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죽고 사는 이들의 만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와 드라마

어느 순간부터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밤늦은 시간에 업데이트한 웹툰을 불 꺼진 침대 위에서 보는 일이다. 에디터는 학창 시절에는 만화책, 지금은 웹툰까지…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만화가 없는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내 손안에 든 만화책이나 휴대폰을 보면서 킥킥거리거나 때로는 작품에 너무 감동받고 울컥해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전에도 많은 추억을, 앞으로도 많은 영감을 줄 내 인생의 만화들, <슬램덩크>의 명대사를 인용해서 여러분들에게 물어본다. “만화, 좋아하세요?!”

여기, 그 만화에 자신의 꿈과 인생 모든 것을 건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창작의 고통 속에 허덕거려도 내 작품을 읽는 독자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만화가부터, 이를 편집하고 배포하는 만화 잡지 직원들, 더 나아가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감독까지. 만화에 죽고 만화에 사는 인생을 보여주는 이들의 만화 같은 이야기를 살펴본다.

중쇄를 찍자 – 모든 출판 종사자들이 제일 듣고 싶은 바로 그 말!

이미지: TBS

마츠다 나오코 작가의 동명 만화를 드라마로 옮긴 작품이다. 만화 잡지 바이브스 편집부로 일하게 된 일본 유도 국가대표 출신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가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러 히트작 일드에서 자주 만났던 쿠로키 하루를 비롯해 <고독한 미식가> 마츠시게 유타카, 오다기리 죠 등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나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이 작품은 만화가보다 그들을 서포트하는 편집자, 즉, 출판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한 편의 만화잡지가 어떤 과정을 겪은 뒤 나오는지, 그 속에 얽힌 다양한 이들의 업무와 비하인드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특히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구해줬다며 책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극중 출판사 사장의 에피소드, 자기 작품의 잡지 연재 소식을 듣고 울먹거리며 “살아있길 잘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대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제대로 울린다. 일본 현지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오늘의 웹툰>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2022년 7월 SBS 드라마로 방영했다. 만화책보다 웹툰이 더 보편화된 국내 사정에 걸맞게 로컬라이징 되었고, 김세정, 최다니엘이 원작의 쿠로키 하루와 오다기리 죠 역을 맡아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바쿠만 – 우정! 노력! 승리!

이미지: (주)엔케이컨텐츠

「데스노트」를 만든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 두 친구 모리타카(사토 타케루)와 아키토(카미키 류노스케)가 힘을 합쳐 일본 최고의 만화 잡지 ‘소년 점프’의 연재를 목표로 꿈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바람의 검심>의 사토 타케루, <너의 이름은.> 카미키 류노스케가 두 주인공 역을 맡았고, 이들의 라이벌이자 천재 만화작가 니즈마 에이지 역에 <기생수> 소메타니 쇼타가 출연했다. 모리타카가 짝사랑하는 미호 역에 코마츠 나나가 출연해 설렘 가득한 로맨스도 자아낸다.

한 편의 만화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지 이 영화가 다 말해준다. 스토리 구성부터 작화, 편집, 발행까지, 쉼 없는 만화가의 하루를 치열하게 담아내며 관련 작업이 녹록하지 않음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소년 점프’의 모토인 “우정! 노력! 승리!”를 외치며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자신 인생에 만화가 큰 의미로 가진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만화 대결이라는 컨셉을 전면으로 내세우는데, 이를테면 두 주인공의 만화와 라이벌 작가의 만화를 마치 펜VS펜의 싸움으로 묘사해 독특한 재미를 자아낸다. 여기에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 등 소년 점프의 대표작들의 소개와 명대사를 인용해 진정 만화팬들을 위한 영화로 다가온다. 일본 유명 록밴드 사카낙션이 부른 엔딩곡 ‘新宝島(신보물섬)'은 인터넷 밈으로 활용되며 엄청난 히트를 치기도 했다.

룩백 –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이미지: 메가박스중앙

지난 9월 5일, 소규모 개봉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알짜배기 흥행을 거두고 있는 <룩백>. <체인소맨>의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동명 단편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학교신문에서 4컷 만화를 연재하는 후지노와 사람이 두려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쿄모토가 만화를 인연으로 함께 꿈을 키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담아낸 작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지만 일상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스토리가 작품의 풋풋한 감정을 더욱 짙게 녹여낸다. 특히 후지노가 그린 4컷 만화를 코믹하게 영상화한 부분은 소소한 웃음도 자아낸다. 그렇게 행복하게 우정을 다지던 두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영화는 큰 변화를 겪는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후지노의 4컷 만화가 쿄모토를 변화시켰듯이, 쿄모토의 어떤 모습 또한 후지노의 인생을 바꾼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감성 포인트는 두 사람의 우정뿐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아니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창작자들을 향한 경외와 헌정의 메시지로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대결! 애니메이션 – 성덕이 되고 싶은 애니메이션 감독의 고군분투

이미지: (주)블루라벨픽쳐스

8년 만의 컴백을 앞둔 애니메이션 천재감독 오우지(나카무라 토모야)와 그에 맞선 패기만은 대단한 초보 감독 히토미(요시오카 리호)의 시청률 흥행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의 A부터 Z까지 세세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콘티부터 작화, CG, 촬영, 마케팅, 성우들의 녹음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을 거치는지를 치열하게 그려낸다. 특히 일본의 대표 애니 제작사 프로덕션 I.G.가 참여한 극중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퀄리티가 워낙 대단해 따로 방영해도 괜찮을 정도다.

<바쿠만>도 그렇고, <중쇄를 찍자>도 그렇고 결국 중요한 것은 만화(애니)가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 얼마나 많이 보느냐에 늘 승패가 달려있다. <대결! 애니메이션>도 천재 감독과 초보 감독의 시청률 대결을 긴장감 있게 담아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왜 애니메이션 감독을 하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관련 산업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소위 ‘성덕’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성장하고,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모습으로 작품의 여운을 채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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