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아갈래, 찐애정 90년대 PC게임들아!"

박명기 기자 2023. 2. 1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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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욱-장세용-조기현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 책 펴내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게임'의 필자 조기현-오영욱. 사진=박명기

한국게임의 역사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얄팍하다. 특히 온라인게임 이전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1990년대 PC게임 시절은 정리된 자료가 거의 없다. 

한국 최초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1990년대 한국 PC게임을 소환,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이들이 있다. 장세용과 오영욱, 조기현이 그 주인공이다. 

기획은 장세용이 자신이 소장한 자료를 다 놓으면서 시작했다. 거기에다 PC시대 잡지를 다 끌어모았고 일일이 디지털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오영욱, 그리고 한국 게임 잡지의 산증인 '게이머즈'의 조기현 기자가 '의기투합'했다. 

기획 이후 5년, 창업과 회사운영, 개발과 학업, 취재 등 생업에 매달리는 가운데 더디게 진행됐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진 등 '저작권 사용'과 자료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고 지리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서 발로 뛰었다. 저작권 사용을 위해 일일이 찾아가서 허락을 요청했다. 반전의 연속이었다. '가능성 제로'였던 텀블벅 모금은 대박을 쳤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본문 500페이지의 하드커버의 양장판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게임-사진으로 읽은 한국 게임의 역사'(이하 한국 PC게임의 역사)다. 영화를 사랑한 '할리우드의 생애'가 아닌 'PC게임 키드'들의 94개 게임에 대한 찐한 애정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조금 더 알고 싶어 게임톡이 창간 초기 깊이 있는 칼럼을 연재했던 개발자이자 가천대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오영욱, 한국 게임사의 기록자 조기현 기자를 만나봤다. 최초 기획자 장세용은 일정으로 함께 하지못해 아쉬웠다. 

 

■ 출발은 장세용 기획, 오영욱과 조기현 더해져 '도원결의'

결코 한국 최초가 부끄럽지 않은 '한국 PC게임의 역사'였다. 출발은 2019년 한 카페였다. 장세용이 자신이 소장한 패키지들을 몽땅 가져와 오영욱과 조기현에게 제안을 하면서 시작했다. 

장세용이 "1990년대 한국 PC게임을 정리한 책이 없다. 같이 책으로 묶어보자"고 화두를 던졌다. 사명감도 책임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잊혀지지 않도록 힘을 써보자는,  유비와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천하통일을 약속했던 '도원결의' 같았다.  

거울전쟁:악령군

프로젝트를 내내 주도한 것은 장세용이었다. 당시 개발자 장세용과 게임전문 기자 조기현은 안면을 튼 정도 사이였다. 개발자 오영욱과 장세용은 초면이었다. 장세용이 페이스북 친구 오영욱에게 먼저 연락했다. 오영욱과 조기현은 전주대 윤형섭 교수가 주도해 발간한 책 '한국 게임의 역사' 필자로 참여해 아는 사이였다. 

놀라운 것은 이후 오프라인으로는 서너 번 정도 모였을 뿐 출간 과정 내내 온라인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장세용이 대표 필자라서 출판사와의 주로 소통했다. 게임을 선택하는 과정은 모두가 참여했다. 각 게임별 원고는 분담해서 썼다. 조기현은 이 책 작업 외에도 퍼펙트 카탈로그 작업이 많기 때문에 외부 인터뷰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책을 만드는 동안 '코로나19'의 공습이 있었다. 하지만 호시우보(虎視牛步)라고 하던가. 서두르지 않고 1992년 '폭스 레인저'부터 2002년 '하얀마음 백구'까지 PC게임을 모으고, 찾고, 채우고, 썼다.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오영욱. 사진=박명기 

 

■ 텀블벅 모금은 '오아시스' 같은 변곡점

텀블벅 모금은 이 프로젝트의 변곡점이었다. 주변에서 "누가 PC 게임 책에 돈을 내겠느냐"며 가능성 없다고 여기던 모금은 8000만원을 모이는 대박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다 채웠다. 한빛미디어의 승부수가 제대로 성공했다. 

오영욱은 "지금도 어디서 정보를 얻어 모금 참여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PC게임 수집가나 레트로동호회 입소문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동참한 분이 1000명에 이른다. 책 뒤에 참여자 리스트를 실었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게임 분야 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조차 취미분류로 되어 독자 앞에 나서기 어렵다. 아직 게임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서다. 500권도 어렵고, 1000권이면 많이 나간다. 그래서 출판사들은 꺼려한다. 난산을 거쳐 이 책이 나왔다. 

악튜러스
하얀마음 백구

"새로 나온 책은 마음에 드나"고 기자가 물었다. 오영욱은 "잘 나왔다"고 말했다. 조기현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잘 나왔다"고 동의했다.  

책이 나오는 데 왜 5년이나 걸렸을까. 오영욱은 "원래 책은 사진 위주로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텍스트가 추가되면서 바뀌었다. 소개될 게임은 앞에 배치하고 빠진 것은 책 뒤쪽에 도록으로 정리해 묶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조기현은 "문제는 언제나 자료였다. 텍스트가 있으면 사진이 없었다. 사진이 있는데 정보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가 폐업되거나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운 게 너무 많았다. 사진의 경우 일일이 찾아가서 허락을 받아야 했다. 장세용이 발로 뛰었고, 출판사도 간접지원을 했다. 그래서 끝까지 텍스트를 쓸 수 있는 것을 추리고 적은 것을 보완하는 것이 가장 난제였다"고 회상했다. 

머털도사
임진록

레트로 장터는 예전에는 파는 사람이 없어 문제였지만, 요즘은 물건이 나와도 패키지가 100만~200만원 정도 비싸다.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 게임톡 창간 초기 명칼럼 연재한 오영욱

'한국 PC게임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발매된 PC 게임 중에서 94개를 게임 패키지의 사진과 함께 게임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실었다. 'PC 게임'을 한국 최초로 정리한 책인 셈이다. 모호한 서술과 디테일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사료 가치가 대단히 높고 공력이 담겼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PC게임' 역사를 정리한 책이 많다. 구하기도 쉽다. 많은 마니아들이 스스로 작업해 묶어냈다. 검색하면 기본 정보는 대부분 얻을 수 있다. 반면 한국 PC게임에 대해서는 '한 수 아래'라는 저평가가 많은 데다 개발자 아카이빙 같은 자료가 거의 없다.  

조기현. 사진=박명기

오영욱은 게임톡 창간 초기 1년여 칼럼을 연재했다. 게임업계 이슈를 다뤘다. 그는 "이 책에는 100개 리스트 중 94개의 게임이 소개되었다. 100개를 못채운 것이 아쉽다. 최종적으로는 게임이 6개가 빠졌다. 패키지 사진을 결국 못 구한 탓도 있다. 힘들겠지만 앞으로 1000개까지 계속 묶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시 문제는 자료다. 게임과 게임 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한 출처가 확실한 것만 넣었다. 기존에 참고할 수 있는 게임잡지들이 있는 편이라 가급적 기록이 남아있는 이야기만 넣었다. 책에는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는 싣지 않으려고 했다. 후대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직접 겪어온 시대이다 보니 쓸 수 있었다.  

한국에서 PC게임 관련 책이 드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수집자를 만나기 어렵고, 그나마 있는 수집자들은 언론과 방송에 대여했다가 파손되고 분실되거나 돌려받지 못한 사례가 너무 많이 불신이 크다.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이 적지만, 자료가 있어도 만나기 아려운 실정이다. 이제 '수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창세기전

2000년 게임 기자를 시작을 한 '게이머즈' 수석기자 조기현은 "콘솔 관련 책은 한국에서도 이미 나왔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비용이 있으면 가능하다. 그렇지만 1990년대 PC게임 책은 정말 펴내기 어렵다. 손노리 같은 몇 개 외는 회사나 법인이 살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고충을 밝혔다. 

이 책 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미리내 소프트웨어에서 그래픽과 기획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김경수 크리에이터의 개발 인생의 소개는 더 흥미롭다. 미리내 초기부터 개발에 참여해서 이후 재미시스템까지 개발에 참여했다. '망국전기'나 '액시스' 등 인상깊은 타이틀이 많다. 당시 게임 환경이나 개발환경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주위 관심도 크다. 특히 개발자이며 참여자들은 호의를 표했다. 가령 넥슨의 '마비노기'로 유명한 김동건 데브캣 대표는 "좋은 책으로 나왔다"며 SNS에 소개하기도 했다.    

 

■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인 1990년대에도 '국산 게임'은 존재

두 사람에게 "제주에 있는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 좋겠다"고 물었다. 오영욱은 "제가 잡지들을 스캔해 데이터화한 것에 넥슨에게 의사를 타진했다. 충분히 의지가 있었다. 이왕이면 이 책도 전시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PC게임을 인터넷 아카이브로 공개한다. 한국에서도 저작권 문제가 해결이 되면 가능할 수 있다. 패키지 사진을 허락하고 합리적인 인용을 가능하면 PC게임 아카이브도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텀블벅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책 뒤에 들어가 있다. 

조기현은 저자 서문에 "한국 게임의 역사가 온통 온라인과 MMO 일색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없지 않으나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인 1990년대에도 분명 '국산 게임'은 존재했다. 나름대로 향유층과 문화가 꽃피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마국과 일본처럼 서사가 있고, 엔딩이 존재하는 싱글 플레이 게임을 다투어 개발하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음을 사진과 실물로 증명해 보여주는 책이 필요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다. 이 책은 한국 PC게임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2년부터 온라인게임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하는 2004년까지 잊히고 있는 한국 PC게임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한국 PC게임의 역사'가 마중물이 되어 1990년대 '국산 게임'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가 다시 꽃피웠으면 좋겠다. 더 많은 저작물과 전시로 1990년대 PC게임 시대의 '텅 빈 공허'를 채울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pnet21@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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