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무비자에 봇물 터진 ‘일본행’…여행수지 적자 키울까
日여행 빗장 풀려 관광객 6300% 폭증한 달
‘초엔저·단기여행 중심’에 적자폭 급증은 아직
위태로운 경상수지에 정부·한은 고심 깊어져

일본 노선 비행기 운항이 재개되고 엔저 현상이 극에 달한 지난 10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 여행’이 봇물 터지듯 늘었다. 일본으로 관광을 가는 우리나라 국민의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6300%나 폭증했다.
이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소비에서 한국인이 해외에서 사용한 금액을 뺀 우리나라 여행수지 적자 상황도 위태로워졌다. 10월 여행수지는 급격히 악화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이동이 더욱 자유로워지면 적자폭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어, 전체 경상수지를 관리해야 하는 당국도 경계감을 드높이는 분위기다.

◇ 10월 日 여행 국민 6300% 폭증…여행수지 5억달러 적자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10월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항목 중 하나인 여행수지는 5억36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4억6200만달러)에 비해 1억달러가량 적자 폭을 키웠다. 여행수지의 적자로 해당 항목을 포함한 서비스수지도 5000만달러 흑자에 그쳤다.
앞서 10월은 일본으로의 여행이 급증한 시기여서 우려를 키운 바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으로 관광을 간 우리나라 국민의 수는 지난 10월 한 달간 12만2900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0만명대 일본행 관광객 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본격화 전인 2020년 2월 이후로는 볼 수 없던 수치다. 1년 전(1921명)에 비해서 6297.7%가 증가한 것인데, 그야말로 ‘폭증’ 수준이다.
당시는 일본 여행 빗장이 본격적으로 풀린 데다가, 초엔저(低) 현상까지 겹친 때다. 일본은 지난 10월 11일부터 무비자 입국 제한 조치를 해제하고,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 여행도 허용하기 시작했다. 중단됐던 ‘김포~하네다’ 노선도 2년 만에 재개되면서, 최근 해당 노선의 운항 횟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도 했다.
게다가 올해 초만 해도 달러당 115엔대였던 엔화 가치가, 지난 10월엔 32년만에 최저치인 151엔대까지로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렸지만, 일본 중앙은행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금융 완화를 고수해 금리차가 벌어지면서 엔화 약세를 부추겼다. 원·엔 환율도 올해 초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 방역 해제에 값싼 관광과 소비를 기대했던 여행객들이 일본행 비행기로 대거 몸을 실은 것이다.

◇ “‘초엔低'에 여행비용 적었나” 적자 폭 선방…문제는 앞으로
다만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적자 폭이 크게 벌어지진 않은 모습이다. 9월 여행수지 적자 폭인 5억4100만달러와 유사했고, 올해 적자가 가장 심했던 지난 8월(-9억7500만달러)이나 7월(-8억6000만달러)에 비해서는 그 폭이 반토막 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영환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출국자 수가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여행수지 적자 폭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며 “결국 거주자가 해외에 나가서 얼마만큼 돈을 쓰느냐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여행수지에는 유학자금이나 ‘따이공’으로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 영향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으로의 여행이 ‘단기’에 그치거나, 초엔저로 여행 소비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 역시 적자 폭 확대를 저지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여행수지를 산출하기 위한 항목인 ‘일반여행지급’은 16억9600만달러로, 지난 8월(16억9300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8월과 10월 일본으로 관광 간 국민의 수는 각각 2만8515명, 12만2900명으로 그 차이가 4배 이상에 달했는데도, 여행 비용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은 관계자는 “이동 제한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완화되고 있으니, 여행수지 적자 폭이 내년에 더욱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수지의 관리 필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최근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겨우 적자를 모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다. 10월 경상수지는 8억8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는데, 지난 8월 30억5000만달러 적자에서 9월 15억8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뒤 가까스로 흑자 기조를 이어간 모습이다.
당국의 고민도 깊어진 분위기다. 한은은 지난달 게재한 ‘국내외 해외여행 회복 시기 도래와 시사점’이란 제목의 블로그 글을 통해 “향후 중국의 방역정책 기조가 완화될 경우 국내 여행수지 적자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중국의 경기 부진 등을 감안하면 중국 관광객이 예전 수준만큼 회복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며 “내국인의 해외 여행 수요를 국내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 역시 전날 비상경제차관회의를 열고 “글로벌 경기둔화, 국내 물류 차질 등 수출 불안 요인도 상당해, 당분간 월별로 경상수지의 높은 변동성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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