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도 조합도 등 돌렸다…‘계륵’ 으로 전락한 아파트 리모델링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2026. 4.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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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 완화에 사업성 역전…중단·노선 변경 잇따라
“일부 단지로 축소 불가피”…정책 변수에 시장 향방 갈릴 듯

(시사저널=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최근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수극동아파트 단지 리모델링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기존 시공사였던 쌍용건설이 철수한 이후 조합은 다수 건설사와 접촉을 이어갔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을 찾지 못했다.

1986년에 지어진 900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2017년 조합을 꾸리며 리모델링의 첫발을 뗐다. 쌍용건설과 손잡고 최고 19층, 1032가구로 규모를 키운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기존 대비 132가구를 늘려 사업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2년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그룹에 편입된 후 수익성을 이유로 사업권을 포기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로부터 건축선 위반에 따른 불법 건축물 판정을 받는 등 행정적인 변수까지 겹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사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무섭게 치솟으면서 공사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반분양을 통해 얻는 수익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힘겹게 건축심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건설사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으면서 사업은 주저앉고 말았다.

리모델링을 추진했다가 재건축 쏠림에 사업을 사실상 중단한 서울 성동구 옥수극동아파트의 3월31일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수익성에 막히고, 규제 완화에 치이고

재건축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계륵'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공사비 급증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사업성 측면에서 매력을 잃자 등을 돌리고 있다. 재건축 규제가 대폭 풀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시공사를 찾지 못해 멈춰선 단지가 속출하는가 하면, 아예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으로 노선을 갈아타는 곳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리모델링이 찬밥 신세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잇따른 재건축 규제 완화다. 예전에는 깐깐한 안전진단과 초과이익환수제, 빡빡한 용적률 제한 때문에 재건축 문턱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용적률이 이미 높아 재건축이 힘든 단지들은 차선책으로 리모델링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정책이 급변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정부가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도입하고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낮추면서 진입장벽을 헐어버렸다. 서울시 역시 역세권 아파트의 용적률을 최대 400%까지 올려주는 인센티브를 꺼내들며 재건축 사업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리모델링은 기존 뼈대를 남겨두고 고쳐 짓는 방식이라 가구 수를 최대 15%까지만 늘릴 수 있다. 반면 재건축은 용적률 상향을 통해 일반분양 물량을 대거 뽑아낼 수 있어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입지가 같다면 굳이 분양 수익이 적은 리모델링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상황이 확 달라지자 리모델링을 묵묵히 추진하던 주요 단지들도 줄줄이 재건축으로 돌아서고 있다. 1993년 지어진 강남구 수서동 까치마을이 대표적이다. 2020년부터 리모델링을 준비했던 이곳은 패스트트랙과 용적률 400% 상향 등 재건축의 제도적 혜택이 커지자 과감히 방향을 틀어 현재 안전진단 비용을 모으고 있다.

특히 리모델링 시장의 최대 텃밭으로 불리던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단지의 대거 이탈은 뼈아픈 타격이다. 이들 지역은 기존 용적률이 200% 안팎으로 높아 일찌감치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린 단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시행으로 안전진단을 면제해 주고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대폭 상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특별법 수혜를 보면 굳이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수도권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상당수가 사업을 멈추고 정부의 선도지구 지정만 바라보며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정책 변화 없인 장기 침체 불가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우성아파트도 주민투표를 거쳐 리모델링의 꿈을 접었고, 인근 한강대우아파트 역시 재건축을 저울질하고 있다. 심지어 2007년부터 십여 년간 리모델링을 밀어붙였던 성동구 응봉대림1차마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씁쓸한 조합 해산 수순에 들어갔다.

사업 노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막대한 '매몰 비용'과 주민 갈등도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 과정에서 이미 지출한 설계비, 안전진단 비용, 정비업체 용역비 등은 재건축으로 선회할 경우 고스란히 허공에 날리게 된다. 단지 규모에 따라 수십억원에 달하는 이 매몰 비용의 책임 소재를 두고, 기존 리모델링조합 집행부와 재건축 추진 세력 간 소송전이 벌어지는 단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섣부른 노선 변경이 오히려 사업을 수년째 공전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는 셈이다.

건설사들의 철저한 옥석 가리기 역시 리모델링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올해 압구정, 여의도, 목동, 성수동 등 서울의 굵직한 재건축사업장 공사비만 무려 50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대형 건설사들은 돈이 되고 덩치가 큰 이런 노른자위 재건축 구역의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모든 인력과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실제로 대형 건설사 내부에 있던 리모델링 전담 조직은 점점 축소되거나 아예 재건축 팀으로 흡수되는 추세다. 리모델링은 낡은 뼈대를 유지한 채 지하주차장을 확충해야 하는 등 공사 난도가 매우 높고 돌발 변수가 많아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는 큰 데 반해 일반분양 물량이 적어 수익은 빤한 리모델링을 굳이 맡을 유인이 사라진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을 보존하며 지하주차장을 확충하는 등 공사 난도가 높고 돌발 변수가 많아 공사비 산정이 어렵다"며 "리스크는 크고 이익은 적은 리모델링보다는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재건축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업계에서는 리모델링이 정비사업의 주류에서 밀려나, 재건축이 아예 불가능한 일부 단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보완재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모든 단지가 재건축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건물을 빽빽하게 지어 용적률이 한계에 달했거나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곳들은 여전히 리모델링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런 단지들조차 치솟는 공사비와 시공사 선정 어려움에 시달리며 기약 없이 낡은 집에서 사업 장기화를 버텨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방향에 따라 시장 흐름이 다시 바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재건축 규제 완화 기조가 유지되는 한 리모델링 위축 흐름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공사비 안정이나 제도 보완이 이뤄질 경우 일부 단지를 중심으로 수요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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