게 맞고도 바로 다음 이닝에 맞불을 놓는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많아도,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비를 맞춰 입고 앰프를 더 키운 홈 팬들의 응원은 덤이 아니었다. 채은성 말대로 “우리 집에서 하는 느낌”이었고, 그게 진짜 힘이 됐다.

이제 2차전이다. 한화는 와이스, 삼성은 최원태다. 매치업만 보면 또 접전이다. 와이스는 시즌 성적이 좋지만 삼성을 상대로는 숫자가 살짝 높다. 최원태는 큰 경기 운영이 안정적이다. 1차전이 난타전이었다고 해서 2차전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양쪽 벤치가 오늘을 보고 투수전 대비를 더 치밀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한화는 초반에 다시 선취점을 뽑아야 한다. 그게 벤치 운용을 가장 편하게 만든다. 불펜은 문동주 카드를 언제, 어떻게 꺼낼지 사전에 합을 맞춰야 한다. 김서현은 고민이지만, 여기서 자신감을 완전히 꺼뜨리면 돌아오기가 더 어렵다. 상황 맞춤으로 짧게, 분명한 플랜으로 써보는 게 방법이다. 예컨대 8~9번, 하위 타순부터 가볍게 잡고 올라오는 식으로.

폰세에게는 한 줄만 남긴다. 오늘 흔들렸지만, 아직 시리즈는 길고 당신은 올 시즌 내내 ‘그 폰세’였다. 릴리스 타이밍과 템포만 다시 찾으면, 가을의 폰세도 곧 돌아올 거다. 김서현에게도 한 줄. 누구나 흔들린다. 다만 가을은 빠르게 수습하는 사람이 길게 기억된다. 직구 하나, 자신 있는 존 하나만 다시 믿자. 그 한 박자 차이가 오늘의 9회와 내일의 9회를 가른다.

마지막으로 타자들에게. 오늘처럼만 치면 된다. 볼은 고르고, 스트라이크엔 스윙하고, 상황 타격으로 구멍을 파고든다. 문현빈의 싹쓸이, 채은성의 결승타, 손아섭의 동점타가 보여준 건 기술 그 자체보다 태도였다. “우린 할 수 있다”는 태도. 대전의 가을은 오랜만이다. 그 오랜 기다림을 불방망이로, 강속구로, 그리고 차분한 수 싸움으로 채워가자. 1승은 시작일 뿐이다. 이 팀은 오늘, 이겼고, 배웠고, 또 할 일이 생겼다. 내일도 야구는 똑같이 9이닝이고, 그 9이닝을 더 잘 쪼개는 쪽이 웃는다. 오늘처럼만 하면, 대전의 밤은 며칠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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