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핵질서 붕괴 위기…"美,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해야"

김상희 기자, 최성근 전문위원 2024. 9.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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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의 핵 사용에 대한 교리를 수정하거나 핵무기 실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024.06.09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상트페테르부르크 AFP=뉴스1) 우동명 기자

국제 핵규범에 대한 중국, 러시아 등 독재국가의 도전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국,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국 또는 개발도상국)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도린 호르쉬그 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국제 핵질서가 무너진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은 동맹에 대한 투자와 핵억지에 대한 공약을 강화하고 핵보유국과 비핵 국가와의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과 같은 국제 규범과 제도를 통해 핵무기 사용과 개발을 억제해왔다.

이러한 국제 핵질서는 20세기 중반부터 일부 국가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됐다. 호르쉬그 연구원은 핵질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규범의 상호 연결성'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핵실험에 대한 규범 하나를 위반하면 불사용 및 확산 방지를 포함한 다른 규범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어떤 국가가 하나의 핵규범을 거부하면 결국 핵질서 전체를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다수 핵 전문가들은 최근 핵질서가 위협에 처해있다고 우려한다. 2022년 미국 핵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위험이 이전보다 50%까지 증가했다고 추정했다. 또 전 세계 187개 CTBT 회원국들이 핵실험금지조약을 준수하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 등으로 100%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조약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로버트 플로이드 CTBT 사무국장은 "핵실험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금지 조치가 없다면 조약은 진전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재국가들의 국제 핵질서에 도전과 위협도 점점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에 "서방 국가들은 우리도 그들의 영토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중국은 미국이 제안한 군비통제회담에 반대하면서 핵무기고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란은 핵확산 방지 규범에 이의를 제기해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 구성요소를 개발했으며 핵협정 파기 이후엔 통제와 감시가 불가능해졌다. 북한도 NPT 탈퇴 이후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 핵실험, 국제 제재 위반 등을 지속하고 있다.

호르쉬그 연구원은 "이들 4개국은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합당한 지위나 행동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믿음과 적대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역적,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든지 기존의 핵질서를 훼손할 의향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들 독재국가들은 다양한 핵규범 가운데서도 핵실험금지조약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은 2017년 6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고도화에 성공했으며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며 CTBT 탈퇴를 공식화했고 미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자신도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호르쉬그 연구원은 "북한 외에 다른 국가들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국제 핵규범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군비경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재래식 전쟁이 핵대결로 번질 위험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르쉬그 연구원은 이처럼 붕괴 위기에 처한 핵질서를 지키려면 미국이 핵규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준비가 된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핵질서에 대한 위협은 합의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자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보지만, 비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세계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완전한 군축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는 "미국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 대화를 통해 핵보유국의 책임 있는 행동과 무책임한 행동을 구분시킴으로써 실제로 핵질서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국가에 대한 압력을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미국이 기존 핵규범을 지지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기본적으로 확전을 막기 위한 핵억지력은 핵무기 비사용과 비확산 규범을 강화하지만, 핵무기의 현저한 능력과 전략적 가치로 인해 장기적인 군비 통제나 군축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미국과 동맹, 그리고 파트너 국가들은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 등을 통한 핵억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핵위협 감소와 핵규범 강화를 모색하는 이중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호르쉬그 연구원은 "하나의 핵규범에 균열이 생기면 모든 핵질서가 훼손될 수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미국이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핵억지 공약을 확대하는 한편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모두를 상대로 핵위협을 저지하고 핵규범을 강화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최성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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