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 공공공간 ‘혁신 거점’으로…"전남만의 전략 필요"
전국 최다 노후 산업단지·폐교 ‘강점’
신산업 육성과 지역 활력 회복의 기회
창업·R&D·커뮤니티 기능 결합
"지방소멸 막고 지속가능 성장 열쇠"

전남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노후 산업단지와 폐교를 보유한 만큼, 이 유휴 공공공간들을 지역 맞춤형 혁신거점으로 재편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활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남이 유휴 공공자산이 전국에서 가장 풍부함에도 많은 시설이 노후화하거나 미활용된 채 방치되고 있어, 이러한 자산을 어떻게 새롭게 살려내느냐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전국 최대 규모…중요 잠재 자원
7일 전남연구원에 따르면 새 정부는 유휴 국공유지, 노후 청사, 산업단지 등 다양한 유휴공간을 고밀도 복합개발 방식으로 활용하는 '혁신거점 조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혁신거점은 공공기관,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기술과 산업 모델을 발굴하는 플랫폼이다. 단순한 공간 재개발을 넘어, 지식과 사람, 자본이 모이는 지역 혁신 생태계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목표다.
행정안전부의 최근 '공유재산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존 대장에 등록되지 않았던 약 15만7천 건의 토지와 건물이 새로 확인됐다. 가치로 따지면 약 20조 원 규모다. 정부는 이들 유휴 자산을 적극적으로 개방·활용해 혁신거점 조성의 기반으로 삼을 계획이다.
전남은 전국에서 노후 산업단지 면적이 가장 넓고, 폐교 수도 가장 많다. 2025년 기준 전남의 노후산단 지정 면적은 196.1㎢로 전국의 21%에 달하며, 46곳 중 76%가 농공단지다. 여수·광양 국가산단, 대불산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노후 시설을 디지털·친환경 산업 구조로 전환하는 '스마트 그린산단' 사업이 추진 중이다.
폐교 또한 전남의 중요한 잠재 자원이다. 2025년 3월 기준 폐교 854곳 중 미활용 폐교가 78곳으로 전국의 20%를 차지한다. 대부분 초등학교로, 생활권 중심에 위치하고 교실 단위가 작아 청년 창업,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활동 등으로 전환하기에 적합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복합문화공간(목포·광양), 귀농귀촌 종합센터(해남), 교육시설(순천·화순)로 활용되고 있다.

◇해외와 국내 성공사례가 주는 교훈
각국의 도시들도 버려진 공간을 혁신의 장소로 바꿔낸 경험이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22@Barcelona'는 쇠퇴한 공업지구를 첨단 IT·디자인 산업지구로 변모시킨 대표 사례다. 낡은 공장과 창고를 R&D 센터, 창업 인큐베이터, 대학 캠퍼스로 탈바꿈시켜 수천 개의 일자리와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서울의 G밸리(구 구로공단) 역시 노후 경공업단지를 IT와 벤처기업 중심의 지식산업 거점으로 바꾼 사례다. 벤처센터와 R&D 인프라를 조성해 기업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고 있으며, 현재 1만 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폐교 활용의 모범은 미국 '피츠버그의 에너지 혁신센터(Energy Innovation Cente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옛 직업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청정에너지 기업의 창업과 인력 양성을 동시에 수행하는 혁신 허브로 변모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 영월과 충북 충주 등이 폐교와 옛 공공시설을 재생해 지역문화와 창업 생태계를 결합한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유휴공간별 맞춤 전략 필요
전남의 혁신거점 구상은 공간 유형별로 뚜렷한 방향을 갖는다. 노후 산업단지는 기술 실증과 R&D 허브로, 폐교는 창업과 사회혁신 공간으로, 유휴 공유지는 농식품 벤처 창업의 실험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전남도는 특히 광양국가산단, 여수국가산단 등 대규모 산업단지에 '거점 R&D센터'를 설립해 기업 간 공동 연구와 신제품 실증 테스트베드를 운영하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율촌제1일반산단과 같은 중규모 산업단지에는 지역 특화산업(자동차 부품, 식품가공 등)에 맞춘 '특성화 R&D 지원센터'를 세운다.
농공단지는 청년 인재 양성과 현장 실습 거점으로 발전시킨다. 전남테크노파크와 지역 대학, 특성화고가 협력해 산학연 공동 R&D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지역기업 맞춤형 계약학과를 통해 채용까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폐교는 무상대부 확대와 용도 제한 완화를 통해 공공·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취·창업 지원 허브로 조성한다. 일부는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매각해 일자리·관광·체험시설로 활용하며, 발생한 이익은 지역상생기금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제시한다. 완도, 고흥, 나주 등은 각각 해양치유, 드론, ICT 분야 창업교육센터 등의 구상도 세우고 있다.
유휴 공유지의 경우, 국유지와의 교환을 통해 전략입지를 확보하고, 농업 테스트베드나 스마트팜 실습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주변의 잡종지를 활용해 청년 코리빙 주택, 창업공방,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혁신성장의 시작점 삼아야"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로 고전 중인 전남이 유휴공간 재생을 혁신성장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남은 기존 산업단지, 농공단지, 폐교 등 재정비로 새로운 땅을 매입하지 않아도 혁신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진 지역으로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도화를 통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지속가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정부도 유휴공공시설을 활용한 혁신거점 사업을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축으로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전국적으로 확보된 유휴공공재산은 지역 발전의 숨은 자원으로, 이를 효율적으로 연결·재생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남은 산업유산, 농촌자원, 해양환경 등 풍부한 '공간 자산'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이 공간들을 단순히 과거의 흔적으로 남기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인재, 문화가 태어나는 지역 재생의 무대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장석길 전남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휴 공공공간 기반의 혁신거점 조성은 지역소멸 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강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광역 차원의 통합 관리 체계와 안정적인 재원 연계는 필수적이며, 유휴 공공공간 DB 구축, 도·시군·교육청 간 역할 분담 명확화, 기존 산업·창업·혁신도시 관련 기금과의 연계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정책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형주 기자 hispen@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